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을 교란하는 예술의 경계
(예술 인문학) 돈 되는 예술, 가난한 예술가 - 미술시장을 교란하는 예술의 경계
‘띵똥’
문자가 왔나 보다.
더 자야 하는데 밤새 더웠는지 땀에 흠뻑 젖어 다시 잠들기가 힘들다.
전시를 앞두고 막바지 작업을 하다가 새벽 4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거든.
타들어가듯 목이 말라서 납덩어리처럼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부엌으로 갔더니 어제 먹다
식탁 위에 올려둔 사과 쪼가리에 파리가 꼬였어.
난 얼른 파리를 쫓아내고 사과를 버렸지.
물을 마시고 침대를 정리하려고 다시 방에 들어왔는데 너저분한 베개와 이불들을 정리할 힘이
도통 없는 거야.
문자를 이제야 살펴본다.
은행...
대출 이자 납입일은 매달 너무나 빨리 돌아온다.
한 달간 이 학교 저 학교 분주히 강의를 다니지만 강사료가 입금되는 순간 돈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통장을 핥고 지나가 버려.
언젠가는 나도 인정받는 예술가가 될 것이라 믿으며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지만 내가 만들어낸 작품은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는 것 까진 허락하지 않아.
그렇게 나는 월말이 되면 창의력을 발휘하는 작가 대신 먹고살 궁리를 하는 초라한 가장이 되지.
얼마나 더 작품에 집중하고 노력해야 인정받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얼마가 더 있어야 평생을 돈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을까?
10억? 100억?
1억 달러, 우리 돈으로 940억.
일반인은 평생을 살아도 구경하기 힘든 큰 액수다.
잘 나가는 중소기업의 연매출도 아니고 메이저리그에서 매년 20승 이상을 하는 투수의 7년 간의 연봉 총액도 아닌 940억의 정체는 무엇일까?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가 만든 작품 한 점의 가격이다.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끊임없이 삶과 죽음의 상관관계를 주제로 작업했던 그의 전작과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백금으로 제작된 해골에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붙여 만든 것으로 그것을 다 합치면 무려 1106.18캐럿에 해당한다고 한다.
데미안 허스트는 완전함과 영원의 상징인 다이아몬드를 해골에 붙임으로써 결국엔 죽게 되는 불완전한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욕망을 갈구하며 얼마나 부질없게 사는가를 작품을 통해 증명하려고 하였다.
200억 원어치의 다이아몬드로 940억짜리 작품을 만든 데미안 허스트는 그래도 양반인 편이다. 단순한 사물에 단지 예술적 가치를 부여해 엄청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작가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한때 홍콩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한국의 젊은 예술가 함진의 작품이 2만 4천 달러에 낙찰된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만든 미니어처 조각의 특별한 재료 때문이다.
‘파리 날리는 소년(boy flying a fly)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합성점토(정확한 재료의 이름은 스컬피)로 만든 손가락 한마디만 한 크기의 작은 소년이 실제 파리를 줄에 매달아 풍선처럼 날리고 있는 모습으로 개똥이나 상한 음식에 달라붙어 아무 죄책감 없이 파리채로 쉽게 내려칠 수 있는 더럽고 하찮은 파리 한 마리를 재료로 선택해 2천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을 벌었다니 입이 떡 벌어지고 다리가 후들후들 거리지만 그러기엔 아직 이르다.
작품 가격만 들어도 멘붕(멘탈붕괴)을 불러오는 작가들은 주로 영국에 포진해 있는데 개념미술가 게빈 터크(gavin turk)의 작품 실낙원(Paradise Lost)은 겉으로 봤을 땐 그냥 먹다 버린 사과 쪼가리에 불과해 보인다. 500만 원에 거래된 이 작품은 재료인 사과와 제목으로 짐작할 때 이브가 먹은 선악과를 상징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일반인이 납득하기 힘든 가격이다.
예술가 중에는 자신의 사생활을 파는 작가도 있다.
영국 작가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은 마약과 폭력에 노출됐던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를 작품으로 치환하는 방식을 이용하는데 예를 들어 커다란 텐트 속에 자신과 잠자리를 한 남자들의 이름을 새겨놓는다거나 낙태했던 아이들의 이름을 전시해놓는 식이다.
삶의 의미 있는 측면만 드러내어 그 안에 진리와 교훈을 담던 과거의 예술과는 달리 폭력과 죽음마저도 미학으로 가공해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진보적 현대 예술가의 전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아무리 그런 예술가라고 해도 자신의 치부를 만인에게 드러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녀의 작품 중 자신이 평소 사용하는 침대를 그대로 전시장에 옮겨온 작품이 있는데 그 주변에는 콘돔, 찌든 속옷, 담배, 빈 술병들이 널브러져 있다.
‘나의 침대(my bed)’라는 이 작품이 올 7월 런던 크리스티에 경매로 나오는데 예상 낙찰가가 80만 파운드에서 120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13억 7천만 원에서 20억 6천만 원에 이른다고 하니 작품의 외형뿐 아니라 작가의 용기도 미술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가 보다.
근데 엄청난 이 작품 판매가들이 고스란히 작가에게 돌아가는 것일까?
답은 ‘절대 그렇지 않다.’ 이다.
한국 작가인 함진을 제외한 나머지 영국 작가들은 모두 한 사람의 영향력 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는 바로 영국의 광고재벌이자 예술품 컬렉터로 유명한 찰스 사치(Charles Saatchi)이다,
예술이 돈이 된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사치는 잠재력은 있으나 아직 유명해지기 직전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저렴한 가격에 열심히 사 모으기 시작했고 거기서 더 나아가 그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끊임없는 지원을 통해 자신이 보유한 예술가들과 작품의 가치를 높여 결국에는 자신이 투자한 돈의 수백, 수천 배의 차익을 남김으로써 투자비를 회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억 소리 나는 작가들의 작품 가격은 결국 작품의 원소유주인 사치에게로 되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기업들도 미술관을 짓거나 작가들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문화 사업에 뛰어들고 있으나 그것은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이라기보다 세금 감면을 통해 돈을 아끼기 위한 정도의 수준이다. 다양한 분야의 사업으로 이미 차고 넘치는 돈을 버는 대기업보다는 단일 품목에 집중하는 내실 있는 중소기업이 오히려 문화예술에 투자할 경우 좋은 성과를 얻기 유리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식당이든 구멍가게이든 주인이 계산대를 잡고 있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돈이 새는 구멍이 생기기 마련인 것처럼 경영자 본인이 예술품이나 작가에 대해 직접적인 관심을 갖고 구체적인 방향이나 규모를 정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예술은 그 어느 사업보다 고부가가치의 사업이다.
과감하고 내실 있는 예술 투자가 경영자 본인에게는 품격 있는 삶과 더불어 고수익을 보장할 가능성이 있고 더 나아가서는 예술에 투자해 성공한 국내의 어느 간장공장이나 운수업체처럼 회사의 이미지를 단박에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술이 돈이 되는 세상이 도래했지만 아침에 가까스로 일어나 부족한 잠을 쫓으며 없는 힘을 짜내어 침대를 정리하고 파리를 쫓아냈으며 먹다 남은 사과를 쓰레기통에 버린 예술가의 전화기로 또다시 문자 한 통이 온다.
‘띵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