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by clavecin

*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2022.08.13.토) - 1 *

- (3편 중 첫 번째 이야기) *

- (이번 주는 글이 계속 쏟아져 나와서 3편의 글을 썼습니다) -


언젠가 상담을 하던 A가 말했다.


- 선생님..선배들이 그러는데요, 선생님이 부르면 곧바로 가지 말라고 하던데요..

- 그게 무슨 말이야??

- 곧바로 가면 혼나는데, 조금 있다 가면 선생님, 까먹으신다던데요??

- 뭐라고?????


놀랍게도 A의 말은 사실이었다. 원래부터 예민하고 깐깐한 성격인 내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조금씩 그 성격을 바꾸려고 ‘노오력’을 하게 되었고, 거기에 온갖 것이 다 각인되고 기억되어 버리는 (약간은 놀라운) 기억력에도 ‘일부러’ 기억하지 않으려는, 까먹으려는, 잊으려는 ‘노오력’을 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덤벙거리고 잘 까먹는 것이 내 성격과 기억력이 되어 버렸다. 안타깝게도..


그래서 불렀던 B가 나를 찾아왔을 때 주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


- 왜요?

- 선생님이 부르셨다고 해서..

- 내가..?

- 네...

- 아닌데..

- 네??

- ....아???? 맞다! 불렀어!!! 그런데 왜 불렀더라..ㅠ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메모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번뜩 떠오르는 일들이 많은데 머리로만 기억해 놓았다가 까먹었던 일들이 많아서 수시로 메모를 하거나, 핸드폰에 저장해 놓는다. 그런데...메모를 해 놓았다는 것을 까먹어서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것도 많으니...ㅠㅠ



언젠가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야간자기주도학습을 마치고 내려가는 2학년 아이에게 할 말이 있어서 불렀는데 내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 C~..

- 아...선생님... 제 이름 아시네요..??

- 뭐야... 너 1학년 OO반 OO번 이었잖아..

- (화들짝 놀라며) 그걸 어떻게 기억하세요??


그러니깐 말이다...왜 그런 것이 기억이 날까...갑자기...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었고 나조차도 놀랐으니까... 중요한 것은, 진짜로 기억해야 하는 것들보다,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가 있을 때가 많다는 것...


예를 들어, 졸업 한지 한참된 우리 반 D의 어머님 이름이라던가, E 선생님이 졸업한 고등학교, 28년 전에 입었던 F 선생님의 옷이나 G가 지나가면서 던졌던 말들..뭐 이런 쓰잘데기 없는 것들...


그런데 이제는 이름이나 번호를 외우는 것도 힘들어졌다. H가 그렇게나 기억력이 좋던 나를 볼 때마다 묻는다.


- 선생님.. 제 이름은요??

- .....음....

- 제 이름 맞춰 보세요..

- ...뭐였더라....I ??

- H 인데요..

- 아!!!


또 잠자기 전에 하루 일과가 필름처럼 좌르르 펼쳐져서 생각나는 경우가 있다. 교무실에서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에 모두가 꺄르르르 웃었던 일과 같이 빙그레 웃음이 나오는 일들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대부분은 기분이 좋지 않았던 일들이 더 기억난다. 내 앞에 스쳐가면서 인사하지 않고 지나갔던 아이, 그때 딱! 반대의견으로 받아쳤어야 했는데 우물쭈물 머리만 굴리다가 멍하니 놓쳤던 일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서 J 선생님이 나에게 말했었다.


- 선생님에게 찍히면 안되겠는데요....


하루에 있었던 일만 생각나면 좋겠는데, 어떤 때는 오래전 옛날 일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역시나 좋았던 일도 있고 억울했던 일들이나 속상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인생에 있었던 그 수 많은 일들이 시도 때도 없이 왜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기억할 것은 기억하고 잊어야 할 것은 잊어야 하는데 말이다.



- 중천(重泉) :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많은 단어 중에 저 한자가 맞지 않을까 하는데, 죽은 자들의 영혼이 곧바로 저승으로 가지 않고 환생을 기다리며 49일 동안 머무는 공간이라고 한다. 아마도 불교 용어인 듯.(그러니 크리스천들은 놀라지 마시기를..)


K 의 말에 의하면 중천에는 이승에서의 모든 기억이 다 사라지고 ‘단 하나의 기억’만 가지고 갈 수 있다고 한다. ‘단 하나의 기억’이라니..... 다른 것은 기억하지 못해도 상관없으니 절대로 잊어서는 아니 되는 그 무엇, 단 하나의 기억...


중천이 아니더라도 내 인생에서 나에게 찾아왔었던 수많은 이야기들, 사람들 속에서 무엇을, 누구를 기억해야 할까... 무엇을 건져야 할까.. 아마도 ‘의미있는’ ‘좋은 것’을 기억해야 할텐데.. 무엇에 또 누구에게 좋은, 깊은 의미를 두어야 하는 걸까..


모든 것을, 모든 사람을 기억할 수도 없고 버려야 할 것들, 잊어야 할 사람들은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어야 할텐데....어떻게 골라야 할까.. 무슨 기준으로...


이 말을 하는 이 순간, 내 눈에는 왜 눈물이 고이는 걸까......


아마도...


아마도 또.렷.하.게. 각인되어서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전혀 모르는 것처럼, 아예 없었던 일처럼 해야 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러는걸까....


도저히 안되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겠니......


난 못하겠는데....L...??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잊으려고 애쓰는 것이 더 힘들다....


잊으려 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이 기억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



*** 예전에는 영어를 무척 좋아했다. Y선생 영어가 1980년에 나왔던 초반부터 그 영어테이프를 쭉 구독했었다. 2021년에 Y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마치 나의 청소년기의 어떤 추억 하나가 끊어진 듯 했으니까...


이번 2차 지필고사 때는 유독 자율학습 감독이 많았다. 처음에는 읽을 책을 가지고 들어갔었다가 그 책을 다 읽고 나니 갑자기 영어 단어가 외우고 싶어졌다.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사용하는 영어 참고서 단어를 외우기 시작했고 쓸데없는 생각들을 없애는데 영어 단어 외우기가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방학을 맞아서 영어 단어 외우기에 도전하고 있지만 생각처럼 규칙적으로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다가 앞 단어 몇 개만 외우고 말 듯....


제대로 기억하려면 한번 외우고 다음 날 또 외우고, 자주자주 봐주어야 할텐데...


자주자주 봐주지 않으면 잊혀질텐데....



잊을 수 없는 2022년도의 여름이 끝나가는 것 같다.


* 여름의 끝자락 – 김동률

https://youtu.be/iXR6h8WZHz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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