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밀 이야기 (2022.07.23.토) *

by clavecin

* 비밀 이야기 (2022.07.23.토) *


2학기에 진행해야 하는 기악시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한참 이야기하고 있는데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은 A가 옆으로 고개를 돌려 뒤를 보면서 눈을 계속 깜빡거렸다..


잠깐 A를 보고 있다가 ‘그만두겠지’ 하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계속 했다. 그런데 A녀석은 계속 옆으로 몸을 돌려 뒤를 보면서 눈을 깜빡거렸다. 심지어 눈썹을 움찔하면서까지...


내가 말했다.


- A ~ 앞으로 나와..

나와서 방금 하던 거, 내가 ‘그만’ 할 때까지 계속해~

- (폭소)~


A가 나와서 눈썹을 움찔하면서 눈을 깜빡거렸다...


- A ~ 누구에게 했던거야??

그 사람도 나오세요~

나와서 그대로 해 보세요~


B가 나왔고, A와 B는 몸을 옆으로 돌려 서로 눈을 깜빡이는 제스처를 했다.


내가 말했다.


- 그게 무슨 뜻인지 말하고 깜빡거려 봐~

- (폭소) ~

- (A) 잘 할 수 있지? (깜빡~)

- (B) 잘 할 수 있어~ (깜빡~)

- (폭소) ~

- ~~~~~(깜빡~)

- ~~~~~~~~(깜빡깜빡~)


너무너무너무너무 즐겁고 재미있었다!


나는 웃느라 말을 이을 수가 없었고 아이들도 죽을 것같이 웃었다. 재치 만점인 아이들 때문에 피곤할 수도 있는 수요일의 오후수업이 무척이나 즐거웠다는 것.



C에게 나의 어떤 이야기를 했었다. C가 D에게 내 이야기 하는 것을 들은 E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


- 왜 그런 이야기를 C에게 했어요???

D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제가 들었어요...


이 말을 들은 나는 경악했고, C에게 그것을 굳이 따지지는 않았으나 그 이후로 나는 그곳의 출입을 끊었고 나의 입은 닫혀졌으며 꼭 필요한 말만 하게 되었다.



‘무엇을 먹는가’가 중요하지 않고 ‘누구와 먹는가’가 중요한 나로서는, 식당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자리를 하게 되면 박수를 치면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 흠... 내가 좋아하는 멤버들이예요...


이번 주에는 특히 더 박수를 칠 만한 멤버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점심시간에는 대부분 같은 교무실 선생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는데 이번 주는 유독 새로운 멤버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가 많았다. 한 번도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했던 적이 없던 E선생님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고, 오래전 1학년 담임 선생님으로 내 옆자리에 앉아서 나와 이야기를 많이 했었던 F나 G선생님과 식사를 하기도 했던 것...


1학년 임원들 모임인 클래스 서포터즈 모임을 점심시간에 해야 했기에 식사시간이 30분이나 지난 뒤 ‘홀로 앉아서 먹겠구나’ 라는 당연한 생각을 하며 터벅터벅 내려간 식당에서 내 앞에서 음식을 뜨고 있는 E선생님을 만났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그 시간에 밥을 먹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1도 생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번도 부딪힌 적 없는 선생님이어서 더 놀랐다. 물론, 예상하지 못했던 즐거운 식사시간이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게 되어서 무척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E선생님과 밥을 먹으면서 도대체 이 밥이 무슨 맛인지, 반찬이 무엇인지조차 생각할 수 없었고 흥분해서 이것저것 떠들었던 기억만 있다. 아.. 잡채가 반찬이었던가?? 그건 기억이 난다.


말할 때 말이 빨라지고 벙벙 뜬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E선생님은 내가 뭐라고 말을 막 쏟아낼 때마다 이렇게 말하며 나를 진정시켰다.


- 조금만 더 천천히... 천천히....


처음으로 함께 산책을 했고 갑자기 생겨버린 5교시가 아니었더라면 운동장을 몇 번이라도 더 돌고 싶었던 시간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만남이어서였을까.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오래전 함께 담임을 했던 F선생님은 내가 얼마나 말이 많은지를 ‘이미 알고 있는’ 선생님이다.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내가 무언가를 말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보고 돌아앉으시기에 내가 이렇게 말하곤 했다.


- 선생님, 그냥 돌아보지 말고 컴퓨터 두드리면서 제가 하는 이야기를 듣기만 하세요..

- 아니, 이야기 하는데 어떻게 일을 하고 있어요..

- 아니..그럼 일을 못하시니까...제가 그냥 말만 할게요...저 보지 마시고요..


이런 이야기를 서로 했었던 사이였는데 그날도 이 이야기를 하시면서 나에게 물으신다.


- 아니, 그럼 지금은 누구랑 이야기해요??

- 저요..?? 아무하고도 이야기 못하죠...

제 옆에 아무도 앉아있지 않고 저만 덩그러니 있으니까요..

그래서... 쩌기 건너편에 앉아있는 D 선생님과 E 선생님에게 큰 소리로 이야기 해요.. 허공에다가...*^_^*..

- (모두 폭소).....


문학을 넘어서 음악에도 조예가 있으신데 이제는 미술에도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 같다. 르느와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시기에 내가 말했다.


- 선생님... 저와 미술에 대해 이야기 하시려는 건가요??

제가 미술에 대해 잘 아는데 힘드실텐데....

- (모두 폭소)...



G선생님은 내가 제일 힘들었던 어느 해에 옆 반 담임 선생님으로 나의 희로애락을 ‘이미 다 알고 있는’ 선생님이다. 일도 잘하고 아이들에게도 인기 만점이고 무엇보다도 재미있는데 그 중심에는 진지함이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이다.


그날 후식으로 나온 사이다를 H선생님이 만들어서 주셨기에 받기는 했지만 사실 나는 탄산음료를 마시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었다. G선생님이 말했다.


- 선생님.. 그 사이다 저에게 주세요..

- 아...제가 가져갈게요..그냥..

- 선생님은 다른 음료수, 탄산음료 같은 거 안마시잖아요..

- 아...??? 어떻게 알고 있죠??

- 선생님...함께 오래 있었는데 그걸 왜 몰라요...제가 알죠..

- (감동해서 발걸음을 멈추고 G선생님을 한참 쳐다봄)......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탄산) 음료를 안마신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직접 말로 들으니 얼마나 놀랐던지...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 이 사람은 이렇구나...

- 이 사람은 이걸 좋아하고 저것은 불편해 하는구나..

- 이 사람은 나와 다르구나...


‘좋다’ ‘싫다’의 문제가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


울퉁불퉁한 나의 이것저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이해해 주고 기억해 준 몇 선생님들과의 잠깐의 시간들이, 이번 주 나의 생활에 큰 힘이 되었고 힐링이 되었다.



지난주 채플 시간에 I 전도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 비밀 이야기를 하는 친구 사이...


친구와의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그토록 많은데도, 아이들은 그런 친구를 얻기 위해, 자기의 ‘비밀 이야기’를 한다. 나의 비밀 이야기가 그 친구에게 잘 스며들면, 나만의 비밀을 아는 친구로 남는 것이고, 스며들지 못하고 겉에서 돌다가 증발해 버리면, 친구도 사라지고 나의 비밀 이야기도 어딘가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아이들은 살아가면서 깨닫게 된다. 그 과정이 생각보다 힘들텐데, 아이들이 그 과정을 두려워하지 말고 맞닥뜨려서 용감하게 밟고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누군가를 얻을 수도, 잃을 수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나의 비밀 이야기를 풀어내야겠다는 ‘대단한 용기’가 있어야 하니까....


- 눈깜빡임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뜻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많은 말을 하지 않더라도 서로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내 비밀 이야기를 했더라도 다른 이에게 새어나갈까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일하는 시간이 부족한데 (때론 쓸데없는) 이야기하는 사람을 위해서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애써 들어주려고 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물만 마신다는 것을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어서 좋고 나쁘고를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애써 챙겨주려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비밀 이야기를 했지만 아쉽게도 스며들지 못해서 모든 것이 증발했더라도 이야기했던 것은 후회하지 않기..

- 비밀 이야기를 하기로 결정했던 그때의 그 상황과 마음은 아마도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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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이후 3년만에 대면 학교 축제가 진행되었다.


일명 한마음 큰잔치...


1부가 동아리 활동으로 진행되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학급 부스로 진행되었다. 학급별로 활동이 진행되면서 학급마다 여러 부딪힘, 갈등들이 있었나 보다.


어떤 아이는 울면서 상담을 하기도 하고, 담임 선생님들께서 걱정을 하기도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던 아이는 울음을 그쳤고 선생님들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큰잔치가 잘 마무리되었다.


2부 공연에서 교사 복면가왕이 있다고 해서 특별히 챙겨서 보았는데, 이렇게도 노래 잘하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우리 교무실에서 나가신 선생님들도 계셨는데 얼마나 떨렸을까....


복면을 쓰고 노래하는 선생님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외쳐대는 아이들이 신기했다.


신기한 것은, 선생님들이 선곡한 노래의 가사가 내 귀에 쏙쏙 들어왔다는 것... 깜.짝. 놀랐다..


왜 이렇게 귀에 마음에 다가오지???

뭐지..???


그중 J선생님이 노래한 곡..


- https://youtu.be/59c7v-ioU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