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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예술 박기열 Aug 05. 2018

삶은 예술 5 - 벗어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집단 누드사진의 스페셜리스트 스펜서 튜닉

(예술 인문학) 벗어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오후 2시.
현재 기온 38℃
시간을 잘못 골랐다. 이 시간에 재료를 사러 나오는 게 아니었는데..

숨이 턱턱 막히고 온몸이 땀으로 끈적거린다.
작업실의 에어컨이 한없이 그리워지는 지금,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계곡 넓은 바위 위에 홀라당 벗고 누워 낮잠 자는 상상을 해본다.
혹시 지나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다 벗는 건 좀 그렇고 팬티는 걸치고 누울까? 
그저 상상일 뿐인데도 나는 별 걱정을 다한다.
목욕할 때를 제외하고 남들 앞에서 알몸을 드러낸다는 것은 한국인의 정서상 금기시되는 일이다. 그래서 외국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혼탕을 다녀왔느니 누드비치를 구경했느니 하는 목격담을 듣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침이 꼴깍꼴깍 넘어간다.
내가 들은 어떤 작가의 미국 유학시절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보자면 방학시즌을 맞이해 같은 학교 친구 몇 명이서 차를 렌트해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몇 날 며칠 끝없이 펼쳐진 고속도로를 달리며 지루함에 몸부림치다가 마침내 맑고 푸르른 호수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작가까지 남자가 둘, 여자가 셋이었는데 호수에 차를 세우자마자 너나 할 것 없이 옷을 훌훌 벗어던지더니 알몸인 채로 물속으로 뛰어드는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오랜 시간 운전에 지친 자신도 시원한 물이 무척 간절했으나 30여 년 전 유학을 갔던 한국인 청년에게 펼쳐진 모든 상황들이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낯선 광경이었던 것이다. 
다시 물 밖으로 나온 여자 친구들이 의아스럽다는 표정으로 “헤이 ○○. 너는 왜 물속에 안 들어가?” 라며 두 손을 잡아끌었는데 그 작가는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으며 끝까지 버티다가 결국은 물속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아는 그 작가는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자신이 왜 그랬는지, 그 젊디 젊은 시절 아름다운 풍광을 앞에 두고도 단지 부끄러움 때문에 좋은 추억을 놓치고 만 것을 크게 후회하고 있었다.
나 역시도 남들 앞에서 알몸이 되는 게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지만 만약 그런 상황에 똑같이 놓이게 된다면 주저하지 않고 거침없이 옷을 벗어던진 후 물속에 뛰어들고 말리라. 

알몸의 정체성

2007년 5월 멕시코시티의 소칼로 광장(Zocalo Square)에 믿기지 않는 풍경이 펼쳐졌다.
멀리서 숲을 보면 나무가 보이지 않듯이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는 풍경만으로는 그 넓은 장소를 뒤덮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세히 보니 사람들이다. 그것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의 사람들..
이곳에 운집한 사람들은 모두 18000명으로 이 엄청난 규모의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촬영한 사람은 집단 누드사진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스펜서 튜닉(spencer tunick)이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 출신의 스펜서 튜닉은 세계 주요 도시의 공공장소를 배경으로 수 백, 수 천 명의 자발적 누드 군상을 촬영한 사진 작업으로 인간의 벌거벗은 몸의 고정관념을 탈피하고자 했다.
군사학교에서 땀에 젖은 제복을 입고 일정하게 서 있는 군인들에게서 자유롭고 싶어 하는 인간 형상을 발견한 순간 작업의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그는 대부분의 누드를 사진의 배경이 되는 수직 건물과는 대조적으로 수평으로 드러누운 자세들로 촬영한다. 
이는 도시 건물과 벌거벗은 육체가 보여주는 강렬한 대비를 이용해 또 다른 도시 풍경으로 연장시키는 한편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모습을 대도시의 공공장소에 드러냄으로써 참가자와 관람객 모두에게 자유와 해방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스펜서 튜닉은 전문 모델이 아니라 스스로 모델이 되기를 자청한 사람들과 작업하는데 처음에는 공공장소에서 한 사람만으로 찍다가 그의 사진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지원자들이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집단 모델들을 대상으로 사진을 찍게 되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참가자들의 참여 동기도 매우 다양하다. 공공장소에서 나체가 되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은 사람부터 신체에 자신감이 없었는데 퍼포먼스에 참가하고 나서 자신의 육체에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람, 예술의 한 부분이 되기 위해 지원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스펜서 튜닉이 지금의 명성을 얻기까지 많은 시련이 있었다.
그가 처음 선택했던 공공장소가 뉴욕이었는데 당시 뉴욕은 공공장소에서의 알몸 노출을 법으로 금지했기 때문에 튜닉은 경찰들 사이에서는 '골칫거리'로 통했다. 
1994년에는 미국 뉴욕 록펠러센터에 설치된 2.4m 높이의 크리스마스트리 꼭대기에서 여성 모델을 누드로 촬영하다 체포됐지만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던 그는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가며 뉴욕의 공공장소에서 촬영을 시도하다가 그 이후에도 여러 번 체포되었다. 
1999년 6월 뉴욕시는 대법원에 공공장소의 누드사진 촬영을 단속할 수 있도록 요청했으나 기각됐다. 뉴욕시는 또 2000년 튜닉의 촬영을 저지하기 위한 소송을 진행했지만 미국 연방법원은 1심과 항소심에서 튜닉이 뉴욕 맨해튼 거리에서 100명의 누드모델들을 세워놓고 누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헌법상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고 그 판결 이후부터 그의 작업 활동에 탄력이 붙기 시작한다. 그런 그의 작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진 속의 누드는 오브제로서의 신체이지 결코 선정적 대상으로서의 소재가 아니다. 스펜서 튜닉의 작업 의도는 일상생활에 널려있는 선입견과 관습화 된 사고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것을 확장시키려는데 있다.

스펜서 튜닉이 집단 누드사진을 찍어온 세계의 이름난 공공장소들을 살펴보면 2003년 6월에는 7000명이 운집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같은 해 10월에는 미국 뉴욕의 명물 그랜드 센트럴 역, 2005년 5월에는 벨기에 브리헤의 쇼타츠쇼부르크 극장, 7월에는 잉글랜드 북구 뉴캐슬, 9월에는 프랑스 리용 에두아르 부둣가, 2006년 3월에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4월에는 스페인 북부 산세바스티안 해변 등에서 촬영을 했다. 또한 그가 촬영한 작품들은 각종 아트 페스티벌과 전시회에 출품돼 촬영 퍼포먼스만큼이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실전 경험을 통해 모델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어떤 악조건에서도 촬영을 할 수 있게 된 스펜서 튜닉의 촬영 현장에는 적게는 수 백 명에서 많게는 수 만 명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광경을 사진에 담기 위해 사다리차가 동원되는 것은 기본이고 모델과 똑같이 알몸이 된 튜닉이 사다리차에 올라가 확성기를 통해 모델들에게 포즈를 주문하고 사진을 찍는다.
그의 작품에 참여하는 누드모델들은 100%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돼 있다. 국적도 나이도 피부색도 다양한 이들은 튜닉의 인터넷 홈페이지(www.spencertunick.com)를 통해 참가 신청을 한 후 안내 메일을 받고 촬영에 참여한다. 세계 곳곳에서 촬영이 이뤄지기 때문에 주로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많지만 근처를 여행하던 여행객이나 외국인들도 메일을 받고 몰려든다.
그리고 이들에게 주어지는 모델료는 그들을 촬영한 스펜서 튜닉의 사인이 담긴 사진 한 장이 전부이다.

바캉스 시즌을 맞이해 근육을 만들고 열심히 다이어트를 하며 날씬하게 가꿔온 몸을 가진 사람에게는 집단에 묻혀 하나의 질감 정도로 밖에 표현되지 않는 스펜서 튜닉의 사진이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역사적인 예술작품 속에 스스로 하나의 터치가 되고 입기만을 강요하는 사회에 벗는 것으로 일탈의 해방구를 마련함과 동시에 행위를 통한 자유의지의 소중함을 되새겨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스펜서 튜닉이 한국에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당신은 참가자가 될 것인가 관람객이 될 것인가? 
그것도 자신 없으면 지금 신고 있는 양말이라도 벗어보시라.


2만 여 명에 가까운 인원의 누드로 기네스북에 등재 된 스펜서 튜닉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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