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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예술 박기열 Aug 10. 2018

삶은 예술 9 - 낙서에 대하여

거리의 게릴라 아티스트 뱅크시(Banksy)

(예술 인문학) 낙서에 대하여


중학교 시절, 내 수학 교과서에는 밑줄보다는 낙서가 한가득이었는데 수학선생님과 말 한마디조차 섞고 싶지 않을 만큼 관계가 틀어진 후부터는 숫자보다 낙서가 많을 만큼 치열하게 낙서에 집중했다. 

당시 그림에 소질이 있던 내가 그렸던 낙서의 아이템은 주로 다양한 만화 주인공이나 동물들도 있었지만 간혹 수학선생님에 관한 욕도 있었고 선생님을 희화시킨 일러스트들도 있었던 것 같다. 

조금이라도 좋아하던 선생님이 가르치던 과목의 교과서는 그나마 깨끗했던 편이다. 

수업 중에 선생님의 얼굴이라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낙서는 심심해서 그냥 끄적거리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상대방에게 집중하지 않을 때, 혹은 소통이 되질 않아 불만은 있지만 입 밖으로 소리 내기 어려운 경우 머리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 무의식적인 행동을 표출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무의식의 표출 외에도 낙서는 갖가지 정보와 다양한 메시지를 제공하는 도구이기도 한데 어릴 적 동네 담벼락에 쓰여 있던 영수가 '바보똥개 ’라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이 어려운 정보부터 학교 이사장의 비리가 적혀있는 대학가의 대자보까지 그 내용은 실로 방대하다.


우선 동네 떡볶이 집에 가면 오래된 나무 기둥 사이에 ‘정표와 혜주가 사귄다’는 정보가 있다. 그 정보는 친절하게 어느 고등학교 몇 학년 몇 반인지 까지 제공하는데 둘이 진짜 사귀는 사이어서 함께 떡볶이를 먹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해 자발적으로 적어놓은 것인지 아니면 둘 사이를 음해한 후 혜주를 차지하겠다는 제 3자의 장난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 낙서는 떡볶이를 먹으러 오는 그 누구도 관심 가질 이유가 없는 그저 개인의 사적인 정보일 뿐이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이런 식의 정보는 간혹 설악산의 흔들바위나 심지어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석벽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여행을 하다가 먼 타국 땅에서까지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위대한 한글을 영역표시로 소비하는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낙서를 통해 또 다른 씁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처럼 그 내용이 좋건 나쁘건 다양한 정보공유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낙서는 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떡하니 그려져 있는 과장된 남녀의 성기 그림은 덤이고 동성애나 신장매매를 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데 그중 어떤 것들은 그 방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낯설고 신기한 단어들로 가득해서 그것을 해독할 수 있는 특정인들만의 표식인 경우도 있다. 

허가받지 않은 낙서와 전단지를 모두 불법이라 치더라도 터미널 화장실 안에 있는 대부분의 정보들은 언제 어디서든 광고를 통해 사고팔 수 있는 상식선의 물건들이 아니라 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 음성적 행위가 암호화되어있는 사인(sign)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그나저나 내가 근래에 낙서를 해본 것이 언제였던가? 

스마트폰과 PC가 보급되고 나서부터는 연필과 볼펜을 손에서 아예 놓아버렸다.

가끔 신용카드를 결제하고 사인을 할 때 펜 비스무리한 모양의 전자펜을 잡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손톱으로 찌익 그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낙서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어찌 됐건 손에서 펜을 놓고 그렇게 낙서를 멈추게 되면서 나의 무의식적인 감정표출도 함께 멈췄으니 내 감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확실한 통로 하나가 사라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뱅크시(BANKSY)!


그라피티(graffiti art)를 기반으로 하는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스트리트 아티스트이다.


뱅크시는 영국 전역의 예술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투표에서 가장 존경받는 예술가 1위로 꼽힐 만큼 영향력을 행사하는 작가이다.

하지만 특이한 점은 그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길거리 그림인 그라피티는 명백한 불법행위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자신의 이름이나 얼굴을 걸고 활동을 할 수가 없다. 

그것은 익명성이 유지될 때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뱅크시라는 이름 역시 그의 본명은 아니다.

십수 년 간 영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 수없이 많은 낙서를 남겼으면서도 어느 누구도 그의 이름이 뭔지, 어디에 사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은 뱅크시를 더 신비롭게 만들고 사람들을 환호하게 만드는 힘일지도 모른다.


뱅크시가 처음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세계 유명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을 몰래 걸어두고 온 ‘미술관 습격’ 사건 이후부터이다.

영국의 테이트 갤러리, 프랑스의 루브르, 미국의 자연사 박물관과 현대미술관(MOMA)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변장을 하고 들어가 초강력 본드로 자신의 작품을 벽에 붙여 도둑 전시를 했던 뱅크시의 작품들은 몇 주가 지나서도 미술관 관계자조차 알아채지 못했고 인터넷을 통헤 뱅크시가 고백을 한 후에야 부랴부랴 철거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겪은 바 있다.

고대 유물전에서는 시멘트 조각에 쇼핑카트를 끌고 가는 원시인을 그려 넣은 작품을 마치 유물인 것 마냥 만들어 붙여 놓았는데 관람객 대부분이 카트가 그려진 원시시대 돌조각을 신기하게 생각했을 만큼 뱅크시의 작품을 진짜 유물이라 착각했다는 후문이다.

그 외에도 많은 작품들을 패러디 해 미술관의 진본 옆에 걸어두는 과감한 게릴라 전시를 감행하면서 주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캠코더로 그 장면을 촬영한 후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공개하면서 대형 미술관 관계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뱅크시 작품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길거리 곳곳에 낙서하듯 그려 놓은 그라피티 작품들이다.

뱅크시는 특정 건물에 대형사진을 출력해 풀로 붙이거나 직접 만든 조형물을 설치하기도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활용하는 방법은 두꺼운 종이에 미리 그림을 투각해 벽에 대고 그 위에 스프레이를 뿌리는 스텐실(stencil) 기법이다.  이 기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속도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해야 할 스트리트 아티스트에게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인 무기이기 때문이다. 

주로 밤에 활동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경찰의 단속에 재빨리 대처를 하려면 여러 개의 페인트 통과 붓을 들고서는 어림도 없다. 

하지만 뱅크시는 저 멀리 경찰이 나타나도 당황하지 않고 미리 도안을 해 간 종이를 벽에 댄 후 스프레이 라카를 분사하고 유유히 도망가면 끝.

미리 그림을 디자인할 수 있는 스텐실은 어느 정도 그림의 퀄리티를 보장할 수 있는 데다가 빠르고 간편하기 때문에 어제까지 없던 뱅크시의 그림이 다음 날 아침 떡하니 그려져 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뱅크시는 자신의 낙서들을 통해 인간계의 부조리와 공권력의 치부는 물론 세계 평화와 인종차별까지 각종 사회문제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바람을 피우다 들켜서 창문에 매달려 있는 정치인의 모습이나 쓰레기를 커든 뒤로 슬쩍 버리는 비양심적인 메이드의 모습 등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도덕한 군상들의 일탈을 그리기도 했고 국가가 시민들을 도청하고 있다는 메시지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거나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항만 노동자들의 억울한 혼령을 버려진 배에 그려 넣으면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을 건드리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뱅크시의 활동은 비단 국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총탄이 오고 가는 팔레스타인 장벽에 평화와 자유의 풍선을 그려 넣었고 서양인들에게 착취당하는 제3세계 어린이들의 모습을 그리는 등 국제적인 이슈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의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티켓을 사서 미술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연히 그 거리 그 담벼락을 지나치는 불특정 다수이다. 

뱅크시의 작품은 온통 하얀 벽으로 채워진 부담스러운 갤러리에 걸려있는 대단한 예술작품이 아니라 누구든 그 그림을 그냥 지나치거나 훼손할 수 있는 거리로 뛰쳐나와 위정자들이 불편해할 이야기들로 거리의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사람들은 서서히 뱅크시의 낙서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그런 그의 그림이 이제는 단지 불법과 합법으로 판단하던 단순한 거리 낙서의 수준을 넘어 예술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누군가가 자기 건물에 낙서해주길 간절히 바라는 건물주가 있다면 웃긴 일일까?

뱅크시라면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라피티가 반사회적 행위로 규정되어 있는 영국에서조차 뱅크시가 낙서를 하고 나면 관광 상품 내지는 관광지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제 건물주들은 뱅크시가 남겨놓은 그림에 아크릴 판을 덧씌워 아무도 훼손할 수 없게 보호를 하고 그림이 더 잘 보이도록 꼼꼼히 닦으며 관리한다. 

만약 누군가 영국에 갈 계획이 있다면 뱅크시의 그림이 어디에 그려져 있는지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 이미 곳곳에서 뱅크시 맵(banksy map)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뱅크시의 거리 그림은 갤러리를 통해 팔리기도 하는데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는 헤지펀드나 연예계 종사자들이 주로 뱅크시의 그림을 선호하여 수 천 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으로 팔리고 있는데 얼마 전 뱅크시는 그 그림들을 단 돈 몇 만 원에 거리를 지나가던 십여 명의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팔았다고 하니 여느 예술가들과는 달리 자신의 작품을 시장에 내놓아 가격을 형성하고자 하는 욕심이 없는 진정한 거리 예술가의 면모와 제도권에 도전하는 삐딱한 예술가 정신을 명확히 보여주는 에피소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 십 년간 자신의 존재를 철저하게 감추며 거리의 관객에게 사회적 현안과 문제를 제기한 낙서들로 이슈를 던져 왔던 뱅크시가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일 수밖에 없는 이유.

그런 그의 낙서가 더 이상 낙서가 아닌 이유.

그 모든 이유가 한 사람의 낙서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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