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플러스 Sep 06. 2017

챕터 1. 감정과 심리상태의 연결관계 - 1편

01. 감정은 현재를 말해주는 솔직한 표식




나는 더 대단한 사람이고 싶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항상 사랑해주면 좋겠어요





한 번은 상담을 하면서, 이런 경우가 있었다. A님이라고 하는 그분은 감정표현이 풍부하고, 리액션이 풍부한 타입의 여성분이었다. 사람들과도 곧잘 어울리고, 이야기도 잘 하는 쾌활한 사람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A 님이 활달한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들과 거리낌 없이 함께해주는 상황을 좋아했고, 그녀 자신도 그런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행동에도 일정선의 한계가 있었다. A님은 정작 자신의 솔직한 심정이나, 힘겨운 것들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술자리나, 놀이를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지만,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힘겨운 감정들에 대해서는 결코 이야기를 하는 법이 없었다. 


"전 다른 사람들에게 멋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요. 항상, 항상 그래요."
"A님은 지금도 충분히 멋진 모습으로 보이고 계실 거라 생각해요."
"항상 그렇진 못해요. 저도 지칠 때가 있거든요."


A님은 이미지 메이킹에
 굉장한 강박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다 보니 상대에게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려 노력하면서,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써버리고, 지쳐버렸을 때에는 혼자서 자신을 채운다고 했다. 스스로 선택한 방식이니, 문제는 크게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정작 A님은 자신이 자주 지쳐버린다는게 문제였다. 스스로 지나치게 지쳐버린 경우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고 했다. 그녀 스스로 만들어온 이미지가 너무나 중요하고, 그 비중이 크기 때문에 - 그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가려야만 했던 것이다. 그녀는 나와의 이야기에서, 자신이 굉장히 공허한 감정에 자주 휩싸인다고 말해주었다. 그녀 스스로, 자신이 힘겨울 때에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삼갔고, 괴로운 감정을 토로하는 건, 오직 자신의 익명 일기장에서 뿐이었다. 


"전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는 멋진 사람이고 싶어요. 그래서 항상 자기관리에 몰두하죠..."
"감정에 대한 부분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려고 하시는 편이신가요?"
"네. 하지만 제 감정은, 제 마음대로 되질 않아요."


A님은 일주일에 한 번은,  힘겨울 때에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방 안에 틀어박혀, 이불속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어떤 사람도 만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꾸미지 않아도 되는 곳은, 자신의 방 안. 웅크리고 있는 작은 이불 속 뿐이라는 거였다. 그녀는 주기적으로 극도의 우울감과,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고. 때로는 가슴속에 쌓인 분노와 스트레스에 지쳐서, 폭식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 자신은 자신의 감정이 문제라며. 감정을 좀 더 컨트롤하고, 억눌러서 자신의 상황을 더 나아지게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나 감정을 제어하는 시도를 반복할수록, 감정적 폭발이 일어나는 시기는 더 빨라지고. 가벼운 불면증이나, 거식증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듯했다.



그녀 스스로 바라는 자신의 모습은. 항상 강인하고,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부응할 수 있는 매력적인 사람의 모습이었다. 분명 어떤 부분에서는 A님은 이미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멋진 모습을 자신이 좀 더 항시적이고, 지속적인 상태로 유지하길 원했다.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착취가 일어났고, 기존에 있던 자기혐오적인 감정들이 더 강해져서. 자신을 몰아세우게 된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을 막아서버린 것이다. 이러한 사례에서만 보더라도, 자기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억지로 바꿔내려 하는 시도는 굉장히 위험하다.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을 위해서, 자신의 나약한 모습이나, 맘에 들지 않는 모습을 잘라내려고 하는 시도는 - 그 사람의 내면의 균형이 깨져있을수록, 극심한 부작용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감정을 억누르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행복해지나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감정을 참고, 견디면서 그 결과에만 집중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상황적인 기대치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해내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을 통해, 미래에 약속된 자신에 대한 애정이나, 사회적 인정, 자기만족 같은 것들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보다 더 대단한 결과를 내고 싶어 하는 마음. 이 심리는 어찌 보면 - 도박을 통해 한 방을 노리는 도박사의 감정과 비슷하다. 자신의 현재에 대한 불만의 감정이, 현재를 바꿔내려는 원동력이 되고 - 이 원동력을 기반으로 더 큰 변화를 추구한다. 듣기에 이론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한계치를 느끼거나,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 더 큰 칭찬과 성공에 중독된 나머지, 자기 착취를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건강한 상태의 감정은 우리가 정말 멈춰야 할 떄를 이야기해주는 신호등의 역할을 한다





감정이라는 것은, 우리 자신의 상태를 그대로 말해주는 정직한 신호와도 같다. 우리 스스로 견딜 수 없는 것들이나, 마음에 드는 것. 싫어하는 것. 피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솔직한 반응을 말해주는 것이 우리의 반응이고, 감정적 작용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고, 표현하기보다 - 감정을 억누르고, 결과를 위해 살아온 경험이 더 많다. 학교나, TV, 영화나 온갖 미디어에서 많은 사람들이 노력과, 인내를 소중한 가치로 이야기하는 사회. 참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견뎌낼 수 없는 것을 나약함이라고 가르치는 사회다. 백수와 잉여가 되는 것에 대해, 수치스럽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회. 휴식과, 여유에 대해서 사치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기 착취에 대해서 그 누구도 경고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있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사회에 살아가며
, 자신의 감정을 무시할 것을 요구받고있다는 이야기다. 매스 미디어에서는 누군가의 경제적, 사회적 성공을 찬양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게으름을 비판한다. 남들이 안된다고 할 때, 너는 더 열심히 노력해서 꿈을 이루라고 이야기한다. 남들이 8시에 일어나 일과를 시작한다면, 당신은 6시에 일어나 성실함을 무기로 삼으라고 말한다. 여유를 부리기보다, 시간을 쪼개어 틈틈이 더 일하고, 더 많은 보상을 가져가라고 이야기한다. 끝없는 공부와, 높은 성적, 연봉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행복해질 거라는 허상과 같은 이미지를 반복해서 주입하는 세뇌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감정보다 결과를 위해 스스로를 억누르고, 정상적인 감정조차 나약함으로 치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회는 우울한 감정이나, 괴로운 감정. 무언가를 하기 싫어하는 것들은 부정적인 감정이라 칭하며, 타인에게 보여서는 안 될 것으로 가르친다.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고서야, 그런 감정은 함부로 꺼내서도 안되고, 개인 간의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다 보니. 깊이 있는 관계를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는, 폭탄처럼 자신의 기분을 끌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감정에 대해 충실하고, 그것을 표현해본 적이 없고, 다른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끼기가 힘들다. 어디를 가도 다들, 자기감정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고, 그것을 이야기하지 않는 차가운 사회. 그런 사회에서는 모두가 감정을 억압한 대가로, 우울증을 안고 살 수밖에 없다. 모두가 우울한 감정으로 살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 참으로 기묘하고, 이상한 사회구조다.




제 감정은 왜 마음대로 되질 않는 걸까요?
이런 힘겨운 감정을 완전히 없애버릴 수는 없는 건가요?





처음에, A님은 나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굉장히 어색하게 생각했었다. 타인이 자신에게 어떠한 부분이 힘든지를 묻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A님 본인이 그런 성향을 그 누구에게도 직접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온라인 세상에 놓인 그녀의 일기장을 통해 A님과 소통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느끼는 감정의 이유와, 거기에서 스스로 어떻게 반응하게 되는지를 물었을 뿐이다.  A님은 자신의 부정적 감정이 누구에겐 가는 단순히 동정의 의미가 아니라.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걸 알고 놀란 것이었다. 자신이 나약하면, 그 누구도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으리라는 강박적인 관념이, 작은 경험을 통해서 조금씩 깨어지게 되었다.


A님은 점차 자신이 힘겨웠던 지점에 대해서,
 곱씹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자신이 힘겨웠던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는 것. 도태되고, 타인에게 더 이상 필요로 해 지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한 사람에게서 만족스러운 감정적 연결이나, 유대감을 느껴본 적이 없고. 그렇다 보니 그것을 숫자로. 더 많은 사람들로 채우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고독감은 채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과 약속을 잡고, 더 자주 그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 바람에, 그녀의 심신은 이미 지쳐버린 상태였다. A님은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진지하거나, 우울한 감정을 드러내는 자체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상대가 약간이라도 우울감이나, 괴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이면, 즉각 거리를 두었다고 했다. 


"그 사람의 우울한 감정이 너무 싫었어요. 병균같이 옮을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요."
"실제로 다른 사람의 감정에 쉽게 영향을 받는 편이신 건가요?"
"그런 것 같아요. 감정적으로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자리를 피하고 싶고, 맘이 너무 불편해요."


A님이 느끼는 부정적 감정에 대한 인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야기였다. 자기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동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건 알고 있냐고 묻자, 그녀는 꽤 충격을 받은 듯했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아닌, 타인의 감정이나 상태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정작 자신의 감정이나, 내면 상태에 대해서는 둔감한 경우가 많다. 그만큼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거나,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는 일에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타인을 외부의 위협으로만 생각하고, 그들을 적대시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하지만 그런 지나친 일관성이, 타인이나, 자기자신에
 있어서도 -  밝은 측면만을 좋다고 느끼게 만드는 고정관념을 낳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인식이 자기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부정적 감정을 잘라내거나, 제어하려 하는 시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재혁 님은 제가 우울한 이야기를 해도 괜찮은 건가요? 제 감정이 더럽거나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글쎄요? 그게 더러운가요? 사람은 누구나 그런 감정을 갖고 있어요. 단지 그걸 표현하지 않을 뿐이죠."




사람의 감정은 좋고 나쁨만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감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갖고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정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 감정을 갖고 있는 본인에게 있어서, 그 감정들은 모두 현실이고, 자기 자신의 경험의 일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의 감정은 모두 존중받아야 할 것이지, 숨기거나 억눌러야 할 것들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항상 상담을 하게 될 때. 상대에게 이야기해준다. 당신의 감정은 항상 옳은 것이고.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것이라고. 그렇기에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니, 억지로 억누르거나. 무시하려 하지 말아달라고. 그렇게 이야기한다. 자기 자신의 마음이라고 해서, 한 가지 상태만을 유지할 수는 없다. 그때그때의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고. 자신의 몸과 정신이 말해주는 것들을 잘 읽고서, 어떤 것들이 자신에게 그런 감정을 들게 했는지. 무엇으로부터 자신의 감정이 시작되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내 몸을 내가 아끼고 사랑하듯이. 자신의 감정 역시도 그런 주인의식을 갖고 보살펴야 하는 것이다.








A님은 이후로도 자신의 감정이나, 억눌린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면서. 점차 자신의 감정이 더럽거나, 없어져야 할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신 듯했다. 그 과정에서 예전보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그런 감정이 드는 이유를 조금씩 고민하기 시작하시는 듯했다. 기존에는 그런 감정을 그저 부정하거나, 혼자서 폭발시키는 방식으로만 풀어왔다면. 이제는 제3의 관찰자인 필자의 조언을 조금씩 받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뒤돌아보는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녀의 변화가 상당히 빠르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그런 좋은 변화가 이어질 것이라며 응원해주었다. 그리고 나중이 되어서야, A님은 스스로 자신의 진짜 감정. 자신이 우울감이라는 것을 왜 싫어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과거의 경험에 대한 자기분석의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녀 스스로 발견한 한 가지 단서를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어쩌면... 그냥 전 아무도 제 이야기를 들어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네,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직접 해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셨죠? "
"네. 그렇지만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어요."
"어떤 부분이요?"
"왜 전 자꾸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걸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A님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냈다. 자신의 감정이 반복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힘겨움의 이유. 자신이 멋진 사람으로 보이려고 하는 그 이유에 대해서, 스스로 질문하기 시작한 거였다. 나는 A님이 드디어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감정 속에 숨겨진. 진짜 자신의 상태. 자신의 핵심적인 갈망을 들여다보아야 할 시간이, 마침내 다가온 것이다.




-


생활 속 심리분석
챕터 1. 감정과 심리상태의 연결관계   
-  1편, 감정은 현재를 말해주는 솔직한 표식


작가의 이전글 생활 속 심리분석 : 여는 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