* 함께 시간 보내기 (2022.06.25.토) *

by clavecin

* 함께 시간 보내기 (2022.06.25.토) *


A 학급에서 아이들과 나눈 대화 중 일부분..


- 이성교제 하는 아이들 부러워..

- 뭐가 부러워..애기들하고 사귀고 싶어??

- 그러니깐..

- 왜 지금 사귀는거야.. 20살에 짠 하고 커플로 나타나면 되지..

- 나는 공부 잘하는 아이 잡아야지..

- 나는 의대 가는 애 잡아서 결혼해야지..

- 돈 많이 버니깐..

- 남편은 돈 벌고 너는 돈 쓰고..??

- 의사는 바빠서 같이 시간 보내기 어려워..

- 결혼하면 같이 시간 보낼 필요 없어요... 돈만 있으면 되요..

- 같이 시간을 보내는게 중요하지..

- 아뇨...같이 있을 필요 없어요... 돈만 많이 있으면 되죠..

- 돈을 받아서 쓰려고?? 왜 받아서 써?? 네 돈은 네가 벌어야지..

- 그런가요..

- 너도 직업을 가지고 네 돈을 써야지..너도 능력있는데..

- 아...그래야겠죠...


생각지도 않은 내용 전개에 깜.짝. 놀랐다. 돈 많은 사람을 만나서 돈을 마음껏 쓰고 싶다는 말도 그렇지만, 결혼해서는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아이들에게 들을 줄은 몰랐으니까...


아이들은 그런 ‘귀한 말’을 어디에서 들었을까....



4교시가 없다면 오후 12시부터 점심을 먹을 수 있다. 교무실마다 문화가 조금씩 달라서 어느 교무실은 개인별로 따로 오기도 하지만 비슷한 시간대에 같이 몰려서 우루루 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주 5일 중 각 요일에 따라 점심을 같이 먹는 선생님들이 대략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오래전, 같은 해에 우리 학교에 들어왔던 선생님들이 우리 교무실에 상당히 많이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때 깜짝 놀랄 일을 보았었다. 그전까지 우리 교무실의 문화는 4교시가 없는 선생님들은 함께 급식실에 갔었지만, 4교시가 끝나고서는 각자 알아서 급식실에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끝나는 시간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데 당시의 그 동기 선생님들은 4교시가 끝난 뒤 누가 빠지기라도 하면 오후 1시가 넘더라도 그 선생님이 올 때까지 기다려서 함께 급식실에 가는 것이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달려 내려가는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누군가를 기다리는 같은 기수의 그 선생님들이 참 신선했었다. 처음 접해보는 교무실 문화였으니까... 그리고 얼마나 부러웠는지...


지금은 하나둘 학교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셨지만 그 기수의 선생님들은 떠나서도 서로를 잘 챙기고 보듬어주었다. 나는 잘되지 않는, 하지만 너무 좋았었던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 선생님들을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한다.



어느 해, 어느 기수나 다양한 문제로 고민하고 방황하는 아이들이 있고 그것을 잘 이겨내서 졸업까지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전학과 자퇴가 옛날보다 빈번한 것이 요즘 아이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사실 그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진로에 대한 생각이 다양하고 그 다양성에 기반한 어떤 결정을 각각 인정해 주는 시대니까...


학기 초의 설렘과 기대가 서서히 사라지고 무언가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는 지금, 들썩거리는 아이들이 조금씩 있다. 성적을 비롯한 다양한 고민들로 담임 선생님을 비롯하여 교과 선생님들에게 상담을 청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는데,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내 눈에 그게 더 예민하게 보이고 있고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선생님께서 먼저 학생을 불러서 상담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학생이 담임 선생님이나 교과 선생님을 찾아가서 상담을 청하는 경우가 더 많다. 지금의 담임 선생님을 찾는 경우도 있고 작년 담임 선생님이나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선생님을 찾기도 한다.


사실 나의 경우, 학생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선생님으로 ‘선택받는다는 것’은 감사하고도 기쁜 일이다. 나를 믿어주고 신뢰한다는 것이니까...


그런데 사실, 학생에게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다. 단지 들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다만 학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의 경험에서 배웠으니까...


누군가에게 나의 깊은 속 이야기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점점 알아가고 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되는지... 아마 아이들도 그렇지 않을까...


교무실에 있다보면, 자기 이야기를 하려고 몰려오는 학생들로 항상 바쁜 선생님들이 계신다. 학년과 성별을 따지지 않고 온갖 아이들이 온다는 것이 정말 놀랍다. 그 선생님들은 어떻게 선택받은 걸까.....아이들은 그 선생님의 무엇을 본 걸까....신기 할 뿐이다.


그런데 주로 선생님들이 하시던 학생상담을 요즘은 또래 아이들이 하기도 한다. 일명 또래상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본인 문제도 힘들텐데 어떻게 다른 친구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걸까...


특히 2차 지필고사를 앞둔 지금과 같이 중요한 때에는 아이들이 모두 예민해지고 눈앞에 당면한 일에 긴장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챙기는 것은 무척 어렵다. 그런데 방황하는 친구를 위해서 두 팔을 걷어붙이고 시험공부하는 시간을 쏟고 있는 어떤 아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담임 선생님과 크게 감동한 적이 있다.


도대체 그 아이들은 어떻게 그런 ‘귀한 생각’을 했을까... 나로서는 도저히 엄두를 낼 수도 없는, 생각조차 할 수도 없는,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 보내기’라고 할 수 있다.


돈을 많이 벌더라도 ‘함께 시간 보내기’를 허락받지 못한 많은 사람들..

점심을 늦게 먹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시간 보내기’ 위해 배고픔을 감당하겠다는 사람들..

내 문제도 산더미이지만, 또 다른 문제로 허덕이는 다른 친구를 위해 내 귀한 시간을 나누어서 ‘함께 시간 보내기’를 하겠다는 학생들..


내가 그때 화가 났었던 것도,

내가 그때 그렇게 슬프고 힘들었던 것도,

나에게 그때 그토록 필요했었던 것도 바로 그,

‘함께 시간 보내기’였다는 것을 짚어보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억만금의 돈을 내 손에 쥐어주는 것보다

깊은 속마음을 함께 나누는 것과 같은 가치의 일이니까.....


적어도,

아무하고나 내 마음을 나누지는 않으니까..

적어도!


아무하고나 함께 시간을 보내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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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는 길 들었던 음악..


가사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6/8박자의 멜로디가 마음에 들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가사가 더 마음에 든다.


나에게 확 꽂혔던 가사는 이것..


- 그대 없으면 슬퍼..


왜 이 가사가 그렇게 아팠을까...


* 그리움 녹아내려 - 김미주

https://youtu.be/aKXUc9wWf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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