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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예술 박기열 Aug 08. 2018

삶은 예술 7 - 흐린 기억 속의 그대

듀안 마이클스 vs 김아타

얼마 전 집안에 강아지 한 마리를 가족으로 맞이했다. 

프랑스 태생의 이 강아지는 귀에서부터 자라는 털이 어깨까지 길게 늘어져 그 모습이 마치 나비모양과 흡사하다고 하여 ‘빠삐용(프랑스어로 나비)’이라 불린다.
어린 시절 나는 마당에서 그냥 발바리를 오래 키운 경험은 있지만 당시에는 부모님이 키우신 것이고 마당 한구석에 묶여 지내는 녀석이 나만 보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던 기억뿐이어서 커가면서도 강아지를 좋아한다거나 강아지를 너무 키우고 싶다거나 하진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 녀석을 입양한 후 집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반려동물이 처음이라서 모든 게 낯설고 불편하기만 했다. 맞춰야 할 주사는 왜 그리 많은지 돈도 무척 많이 들어가고 여기저기 오줌을 싸 대고 손가락을 계속 깨물려고 하는 게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그렇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 무렵, 외출하고 밤늦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평소와 다름없이 설거지를 하는 아내와 숙제를 하던 두 딸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그때, 헬리콥터 프로펠러 마냥 꼬리를 흔들며 바람처럼 나에게 달려오는 우리 집 강아지.
형체 없이 소리로만 울려 퍼지던 가족들의 인사는 메아리가 된 지 오래고 내 눈 앞에는 나를 간절히 반겨주는 이 녀석이 서있다. 귀찮기만 했던 강아지가 온전히 내 마음에 들어온 순간이 그날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그 후로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줄을 채워 강아지와 산책을 나가고 간단한 훈련들을 시키기 시작했다. 또한 목욕도 혼자 시키고 병원도 직접 데려갔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한참 예쁠 때 열심히 들이대던 카메라도 이제 이 강아지를 향해있다.
하지만 아직 어린 강아지라서 그런지 한시도 가만있질 못하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제대로 초점을 맞추기 쉽지 않다. 
마구 흔들린 사진 속엔 강아지가 지나간 흔적만 있을 뿐.

보통 일반인들이 사진을 찍을 때마다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노출을 제대로 맞추라거나 구도에 신경 쓰라는 말이 아니라 ‘초점 잘 맞춰’ 
그렇다. 사람들이 사진을 보면서 가장 조심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피사체가 흔들리지 않고 정확하게 나왔느냐 인데 일반인들의 사진이라는 것이 우선 인물이 중심이고 색감이나 구도를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 훈련과정을 통한 숙련도가 요구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일반인에게 누군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흔들린 사진은 사진으로서의 가치가 없을 수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사진작가 듀안 마이클스(Duane Michals)의 사진은 잘 찍은 사진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듀안 마이클스의 사진을 시각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관점에서 읽는다면 사진은 작가가 느낀 주관적 경험의 전달체이자 일상생활에 은닉된 내재적 형상의 재현에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듀안 마이클스’라는 이름 앞에는 늘 시퀀스 포토그라피(sequence Photography. 연속사진)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데 그것은 사진의 언어적 표현과 접근으로써 단 사진(one cut)이 아닌 연작사진(series)으로 서술하는 표현법을 뜻한다. 그가 촬영한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초상사진을 보면 정면을 응시한 첫 번째 사진부터 머리를 흔들어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까지 총 세 장의 사진이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 장의 사진이 작품 하나라고 인식됐던 지난 시대까지의 작품 개념과는 달리 한 작품 안에 여러 장의 사진을 보여줌으로써 피사체 혹은 모델 안에 내재된 이미지를 다양한 화법과 문장으로 좀 자세하게 또 철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는 손쉬운 카메라 조작으로 한 장의 필름에 여러 장의 이미지를 담아 촬영하는데 이것을 사진 용어로 ‘다중노출’이라고 한다. 보통 필름 감기 레버를 돌려야 다음 필름으로 넘어가는 카메라를 간단한 버튼 조작 하나로 필름을 고정시켜 한 장에 여러 번 촬영할 수 있는데 그의 작품 ‘날개 잃은 천사’나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를 찍은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사진 속 인물들의 이미지가 흐리게 겹쳐지면서 뭔가 꿈속 같고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다중노출 기법을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듀안 마이클의 사진

지난 수 세기 동안 많은 예술가들의 관심 대상은 눈에 보이고 그래서 인식할 수 있는 대상들이 아니라 이성과 논리 영역밖에 존재하는 그러나 이미 그 잠재성을 가지고 있는 내재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꿈이나 환상, 신의 존재 유무, 음악의 인상, 작가의 예술적 직감 등은 가장 전형적인 내재적 형상이다.
사진 매체의 특성상 필름에 빛으로 각인된 이미지는 픽션(사실)이라는 상황을 그 어느 장르보다 간결하고 뚜렷하게 뒷받침하고 있는데 듀안 마이클스는 그 점을 이용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심리와 미묘한 상황들을 흔들리고 겹쳐지는 이미지를 통해 드러낼 수 있는 사실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듀얀 마이클스와 형식은 비슷하지만 좀 더 동양적 사고와 형이상학적인 철학을 주제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김아타는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알려져 있는 세계적인 사진작가이다.
사진이 아니라 기계공학을 전공했던 그는 학연과 지연으로 입지를 다져가야 했던 한국 사진계에서 이단아로 불리며 - ‘아타’라는 그의 법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 불교철학에 기반을 둔 실험적인 작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를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ON AIR’ 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부터인데 이 시리즈는 흔들리거나 스쳐 지나가는 시간성을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표현기법으로 삼으며 앞서 말한 듀안 마이클스와 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그 방법은 사뭇 다르다.
듀얀 마이클스가 한 장의 필름에 여러 장의 이미지를 담는다면 김아타는 한 장의 필름에 오랫동안 빛을 담아(장시간 노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 많은 이미지를 기록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좀 더 쉽게 설명을 하자면 뉴욕에서 가장 번화한 타임 스퀘어 광장 한가운데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최장 8시간 이상 셔터를 열어놓고 빛을 받아 이미지를 담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8시간 동안 파인더 속을 지나가는 자동차와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은 흐릿한 궤적으로만 남게 되고 움직이지 않는 건물이나 광고판들에게서만 뚜렷한 상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 말은 언뜻 사진으로 보면 황량한 뉴욕 거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시간 동안 카메라 앞을 지나쳤던 수 만 명의 다양한 사람들과 수 만 대의 자동차가 필름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SEX’라는 제목의 사진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여러 장 촬영하여 컴퓨터 그래픽으로 투명도를 조절하여 계속 중첩시키기도 했는데 야동 마니아들은 야유를 퍼붓겠지만 이 역시 우리에게 각인되어있는 섹스라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형상을 보여준다. 

김아타 _ sex

또 언뜻 서양인으로 보이는 남녀의 사진은 미국의 한 주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증명사진을 겹치고 또 겹쳐 그 지역 거주민의 평균 얼굴을 보여주고자 한 작품인데 유전적인 측면에서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재기 발랄한 작가의 발상에 의해 촬영된 사진 속 인물들은 카메라의 기계적 특성만을 놓고 봤을 때 상당히 근거 있고 설득력 있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감아타의 풍경사진이나 인물사진 모두 과학적으로 증명한다면 기계인 카메라는 거짓말을 못하기 때문에 명확한 이미지는 아니더라도 사실 필름 안에 그 모든 이미지들이 담겨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김아타는 자신의 작품에서 흔적과 시간이라는 신비로운 동양적 철학을 통해 ‘사라졌으나 이미 포화된’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지닌 서양 사람들은 그런 그의 작품에 열광했다.
늘 눈에 보이는 것만 사실이라 여기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고 깊게 숨겨진 내재적 심상과 심리적 표현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상상하게 해 준 것만으로도 듀안 마이클스와 감아타의 철학적 깊이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제 흔들린 강아지의 사진 속에서도 사랑스러움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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