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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플러스 Feb 18. 2023

작은 회사의 생존전략, 기획자의 관점

기획자의 관점으로 바라본 IT 생태계에서 살아남는 방법



작은 회사는 살아남기가 쉽지않다.
그럼 우린 대체 어떻게 살아남지?



1.

내가 최근에 고민하기 시작했던 지점은, 내가 아닌 회사의 생존방법이었다. 작은 규모에, 개발한 이력도 많지않은 회사가 어떻게 일을 물어와야할지. 어떻게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지. 내부 팀원들간의 결속이나, 기술적 검증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기획자 입장에서 개발자의 코드가 좋고 나쁜걸 어떻게 알 수 있는지. 그런 지점들을 계속해서 고민해야했다. 어찌보면 내가 처한 상황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런 지점을 회사 대표님에게 이야기해드려야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부 서비스는 개발을 해야하고, 외부 서비스도 물어와야하는데. 내가 제안서를 써야하는 상황.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퇴사를 고민했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선택한건 그 반대였다. 내가 직접 제안서를 쓰고, 미팅을 하고, 서비스를 물어오는 거였다. 한 번 쓸 때마다 2천자가 넘는 글을 매번 써야했고, 하루에 두세번은 그런 제안서를 쓰기 위해, 다른 분야의 서비스를 분석해야했다. 시간이 오래 걸릴 때에는 2~3시간 이상을 API 검색과 기능검색에 사용하기도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알게된건 '이게 바로 기획자의 역할이구나' 라는 깨달음이었다.



2.

서비스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했을 때. 무슨 서비스를 물어올 것인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서비스? 회사소개 수준의 홈페이지 개발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어려운 서비스, 남들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서비스를 찾아다녔다. ERP 부터 대형마트 상품관리, 공사현장이나, 화물운송 O2O, 철도검침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최근에 들여다본 서비스 분야만 해도 스무군데가 넘는다. 각각의 제안요청 글을 보고, 첨부된 기획안을 들여다보면서 '저걸 만들려면 어떻게해야하나'를 알아보는게 내 주 업무였다.


서비스가 만들기 어려울수록, 경쟁자도 적어진다. 어찌보면 내가 생각했던 지점은 '경쟁자가 적은, 어려운 서비스에 입찰을 넣어보자'는 거였다. 남들은 할 수 없는 거. 남들은 피하게되는 거. 그 지점들을 파고들어보니, 그중에서도 '난이도가 높은 서비스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나도 그런 서비스들을 '설계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갔다. 심지어 그걸 설명해서 대표님에게 '얼마나 많은 인력이, 기간이 필요할지'를 이야기해야할 때는 더더욱 그랬다. 이게 진짜 가능한가, 아닌가, 해본적이 없어서 몰랐던 일들이 많았다. 그래도 즐거웠던 것 같다. 내가 할 일을 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런 권한이 내게 있다는게 참 행복했다.




내가 하는 일을 넘어서,
역할을 나누는 방법


3.

제안이 성공하고, 미팅과 업무가 늘어나기 시작했을 때. 새로운 기획자를 뽑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그리고 다시금 고민이 시작됐다. 혼자서 일을 잘하는 사람과, 그 사람이 없어도 일할 수 있는 팀을 만드는 것은 완전 다른 차원의 일이다. 그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내가 원하는건 '내가 일을 잘한다는 자기만족'에서 끝나는게 아니었다. 내 팀원이 나만큼 일을 잘 하게 되어서, 스스로 독립해도 좋은 수준이 되는거. 그리고 그런 상황을 '회사 단위'로 퍼져나가게하는게 목적이었다. 수준낮은 작업을 반복하다가 퇴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도록 역할을 주는 - 그런 일이 하고싶었다.


그래서 신입을 뽑았다. 정말 운이 좋게도, '디자인이 아니라, 기획을 하고싶다'고 말하는 신입이었다. 지금까지 여러 타입의 사람들을 가르쳐봤지만,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나본적이 없다. 기획자가 하고싶다고? 정말로? 그때부터 내 두번째 고민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이 사람을 어떻게하면 더 뛰어난 기획자로 만들 수 있을까. 어떤 준비과정과 커리큘럼이 필요할까. 이 사람을 나처럼 강화시키려면 무슨 훈련을 시켜야할까. 그런 고민을 수없이 해가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실험해본 것들을 다시 회사에서 돌아와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제대로 가르쳤는지 생각해보고. 구체적인 방향을 찾는 과정이 이어졌다.


신입이 들어온지 3주 정도가 지나자, 고민해야할 지점이 조금 달라졌다. 강화시키는 방법을 넘어서, 내가 하는 일을 어떻게 '맡길것인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난이도가 낮은 작업을 맡기면 처리는 되겠지만, 상대가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어려운 내용을 맡겨버리면, 내가 들어가서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그럼 어느정도 수준으로, 어떤 난이도의 작업을 시켜야 서로 만족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부터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쉬운 것들을 하게해야할지. 아니면 이 사람이 원하는 것들을 먼저 해보게 해야할지. 일단은 원하는 것들을 해보게하는 방향으로 시작해봤다.



4.

신입 기획자의 작업을 지켜보면서, 어떤 지점들을 체크해야하는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처음 해보는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 어려운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신경쓸 것들이 너무 많아보였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 작업을 기다리다보니, 일을 맡긴 고객 쪽에서 만족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결국, 지금 당장은 난이도가 높은 서비스를 맡기엔 아직은 무리라는 생각을 하게됐다. 이 역시도 일종의 실험이었지만, 개인의 선호도를 바탕으로 작업을 선택하게하는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해서 너무 쉬운 작업을 시켰어도, 흥미도가 떨어지니 문제가 생길거다.


결국에는 '일이 쉬운, 재미있는' 작업을 물어오는게 정답이었다. 그러니 제안서를 쓸 때도 난이도가 적절히 낮은 것들을 섞어서 진행할 수밖에 없겠지. 물론 제안을 쓰는 것 마다 입찰이 성공한다면 정말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이야기다. 남들도 열심히 노력해서 입찰하는 와중에, 나만 운이 좋을 거라고는 할 수 없을테니까. 그럼 결국엔 신입들을 위한 프로젝트는 무엇이 되는가. 어떻게 그들의 실력에 맞는 프로젝트를 가져올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충분한 경험치를 쌓아야 레벨이 오를텐데, 지금 프로젝트는 너무 무겁거나 복잡하니까. 항상 밸런스를 맞추는 지점이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디자이너와 기획자는
뿌리부터 서로 다르다.



5.

디자이너를 기획자로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않다. 애초에 바라보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기획자가 되고싶다고 말하는 별종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디자이너 기준에서도 설계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몸값이 오르지도 않고, 언제까지나 비주얼에 매달리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디자인이 뛰어난 회사라면 몰라도, 우리는 개발을 위한 설계와 기획이 주가 되는 회사니까. 디자인에 목을 매는 사람에겐 재미가 없을 거라는 걸 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UI 디자이너를 뽑아서 기획자로 만들려는 시도가,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도 생각을 하게된다.


포트폴리오만 봐도 이 사람이 하고싶은게 무엇인지가 보인다. 화려하고 멋진 시각물을 만들고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으니까. 그런 사람들은 기획자로서 성공하기가 어렵다. 화면이 나오기 이전의 로직과 데이터, API와 DB를 이해해야하는 작업이니까. 이런 지루한 작업이 그들에게 즐거울리 없다. 이건 디자이너가 개발을 하기 어려워하는 것과 비슷한 영역이다. 내가 디자이너를 기획자로 만드는 일이 어렵다는 것도 이런 지점이다. 애초에 원하는 '역할'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년차 UI 디자이너'들을 상대로 '기획자이자 설계자'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는건 - 가끔씩, 별종들이 존재해서 그렇다.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시각 디자이너들이 머리가 좋다고 생각한적이 별로 없다. 감각적으로 뛰어난, 육감적인 동물이라고는 생각해봤어도, 머리가 좋은것 같진 않다. 대부분 계산에 빠르고 정보연결에 빠른 사람들은 디자인 이전에 다른 것들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수없이 펼쳐진 정보와 독특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 그 사람들을 만나서 배우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8년이 넘게 그런 사람들을 찾아다녔지만, 내 수준이 높지 않아서였는지. 그런 사람들을 쉽게 찾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그들이 만들어둔 저작물을 찾는게 더 빠른 방법이었지. 그리고 대부분 그런 저작물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론'을 만들었고, '관점' 자체가 다른 사람들이었다.


내가 기획자로서 찾고있는것도 그런 '관점'이 다른 사람들이다. 디자인을 하곤있지만,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시각물에 대한 집착보다,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을 다루고싶어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찾으려고 하다보니 꼬이는 지점들이 많다. 대부분이 디자이너라는 이름을 달고, 시각물을 만드는 것에 더 오랜 시간을 들이는 사람들이니까. 말이 통하지 않을테니, 내가 노력해도 그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 거란 걸 알게된다. 당연히 그들의 목적은 디자인적 완성도, 좀 더 대단한 시각물의 영역이니까. 그런 사람들을 교육한다고 해봐야, 내가 가진 지식들이 유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 겉도는 관계가 될 수 밖에 없다.


내가 지나치게 생각하는 걸까? 그냥 적당한 사람을 뽑아서 가르치면 설계와 기획을 할 수 있을텐데, 내가 너무 관심법 수준의 망상을 하고있는건 아닐까? 사실 이런 생각을 하게된 이유가 있다. 실제로 디자인 관심사가 높은 사람들을 교육해본 과정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정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교육을 하려해도, 관심사가 다르니 '시각물 제작 기술을 발전시키는 법'이 아니면 대부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내 쪽에서도 여러 지식을 갖고있어도 즐거울리가 없었지. 그런 경험을 몇번씩 하고나니, 사람들에게 뭔가를 알려주는게 지겨워졌다. 어차피 그들에게는 별로 유용한 지식이 아닐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디자인에 대한 확고한 장인정신. 나는 대부분 그런 생각을 갖고있는 사람들과 굉장히 쉽게 부딛히게된다. 디자인은 도구일 뿐, 어떤식으로건 대체될 수 있으니까. 기능을 위한 개발과, 실제 동작하는 로직이 더 중요하니까. 허공에 붕 떠있는 감각같은 것보다, 공식화될 수 있는 논리와 체계적인 지식, 이론들이 생존에 도움이 되니까. 이런 이유들을 생각하다보면, 디자인에 대한 지점보다는 로직을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단걸 생각하게된다. 그래서 신입을 뽑는 과정에서도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뽑아야한다고 생각하게 되는거겠지. 그렇게 보면 내가 생각하는 것들은 무시할 수 있는 지점이 못된다. 논리보다 감각을 우선하는 사람들과의 충돌은, 이미 예상할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런 지점을 예상할 수 있다면, 그런 충돌은 미리 피하는게 낫다.



6.

난이도가 높은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획자 집단을 모으고, 개발적인 지점만 처리할 수 있다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질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설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커리큘럼을 만들어서, 교육도 하고, 실전도 시키는 방식의 학원도 만들 수 있겠지. 어찌보면 그런 '전문화된 집단'을 만들고싶은게 내 바램이다. 디자인의 레벨이 아니라 UI 설계, 서비스 분석에 집중된 형태를 다룰 수 있다면, 아마 훨씬 소수의 인원만이 남게되겠지. 하지만 그런 방향이 오히려 좋을수도 있다. 수준높은 사람들을 모아서, 고급 교육과정을 거치는 것 만큼 효율적인 과정도 없을테니까. 지금은 회사를 위해서 사람을 뽑아야하지만, 나중에는 논리적인 기반이 탄탄한 사람들을 모아 - 설계 전문가 집단을 만들 생각이다.


회사의 생존 관점에서도 디자이너 집단보다, 설계자 집단이 훨씬 생존가능성이 높다. 개발적인 지점과도 잘 맞물리고, 난이도가 높은 설계는 아무나 다룰 수 있는게 아니니까. 희소성이 있어서 경쟁력이 있는 거지. PXD같은 아카데믹한 성격은 아니겠지만, 자체적인 연구자료를 만들어서 배포하는 일은 하게될거라고 본다. 그리고 실제로 쓸 수 있는 기법들도 하나씩 정리를 해서 책을 내거나, 강의자료를 만드는 것도 진행해야겠지. 다만 이런 작업들이 일반적인 UI 디자이너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기획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디자인 쪽에 파고드는 사람들에겐 흥미로운 이야기는 아닐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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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XD 이야기를 하다보니 생각났다. 퍼소나에 대한 내용부터, 포스트잇 기반 분석에 대한 부분까지. '왜 문제인지' 하나하나 분석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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