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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예술 박기열 Aug 05. 2018

삶은 예술 6 - 너. 어디까지 가봤니?

해프닝으로 본 예술의 한계

(예술 인문학) 너, 어디까지 가봤니? - 해프닝으로 본 예술의 한계



아주 예전에 술에 취한 제주지검장의 음란행위가 CCTV에 찍혔다는 기사를 보고 나는 제일 먼저 미국의 건축가이자 전방위 예술가인 비토 아콘치 (Vito Hannibal Acconci)를 떠올렸다.
그는 1972년 미국 뉴욕의 한 갤러리에서 사람들을 기절시킬만한 행위예술을 펼쳤는데 갤러리 나무 바닥 아래의 좁은 은신처에 숨어 들어가 자위행위를, 그것도 갤러리를 방문한 관객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성적 환상을 유발했다. 
예상대로 매우 논란이 많았던 작품이지만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했던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처럼 피해망상과 분열증을 앓는 당시 미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캐릭터와 비교되면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성적인 요소에 대한 논란보다는 시대를 반영한 광적인 예술행위로 평가되었다.

우리가 흔히 행위예술(해프닝, 전위예술, 퍼포먼스 모두 미세한 차이는 있지만 이 글에선 같은 뜻으로 해석하기로 하자)이라 일컫는 예술의 형태를 보면 이상한 복장을 하고 나온 예술가들이 춤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거나 괴상한 소리를 지르는 것 정도로 인식되어 괜히 무섭다는 생각, 또 예술이란 이름으로 별 짓을 다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퍼포먼스, 전위예술, 해프닝 등으로 불리는 예술가들의 신체를 이용한 표현은 인간이 가진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해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다차원적 복합예술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국민의 윤리와 도덕을 심판하는 법조인이 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위행위를 했을까? 
극심한 스트레스로 이미 어떤 신경증을 앓고 있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날 밤 술집에서 여자를 꼬시려다 실패해 달아오른 몸과 마음을 식히려 했던 극단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 
원래 인간의 욕망은 언제, 어디서, 어떤 지점까지 도달할지 모르는 불안정하고 불가항력적인 마성의 힘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나 명성 같은 겉치레는 잠시 뒤로 밀어두자고 합의만 된다면 그런 경험에 노출되고도 모든 걸 이성과 양심으로 이겨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예술도 결국 사람이 하는 거라서 그들의 정서, 환경, 배경에 따라 표현방법 또한 다양하다.
어떤 예술가들은 벽에 걸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이용해 인간의 숨겨진 고통과 욕망을 드러내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 형태는 소리나 도구를 이용하는 퍼포먼스부터 계획되지 않은 해프닝까지 각양각색이다.  
간혹 시대의 부조리함과 인간 개개인의 나약함에 몸부림을 치다가 신체를 훼손하거나 변형시키는 등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충격적인 해프닝을 만드는 작가들도 있는데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자신의 신체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전위 예술가들에 관한 것들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제일 쉬운 사람부터 시작하자.

한국이 낳고 독일과 미국이 키워낸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국민들의 정서상 백남준을 비디오 아티스트 정도로 소개를 하는데 백남준이야 말로 해프닝 역사에 빠져서는 안 될 희대의 악동, 전위예술의 돌격대장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의 행위예술이 있기까지에는 초창기 선구자들의 용기와 도전이 절대적 원천이었는데 그 역사의 가장 중심에 있는 그룹이 플럭서스(Fluxus)라는 집단이었고 그 집단의 중심 멤버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한국이 낳기만 하고 독일과 미국이 길러낸 바로 백남준이다.

1960년 독일에서 벌어졌던 백남준과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해 보자면 백남준이 청중들 앞에서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이란 공연을 하는 도중 객석으로 내려와 자신의 정신적 스승인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가위로 잘라버리는 퍼포먼스를 자행한 것이다. 이 기행으로 말미암아 백남준은 음악적 테러리스트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이 공연은 해프닝 역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사건으로 남게 된다. 몇 해 전, 백남준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가위를 들고 서로의 넥타이를 잘라 백남준이 잠들어 있는 관 속으로 던져 넣었던 것도 과거 백남준이 자신의 스승에게 들이댄 해프닝을 그대로 재현한 조문객들의 고인에 대한 찬사이자 마지막 작별인사였던 것이다.

플럭서스와 더불어 전후 세대가 겪는 고통과 자유에 대한 염원을 권위와 시대를 향한 저항으로 표현했던 비엔나 액션니스트(vienna actionist)의 짧지만 격렬했던 실험적 행보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몸에 구멍을 내거나 도려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피와 체액이 넘쳐흐르는 신체 예술 퍼포먼스로 사회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외에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거나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윤리나 수치심 정도는 전혀 개의치 않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있다.
그들의 표현방식은 아름다운 예술적 신체 표현을 위해 피나는 고통을 참아내면서 갖게 된 문드러지고 기형적으로 변형된 발레리나의 발가락이나 일 년에 6리터씩 자신의 피를 뽑아 얼린 조각상을 만들었던 마크 퀸(Marc Quinn)과는 다른 지점, 다른 형태의 이미지이므로 지금부터 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보는 관점에 따라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니 각자 알아서 스킵하시길 바란다.

자신의 피를 얼려 만든 마크 퀸의 작품

먼저 가장 최근에 일어났던 러시아의 예술가 피터 파블런스키(petr pavlensky)의 퍼포먼스는 무릎이 조금만 까져도 호들갑을 떠는 우리를 경악하게 만든다. 
죄 없이 감옥에 갇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국민이 반대하는 법률들을 새롭게 제정하는 등 ‘경찰국가’로 전락하는 자신의 조국 러시아에 항의하는 의미로 파블런스키는 자신의 입을 꿰매고 상태페테르부르크 의회 앞에 나타났다. 이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음낭에 못을 박아 석판이 깔린 도로에 고정시키고 말없이 응시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정치적 무관심과 사회적 체념을 표현하기도 했는데 그 마지막 퍼포먼스는 늘 경찰에 연행되는 것으로 마무리.

스위스 출신의 행위예술가 밀로 모이레 (Milo Moire)의 나체에 관한 철학은 누가 봐도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든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빼어난 그녀가 독일의 유명 아트페어에서 알몸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사람들, 환호하는 남자들의 열기도 경직된 표정으로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운 그녀의 행위가 시작되자 이내 잠잠해진다.
그녀는 자신의 성기(정확하게는 질) 속에 물감이 든 알을 넣고 밑에 있는 새하얀 캔버스에 떨어뜨려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이 동영상을 짧은 시간 안에 수백만 명이 시청하면서 그녀의 퍼포먼스는 더 급격한 관심을 받게 됐다.
그녀의 몸속으로부터 떨어진 알은 패턴 없이 물감을 터뜨려 그림을 만들고 그 그림은 과거 물감을 흩뿌려 그림을 완성한 잭슨 폴록의 액션페인팅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그녀의 행위는 여성의 전유물인 출산과 그를 통한 창조의 모습을 나타냄과 동시에 알을 배출하는 자신의 경직된 모습을 통해 여자가 갖는 출산에 대한 고통을 관객들과 함께 나누길 원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혐오스럽고 누군가는 수치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기괴한 전위예술의 끝판왕은 뭐니 뭐니 해도 잔혹한 신체 예술을 통해 ‘미술계의 악마’로 불렸던 크리스 버든(chris burden)이 아닐까 싶다.
한때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이제는 일흔을 바라보는 노년의 예술가 크리스 버든의 청년기는 그야말로 피와 살이 튀기고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공포영화보다 더 잔혹한 신체 예술이 그 정점을 찍는 시기였다.
전기 통과 전깃줄을 자신의 몸에 감아 전류를 흘려보내 죽음 직전까지 자신을 몰고 가는 것은 물론 약속된 사수를 시켜 스스로를 과녁 삼아 왼쪽 팔에 총을 쏘게 했고 근육을 관통한 총알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참혹한 모습을 그대로 비디오에 담았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그의 속내가 과연 무엇이고 자신의 몸을 파괴하면서까지 목숨 걸고 그가 말하려 했던 것은 대체 무엇일까?
삶이 힘들어 고통스러울 때 자신의 몸을 자해하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그것과 같은 마음일지 아닐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그들의 격렬한 생각과 행위들이 사회적 보편성을 넘어 예술의 영역과 한계를 확장시켜줬다는 것이다. 
그들은 비록 아프고 괴로웠지만 그런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현대의 많은 예술가들이 저마다 자유로운 표현을 하며 작가의 삶을 누리고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작품을 만들면서 예술로부터의 보상을 만끽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해프닝과 신체 예술 등 행위예술 안에서 가지를 뻗으며 갈라져 나온 예술의 열매들이 기존에 있는 예술의 형태들과 비록 다른 맛과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예술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는 폄하할 수도, 혐오할 수도 없는 엄연한 창작 활동임을 인정해달라고 한다면 나의 큰 욕심일까?
예술가인 나조차도 고통을 느끼며 주변을 경악하게 하는 신체 예술가는 조금 무섭고 어렵다. 


하지만 무섭고 어려운 것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몸이 아픈 누군가의 절망과 고통으로 새로운 백신이 만들어지고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떠올려 보면..    


그 또한 감사한 일 아닌가?


chris burden _ sho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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