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日常)이 일생(一生)의 행복(Bliss)이 되는 경험
일상(日常)이 일생(一生)의 행복(Bliss)이 되는 경험
군 복무 시절 경험했던 어떤 하루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 멀리 여수에서 군 생활을 했던 나는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안초소로 투입이 되었는데 그날은 마침 토요일 전투 체육의 날이었다.
초소 근처 작은 시골 분교 운동장에서 중대원들과 전쟁처럼 치열한 축구시합을 했고 격한 운동 후 다들 심한 갈증을 느끼던 차였다.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리지 않을까. 결국 중대의 막내인 내가 음료수 심부름을 명(命)받았는데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는 마을 어귀 구멍가게까지 내려가려면 작렬하는 땡볕에 적어도 왕복 한 시간 가까이 걸어야 했다.
더위가 최고로 기승을 부리던 7월 중순쯤이었으니 불볕더위가 계속되고 있는 요즘 날씨와 비교해보면 얼마나 더웠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축구시합 내내 공을 주우러 다니느라 바빴던 나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나도 부대원들처럼 나무 밑 그늘에 드러누워 쉬고 싶었지만 까라면 까는 것이 군인 아닌가.
신병답게 씩씩한 척, 지폐 몇 장을 받아 쥐고 뜨거운 아스팔트 옆으로 발목까지 풀이 자란 갓길을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하염없이 걸으면서 속으로 얼마나 투덜거렸는지 모른다.
똑같이 힘든데 나한테만 이런 일을 시킨 고참이 미웠고 흐릿한 기억이지만 군인인 내 처지를 비관했었던 것 같다.
무거운 음료수 봉지를 양손 가득 움켜쥐고 돌아오는 길.
해가 저무는 오후였지만 땅의 열이 채 식지 않아 발바닥은 뜨겁고 온몸의 땀이 다 흘러넘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던 바로 그 순간.
언덕을 오르다 우연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난생처음 보는, 말로는 도저히 설명하기 힘든 아름다운 노을.
그때까지 그 어떤 영화나 사진에서도 난 그렇게 황홀한 색의 하늘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양손에 쥐고 있던 음료수 봉지가 어느새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지고 힘들다는 생각도 잊은 채, 마치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무언가에 이끌리듯 하늘을 쳐다보며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곤 생각했다.
“절대 이 순간을 잊지 말자. 내 인생 어느 날에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이 있었음을 꼭 기억하자.”라고. 그런 생각이 드니 심부름을 시켰던 그 고참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30년이 훌쩍 지난 이야기지만 난 여전히 힘든 일이 있거나 어떤 결과에 다다르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침잠하는 순간이 오면 오래전 황홀했던 그 날의 하늘을 떠올린다.
평범한 일상이 평생 잊지 못할 더없는 행복으로 되돌아온 그 하늘을.
더없는 행복(Bliss)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양한 관점과 시각으로 바라보고 전달하는 지리, 인문에 관한 세계 최고의 월간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National Geographic)’
찰스 오리어(Charles O’Rear)는 이 회사에서 24년간 사진가이자 저널리스트로 일하다 퇴직을 한 사람이다.
퇴직 후 그는 집 근처 와인 양조장(와이너리)을 다니며 와인을 시음하거나 그에 관한 기사를 쓰는 등 소일거리로 여유로운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평생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짊어지고 세계 곳곳 거칠고 위험한 현장을 누볐던 오리어의 지난 삶에 비추어보면 한적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그날도 어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늘 다니던 길가 옆 포도밭은 병충해로 인해 나무를 모두 뽑아낸 후 새로운 잔디가 막 자라기 시작한 상태였고 포도나무가 없어진 낯선 풍경에서 오히려 평화롭고 따뜻한 느낌을 받은 그는 평생 사진기자로 살았던 자신의 촉을 발휘해 길가에 차를 세우고 한 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날 그가 찍은 ‘Bliss(더없는 행복)’라는 제목의 사진은 마이크로 소프트의 운영체계인 윈도우 XP의 바탕화면으로 채택되었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 사용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사람들은 컴퓨터 그래픽이라 생각했던 바탕화면 속의 푸르른 언덕이 실제 사진이란 사실에 놀란다, 또한 그의 사진을 보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또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본 사진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실제로 10여 년간 10억 개, 어둠의 경로를 통한 다운로드까지 포함하면 20억 개 정도가 전 세계인의 컴퓨터에 깔렸을 테니 과장된 이야기는 아니다.
자신이 촬영한 사진이 이렇게 유명해질지 몰랐다는 오리어의 말처럼 일생(一生)에서 한번 만날까말까 하는 ‘최고의 순간’은 내 인생의 하루하루를 채워주는 ‘반복된 일상(日常)’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일생 최고의 순간은 우리가 사는 동안,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만약, 당신이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그런 순간을 만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숨을 죽이고 라디오의 주파수를 조정하듯,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듯 당신의 눈과 귀, 마음과 머리의 감도를 미세하게 조정해보기 바란다.
모든 게 선명해질 때까지 다이얼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번거로움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몸 안의 감각기관을 모두 열어놓고 평범한 일상을 세밀하고 깊숙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면 당신이 찾던 일생일대 최고의 순간을 언제든 만나게 될 것이다.
더없는 행복(Bliss)은 덤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