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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예술 박기열 Aug 05. 2018

<소통의 예술> 청출어람

나와 다른 욕망을 가진 사람과의 소통

청출어람 [靑出於藍]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라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



2004년도의 일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과정에 막 입학 한 나는 그때 처음으로 강의란 걸 시작했다.

모교에서 처음 강의를 제안받았던 날.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나를 가르쳐주시던 교수님들과 동등한 입장이 돼서 함께 교수회의도 하고 커리큘럼을 고민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잠을 설쳤다.

설레는 마음을 움켜쥐고 강의를 하러 간 첫 강의 날.

똘망한 눈망울로 나에게 집중하던 풋풋한 신입생들.     

“너희들이 내 후배이자, 첫 제자들이구나.”     

지금 생각해보면 의욕만 앞섰지 지식이나 경험 모두를 합쳐 내 인생 최고 허접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라 그때 제자들에게 제일 미안한 맘이 든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의욕만큼은 절정이었으니 당시 나와 크게 다르지 않던 처지의 새내기 제자들도 쉽게 알아채지는 못했으리라.     

내 인생 최초의 출석을 부르는데 첫날부터 힘 빠지게 두 명이나 결석이다.

나름 강의에 대한 마인드 컨트롤도 하고 2시간 정도 분량으로 강의 시뮬레이션도 미리 돌려본 터라 심호흡을 한번 하고 비장하게 준비한 모든 걸 쏟아내고 나니 두 시간짜리 분량이 고작 20분에 다 끝나버렸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첫 수업은 엄청 쿨 한 교수님처럼 20분 만에 끝내고 나왔다.     

근데 다음 주 수업에 한 명이 또 결석이다. 

첫날에도 나오지 않던 한 명. 그 친구가 문제이다. 

그 학생은 그다음 주까지 연속 3주를 결석했다.

대체 어떤 녀석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한 주만 더 결석하면 자동으로 F 처리라 어찌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던 

4주차가 되던 어느 날 덩치가 아주 큰 남학생이 내 앞에 나타났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덩치는 엄청 큰데 미소가 꽃미남 미소다.     

“ 어..네가 걔(세 번이나 결석한 애)구나.”      

“네..”     


처음 만난 그 결석생에게 왜 결석을 했는지 그런 건 물어보지도 않았다.     

늘 음악을 좋아하던 나는 갑자기 장난 끼가 발동했는지 


“다음 주에 노래 한 곡을 하면 결석한 거 하나 까줄게”


결석생에게 별 기대 없이 이상한 과제 하나 던져주고는 곧 잊어버렸다.     


다음 주 수업.

수업 시작 전에 그 결석생이 분주하다.

강단 앞까지 나와 스피커도 연결하고 악보인지 가사인지 종이도 들고 있다.     

14년 전의 일이라 그게 스티비 원더인지 아니면 브라이언 맥나잇의 노래였는지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반주 CD까지 가져와 부른 그 결석생의 노래는 한마디로 가왕급.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재주가 있었네.     

그 이후에 음악에 관한 이야기와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며 그 결석생은 남은 학기를 무사히 끝마쳤다.     

우린 종강파티를 당시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했었는데 다른 학생들이 영화를 보러 간 사이 시간이 붕 뜬 나와 그 결석생이 코인 노래방에 들어가 같이 노래를 불렀다.     

“제가 나중에 음악을 하게 되면 교수님과 같이 공연해도 엄청 재미있을 거 같아요”

결석생이 말했다.     


“그러자. 뭐 안될 것도 없지.”

내가 대답했다.     


그렇게 방학이 지나고 난 새로운 학생들을 만났고 그 결석생은 2학년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정에서 우연히 그 결석생을 만났다. 

전공보다 음악동아리 활동을 더 열심히 하고 있다는 그 결석생은 고민이 많았다.

음악활동에 대한 고민, 학교생활을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대학생이 출전할 수 있는 이런저런 가요제도 생각하는 것 같았다.     

비록 미대수업이지만 나는 수업시간에도 음악을 많이 들려주는 편인데 빛과 소금, 김현식, 유재하 등 내 개인적 취향 플러스 여러모로 풍성했던 90년 대 우리나라 대중음악에 대한 정보를 학생들과 자주 공유했다.     

그런 결석생에게      

“너 혹시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 아니?‘     

“아니요”     

“기존 가요제랑은 좀 다른데 네가 직접 음악을 만들고 노래도 하고 연주도 해야 돼”     

이런 대화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결석생은 군 입대를 했다.     


강의를 한 지 10년이 훨씬 지났으니 그동안 많은 제자들을 만났다.

왕성히 작품 활동을 하며 작가가 되어 나와 함께 전시하는 제자들도 있고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같은 팀이 되어 교류하는 제자들도 있다.

또 어떤 제자들은 같은 학교에서 함께 강의하며 동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미대에 온 학생들이 모두 작가나 디자이너가 되는 건 아니다.

결혼해서 평범하게 사는 사람, 전공과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

모름지기 선생이라면 전공에 뜻이 있거나 없는 제자 모두와 소통하고 그들에게 꼭 작품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을 창의적이고 예술처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기회와 생각을 제공해야 한다고 난 생각한다.      

첫 제자이자 내 강의의 첫 결석생이 입대를 하고 2년 정도 지났을 무렵.

그 결석생으로부터 느닷없는 한 통의 쪽지를 받았다.     


‘교수님. 저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에서 대상 받았어요 “     

참가 정도가 아니라 대상이라니..

그러다가 불현듯 2년 전, 그 결석생을 우연히 만난 날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그렇게 그 결석생은 음악의 길로 들어섰고 활동 초반 듀엣 활동을 할 당시 그들의 공연에 내가 게스트로 초대된 적이 있었다. 

공연에서 나도 노래를 불렀는데 공연이 끝난 후 예전 코인 노래방에서 언젠가 함께 공연하면 재미있겠다던 대화를 기억해내곤 서로 신기해하기도 했다.     


내가 촬영한 박원 쇼케이스 포스터


그 결석생은 현재 자신의 이름  ‘박원’으로 활동하는 멋진 솔로 가수가 되었다.

원이가 대학생이었던 당시에는 전공이나 과제에 대한 밀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던 것 같다. 당시 원이가 전공보다는 음악에 몰두한 탓도 있지만 나 역시 전공에 목숨 건 학생들에게 좀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원이가 뮤지션이 되고 나서 오히려 예술에 관계된 더 많은 이야기와 작업을 함께 했던 것 같다. 

미대오빠 원이는 자신이 직접 앨범커버를 디자인하거나 무대 디자인에 아이디어를 내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원이가 직접 만들고 디자인 한 24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포스터 

나 역시 자연스럽게 원이의 공연 포스터 사진을 촬영해주거나 원이가 고민하는 아트워크에 아티스트로서 이런저런 의견을 보태주기도 한다.     

직접 곡을 만들고 가사를 쓰고 노래까지 잘하는 대체 불가의 발라더로 성장한 원이는 현재 안정적인 회사의 지원으로 분업화된 시스템 안에 있는지라 내가 도울 일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같이 뭔가를 하는 것도 즐겁지만 혼자서 잘 해내는 제자를 바라보는 마음은 훨씬 더 흐뭇하다. 

유명세보다는 음악의 완성도에 매달리는, 방송보다 공연을 잘하고 싶어 하는 제자는 매일매일 라디오 디제이를 하면서 이제 더 이상 지각, 결석 따위는 하지 않는 좋은 아티스트로 성장해 나가고 있으며 핫한 가수의 척도는 핫한 드라마 OST에 참여하느냐 아니냐고 나뉠 수도 있다는데 며칠 전에는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션샤인' OST의 여덟 번째 주자로 출격했을만큼 대중에게 조금씩 알려지며 사랑받는 뮤지션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박원의 음악 많이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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