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름한... (2022.08.06.토) *

by clavecin

* 허름한... (2022.08.06.토) *


오래전 어느 드라마에서 보았던 장면 중 하나. 평범한 여직원이 재벌가의 아들을 남대문시장의 골목골목 사이에 있는 어느 허름한 갈치 조림 가게로 데려간다. 그런 곳을 처음 가본 재벌가 아들은 노란 양은 냄비에 담긴 갈치 조림을 맛있게 먹는 그 여직원을 ‘더’ 사랑하게 된다.


그 장면을 보면서 생각했다.


- 남대문시장에 저런 가게가 있구나

- 저 양은 냄비..(건강에 좋지 않은데..)

- 갈치 조림이 저렇게 맛있었나??


드라마에서 가끔 나오는 남대문시장 노상의 빨간 떡볶이가 너무도 맛있어 보여서 직접 가서 먹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생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그때 보았던 그 갈치 조림을 보면서 ‘아...나도 가서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은 아마도 허름한 가게, 갈치 조림과 재벌가의 매칭이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으면서도 그 남자 주인공의 공감 포인트가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 선생님... 서울에서 태어나셨어요??

-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쭉 학교 다녔는데...??

- 와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것에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 때문에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A 선생님이 하셨었다. ‘여기가 시골도 아닌데 아이들 반응이 신기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은 달라진 시스템이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 넘버에 ‘55’가 붙으면 서울 강남에 사는 자동차 넘버라고 했었고 집 전화번호도 ‘5OO-OOOO’로 시작하면 집이 강남이라는 것을 나타낸다고 들었다.


어느 동네에 사는지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고 서울을 넘어서 서울 강남에서 산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라는 무언(無言)의 강력한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월세, 전세라도 기를 쓰고 강남에 들어오려는 이유들이다.


‘좋은 인맥을 쌓을 수 있어’라는 말로 전학 가려는 아이를 붙들었던 기억도 있고, ‘좋은 인맥을 쌓기 위해서’ 왔던 우리 학교에서 ‘더 막강한 인맥을 위해’ ‘고급스러운 동아리’에 들어간다는 B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며 안쓰러워했던 기억도 있다.


- C는 나랑 잘 아는 친구야


이런 멘트를 자주 하는 D의 말을 듣고 C를 만났었는데 정작 C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 D..??? 나는 잘 모르고, 내 친구랑 아는 사람인데...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C의 행동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 C는 왜 ‘누구와 아는 사람’ ‘누구는 내 친구’ 라는 멘트를 자주 하는 걸까..

- 그를 빗대어 자기의 위상을 높이고 싶었던 걸까??

- 다른 사람이 아니어도, C 자체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어렸을 적부터 다녔던 작은 교회를 옮기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모른다.


- 더 큰 교회로 가 봐..

-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봐야 해..

- 여기서 뭐 하고 있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에서 11살 때부터 반주를 해 오면서, 그야말로 ‘귀도 닫고 입도 닫고 눈도 꾹 감고’ 살아왔다. 내 귀에 들리는 소리를 일절 집에 전하지도 않았고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할 때면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으며 피아노 옆에만 앉아있으면서 꼭 필요한 말 이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두 눈은 악보에만 고정해 놓고 사람들을 잘 쳐다보지 않았기에, 지금껏 다른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고 용케 ‘무사히’ 지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내내 생각했다.


- 좀 더 큰 교회로 가고 싶어....

- 언제 나가야 하지..

- 어디로 가야 하지....


옮긴다면 E 교회로 가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그 큰 건물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고 내내 불편했다. 그러던 중 마냥 보던 교회의 앞부분 말고 거의 본적이 없는 교회의 뒷부분에 주차할 때가 ‘딱 한 번’ 있었는데, 그때 나는 교회 뒷부분에 펼쳐져 있는 주변의 재개발 건물들을 보고 마음이 울컥했다. 그리고는 단번에 마음을 정했다.


- 아.... 여기 계속 다녀야겠다.


이 이상한 경험은 나 스스로를 무척 당황하게 했는데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었던 그때의 그 심정은, 교회에 갈 때마다 또 그토록 말 많은 사람들을 접할 때마다 좌불안석이었던 내 마음을 이제는 평안하고 안정되게 해준 결정이었다.


식당이며 세탁소며 왠지 ‘허름한 가게’만 가게 된다는 F의 경험담을 들었을 때 내 귀가 번쩍 뜨이고 두 눈이 커지고 마음 깊이 공감이 갔던 것도 나의 이 경험 때문이었다.


‘가난해도 부자 친구와 어울려야 계층 상승이 이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맹모삼천지교’나 ‘8학군’과 같은 말은 모두다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기 원하는’ 인간의 기본 욕구에 충실한 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꿈꾸고 있고 연구 결과로도 명확히 증명되었다는 저 말이 왜 불편한지 모르겠다.


- 부자 친구

- 계층 상승


나조차도 서울 한복판에 살고 있고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며 알고 있는 사람들 중 강남에 살고 있는 S대 출신들과 유명한 사람들도 많건만, 사실 그들 덕을 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가 그를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도, 나의 지금 계층을 상승시키고자 하는 생각은 더더욱 없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예전과 다르게 S 대에 입학하는 사람들 중 강남 출신이 많다는 것과 태어난 계층 그대로 고착화하고 있다는 작금의 현실...


‘계층 상승’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불편하면서도 매주 토요일 오후에 하는 G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안타까운 아이들을 보면서는 내내 이렇게 생각했었다.


- 공부를 해야 해...저기서 벗어나려면...

- 그래도 아직까지는 공부가 답이야...


몇십만원을 넘어서 이제는 몇백짜리 신발과 패딩을 자랑하고 온갖 최신폰과 태블릿으로 수업을 듣는 아이들로 넘쳐나는 아이들이 어떤 생각으로 우리 학교에 왔는지 모르겠지만 바라기는, 더더 화려하고 반짝이는 것들을 누리기 위해 공부하기보다, 허름하고 초라한 것들을 좀 더 유심히 바라보고 알고 싶어하는 깊은 눈매를 지닌 사람들로 잘 성장했으면 하는 소박한 생각을 늘 해 본다.


가능할까......과연...???


왜...걱정이 될까........


********************


*** 방학하던 주의 어느 요일 오전 수업, 4교시 이전에는 화를 내지 않는 내가 아이들에게 좀 큰소리로 화를 냈다.


‘멍한 눈빛’ ‘풀어져 있는 교복’ ‘아무것도 없는 책상’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런 말들을 했다.

- 내가 이 학교에 왜 다니는지 생각해 보기를..

- 첫인상은 꾸며낼 수 있는 가짜 모습이지만, 사람의 진짜 모습은 마지막 모습이야.

- 이렇게 자유가 주어진 학기 말일수록 3월 첫 만남 때처럼 더 갖춰 입어봐..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다. 사실..


- 이 등록금으로 다른 사람을 도와 봐..

이런 자세로 지낼거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이 생각지도 않게 많았다는 것에 입은 혼내면서도 마음은 흐뭇했다.


SKY를 언급하지 않고 명문고가 되는 방법은 없는걸까....


아니...명문고..라는 말보다, ‘제대로 된 아이들을 키우는 좋은 학교’라는 타이틀은 없을까...


SKY...명문고....라는 단어로 꽉 차 있는 나와 너, 우리의 삶이 조금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의사, 변호사, 강남..을 언급하지 않고 ‘다른 단어’로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을 키우고 싶다.

어떤 사람을 키워야 하는 걸까......


* 학교 설명회 일정


무엇을 기대하고 오는 걸까..

무엇을 설명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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