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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예술 박기열 Aug 10. 2018

박작가 메모 - 라이카 카메라

나의 기계 Leitz

<박작가가 만든 사진 예술 이야기>



도예가 전공이긴 하지만 사진으로도 작업을 하고 돈도 버니 한편으로 난 사진가이기도 한 것 같다.


다들 어떻게 사진을 시작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남대문 카메라 샾 쇼윈도에 놓여있던 까만 카메라에 맘을 뺏긴 후 일종의 후카시로, 또 대학 때 우연히 정기 구독했던 프랑스 '포토'라는 잡지를 보면서부터였다.


Canon의 추억


모터 드라이브가 내장된 EOS-1 바디의 셔터음은 소음기를 단 권총보다 짜릿하여 무엇이든, 누구든 명중시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손아귀에 꽉 차는 묵직한 그립감과 적당히 검고 적당히 오돌토돌한 촉감이 한동안 당시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 사실이다. 

AA 배터리 8개만 있으면 레버를 당겨 필름을 넘길 필요도 없고 다이얼을 확인할 필요조차 없이 복잡한 데이터를 일목요연하게 파인더 속 세상으로 전달해준다.

이는 카메라에서 눈을 뗄 필요조차 없는 인터페이스의 편리성을 말하는 것이다. 

힘을 빼고 가볍게 셔터를 눌러주면 ‘징-징’ 소리를 내며 거리를 조절하고 알아서 피사체와 자신과의 거리를 가늠한다. 

장전된 필름의 갖가지 정보와 노출값, 반사경이 들렸다 내려앉게 되는 속도까지 계산해내는 이 카메라를 들고 안 다녀본 데가 없을 만큼 혼자서 일당 백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28-70, 80-200의 거리를 지원하는 두 대의 줌렌즈는 내가 의도한 시점과 시선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기록하도록 도와준다. 

그 당시 “일본 사람들 카메라도 감칠맛 나게 잘 만드네." 하며 부러워했었다.


내게 사진은 업(業)이 아니었다. 당시 내가 주로 하는 도예 작업의 일부로써, 내 생각을 정리하고 담아두는 일기장의 역할 정도면 충분했고 그런 이유로 나에게 이 카메라는 충분히 무겁고 충분히 과분했는지도 모른다.  


Leica라는 기계


사진이란 것에서 조금씩 힘을 빼고 난 후 내 눈에 들어온 카메라가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릴 적부터 항상 내 주위에 있던, 그래서 나를 기록한 모든 사진의 도구가 되었던 카메라였지만 그때서야 투박하고 단순한 그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다.


Leica M4 &  summilux f 1.4


그것은 독일에서 만든 라이카(Leica)라는 카메라이다. 

여기서 널리 알려진 라이카의 탄생신화를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또한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발전하는 광학 시대에 여전히 칼짜이즈 렌즈가 좋다던가,  SLR(Single Lens Reflex)카메라가 없던 시절,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이 사용했던 카메라라는 등의 지극히 주관적인 언급 또한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후에 그도 SLR 카메라를 사용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도 훌륭한 작가들에 의해 좋은 사진을 남기고 있는 이 카메라는 수집가들에 의해, 또 일부 취미 사진가들의 입을 통해 회자되는 무수히 많은 전설을 낳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부풀려 꾸며진, 

말 그대로 ‘전설’ 일 뿐이다.

일정 기간 전에 제작된 몇 가지 모델들은 철저히 수작업을 통해 완성되었고, 그런 인간적인 공정은 현재의 첨단 광학이 만들어내는 빈틈없이 얄미운 결과물과는 다른 정렬되지 않은 기호를 제공하고 그 계산할 수 없는 무언가를 사람들은 아우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다른 기종에 비해 매우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 점도 라이카의 입지를 튼튼하게 한다. 

나중엔 숙달이 되었지만 처음 필름을 교체할 때는 몇 번을 반복하고 확인했는지 모른다. Canon의 그것에 비해 몇 배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약간의 불안감까지 동반한다. 

그것뿐인가?  노출계가 내장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항상 따로 노출계를 들고 피사체 앞에서 광량을 찍어내야 하는 불편함도 만만치 않다. 객관적인 비교 하에 이 카메라는 배터리가 필요 없다는 것 외에는 다른 카메라에 비해 그 어떤 메커니즘적 메리트가 없다. 


왜 나는 Leica를 쓰는가?


Canon을 처분했지만 가급적이면 내 작품은 직접 촬영해야 한다는 욕심 때문에 SLR 카메라가 필요했다. 그래서 Leica R8을 구입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카메라는당시  M4라는 세미코마(semi-coma)상태에 빠져 저지른 나의 실수였음을 고백한다.

이게 문제다. 라이카에서는 약간의 기능만 첨가되어도 첨단이 되어버린다. 

일본의 카메라에 비해 전혀 뛰어날 것도 없는 기능과(디자인은 제외하자) 퀄리티에 마니아들은 알면서도 열광하며 격려한다. 마치 ‘라이카는 그래도 된다.' 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이 카메라의 단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절대 우기지 않는다. 지금부터 내가 이 카메라를 고집하는 몇 가지 이유가 설명된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 많은 학자들이 언급했던 심오한 철학적 의미는 보류하겠다. -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혹은 사람과 피사체 사이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심리적, 화학적 작용이며 행위이다. 

내게 사진이 그저 생각의 기록매체이던 때에는 잡지사를 위해 유명인사나 모델의 강렬한 포즈를 잡아낼 일이 없었으므로 카메라로 내 주변의 소소한 일상과 나를 우수에 젖게 하는 감동적인 풍경, 내가 기억하고픈 사람들을 기록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럴 때 레인지 파인더(Range Finder) 카메라인 M4가 제 몫을 다해낸다. 

시커멓고 육중한 Canon Eos-1 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찍어왔지만 내가 원하는 표정은 M4가 담아내는 단순하고 담담한 모습들이다.  

오래돼 보이는 낡고 작은 카메라를 사람들은 크게 경계하지 않는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거의가 ‘어디 한번 찍어보라’는 식이다. 

셔터를 누르면 타이어에 바람 빠지듯 ‘칙’ 소리(사람들은 그것을 '매미 소리'라고 들 한다.) 한 번으로 상황은 종료된다.  한마디로 찍은 사람이나 찍힌 사람 모두 뭔가를 기대했다가 한 순간에 김 빠지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엥? 찍은 거냐?”가 공통적인 반응이니 말이다. 

그런 카메라를 향해 얼굴에 힘을 줘 오버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에서 나오는 결과물은 편안한 표정과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의외의 눈빛을 내게 선물한다. 


라이카 M4로 촬영한 배우 안성기와 전 야구선수 박찬호


낡은 카메라를 쓰면서 나는 ‘느림’을 즐기게 됐다. 

노출계가 측량해 낸 빛의 양만큼 조리개를 열고 닫기를 반복하며 그 양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는 순간에도 어떻게 찍을지 다시 한번 생각한다. 이중상을 합치시켜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약간 지루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긴장을 연장시켜주니 나쁘지만은 않다. 그리고 필름을 갈아 끼우는 그 여유로운 시간 동안 내 주변의 풍광을 둘러본다. 나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삶에 대한 명상이자 내 주변에 대한 깊숙한 고찰이기도 하다.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또 다른 미적 체험을 가져다준다. 마감 시일에 맞춰 일을 할 때의 집중력과는 전혀 다른 깊고 밀도 있는 사유의 힘을 허락한다. 

산업화가 가져온 물리적, 습관성 정신적 기계화에 의해 단련된 감성의 취약함을 오히려 카메라라는 기계가 매워주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러니라기 보단 들뢰즈가 말한 매끈한 공간으로 가고자 하는 나의 욕망에 가깝다.

하지만 사진으로 자꾸 일이 들어오면서 자금적인 문제, 해결이 안 되는 몇 가지 기계적인 문제 때문에 라이카를 처분하고 디지털 SLR을 들일 수밖에 없었는데 더 편해지고 내가 생각한 것들을 구현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카메라를 쓰고 있는 지금도 가끔 힘주어 돌리던 레버의 감촉, 맥없이 눌리는 셔터 소리가 그립기도 하다. 

    구형 5D로 찍은 파주 타이포그라피학교 날개 안상수                은으로 카메라를 만드는 금속공예가 심현석과 반려견 노루


큰 일, 작은 일 가리지 않고 20년 가까이 사진을 찍은 것 같다.

결론은 결국 내 마음과 눈이 하는 일에 기계가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데 어떤 사람은 최신형 스포트카를 타고 2시간 만에 가는 것이 목표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온갖 버스 백만 번을 갈아타고 국도를 돌아 돌아 한국의 모든 풍경을 눈과 가슴에 담을 수 있다면 며칠이 걸려도 좋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내 경험상 빨리 보는 것보다 천천히 많은 것을 보는 것이 좋더라.

그렇더라.


구형 5D로 촬영한 조인성


아! 그리고 20년 사진을 찍으며 돌고 돌아 깨달은 건데 좋은 사진의 결정적 요소는 결국 모델이더라.

조인성을 찍고 보니 그렇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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