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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예술 박기열 Aug 05. 2018

삶은 예술 3 - 버려야 할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

이런 것도 작품의 재료가 되나요?

(예술 인문학) 버려야 할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


매주 수요일은 박 작가가 사는 아파트 단지의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날이다.
모처럼 일찍 퇴근을 한 박 작가는 간만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아내가 모아놓은 박스며 각종 플라스틱 포장지와 맥주병, 깡통들을 잔뜩 둘러맨 후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단지 안 지정된 장소로 나간다.
바로 전 주에 명절이 끼어 분리수거를 한번 쉬었더니 각종 과일박스며 선물박스들이 성인 남자의 키를 넘겨 산처럼 쌓여있는데 그나마 이것들이 재활용되어 새로운 무언가로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데에 까지 생각이 미치니 박 작가는 쓰레기 분리에 좀 더 세심함을 기울인다.
병은 병대로, 플라스틱은 플라스틱 마대자루에 던져 넣으며 바쁘게 손을 움직인다.
근데 이 많은 쓰레기들은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

스페인의 거리 예술가 프랜시스코 파야로(francisco de pajaro)는 영국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곳곳에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에 그림을 그려 넣고 테이프를 붙여 조금은 모자라고 그래서 웃겨 보이기까지 하는 괴물들을 만들었다.
스페인은 그라피티(거리의 낙서)의 금지 규정이 엄격한 나라여서 도시 곳곳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던 거리 예술가들이 고국을 떠나 해외로 나가야 할 정도이다. 
파야로 역시 이런 규제 때문에 “그렇다면 쓰레기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괜찮겠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쓰레기 더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스페인을 떠나 영국 거리에서 작업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겨놓았는데 사실 그것이 작가의 작품이냐 아니냐를 떠나 쓰레기는 정확한 날짜에 반드시 수거될 운명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의 모든 작품들은 결국 사진으로 밖에 남지 않는다.
처음 파야로가 고국인 스페인에서 쓰레기 더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스페인 경찰들도 곧 수거되어 없어질 그의 작품을 걱정할 정도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 사라지고 말게 될 작품에 열정을 쏟는 파야로의 작가정신에 안타까움과 감탄의 마음을 함께 보냈다고 한다.
‘바보괴물(goofy monster)’이라고도 불리는 파야로의 작품들을 보면 쓰레기가 담긴 파란 봉투에 테이프로 팔과 다리를 붙이고 그림을 그려 익살스러운 괴물을 만드는데 그 외에도 버려진 박스 종이, 부서진 가구에 새로운 가치와 생명을 부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햄버거 가게에서 케첩 하나까지 돈을 받아낼 만큼 공짜라고는 눈뜨고 찾아볼 수 없는 영국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길거리에 펼쳐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마음대로 주워가게 했던 아담 니트(adam neate)의 예술적 행보도 무척 재미있다. 거리 예술가 아담 니트는 버려진 골판지나 박스 종이에 그림을 그린 후 빈 스프레이 통들을 여기저기 붙여 작품을 만들었다. 
이 영국의 화가는 일 년 동안 수 만 장의 그림을 그려낼 만큼 작업에 대한 열정이 넘쳤고 비록 골판지 위의 그림이었지만 어느 유명 화가 못지않은 그의 작품성을 알아본 미술계 사람들에 의해 거리에서 갤러리로 무대를 옮기면서 한때 작품 한 점에 15만 불을 호가하기도 했다. 아담 니트가 수없이 많은 그림을 거리에서 뿌려댈 때 이를 미처 알아보지 못한 이들, 그래서 작품을 집어오지 못한 사람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니트의 작품 가격을 보며 두고두고 땅을 치며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쓰레기를 이용한 작가 중엔 그림을 그리는 화가만 있는 게 아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 팀 노블과 수 웹스터 (tim noble & sue webster)커플의 작품은 같은 쓰레기 더미이지만 접근과 표현방식에서 앞의 두 작가들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들은 쓰레기 더미를 패턴 없이 잔뜩 쌓아 붙이는데 완성된 쓰레기 더미 위에 조명을 비춰 벽에 그림자가 드리우면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 
쓰레기 더미에서는 찾을 수 없지만 쓰레기 더미가 만들어 낸 그림자 속에 나타난 형상들은 두 남자가 등을 맞대고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거나 뉴욕의 마천루를 그대로 옮겨 온 풍경 등 쓰레기에서는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이미지들이고 게다가 사진처럼 섬세하고 정확하게 표현되어 보는 사람을 경악하게 한다. 

쓰레기는 아니지만 단독으로는 딱히 쓸모가 없는 것들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제인 퍼킨스(jane perkins)의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단추나 구슬, 버려진 장난감들을 이용해 유명인의 초상이나 명화의 한 장면을 재현해내는 이 작가는 각각의 개체를 모아 한 땀 한 땀 붙여나가면서 새로운 작품을 재탄생시키는데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만든 작품 위에 채색을 해서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원재료의 컬러를 그대로 이용해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다. 마지막 결과물만 보고 있어도 재료의 선택 단계에서부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지 충분히 예상이 되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입이 떡 벌어지고 기가 질리고 만다.

아주 예전에 피카소가 자전거의 안장과 손잡이로 소의 머리를 만든 것도 재활용품을 이용한 작품의 시초라 할 수 있는데 그 외에도 폐타이어를 이용해 거대한 조각을 만드는 한국의 지용호, 버려진 고철을 용접해 실제 크기의 말을 만드는 데보라 버터필드(deborah butterfield)의 작품들 역시 많은 콜렉터들에 의해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높은 가격에 수집되고 있다.
사람들은 쓰레기마저도 예술로 승화시키는 예술가들의 상상력에 찬사를 보내고 예술가들은 우리들에게 가치 없어 보이던 물건마저도 유심히 볼 수 있는 관찰력을 선물해 주는 것이다. 

작가들의 작품을 상상하며 ‘이 세상에 쓰레기는 없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분리수거를 하던 박 작가의 눈빛이 갑자기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눈빛은 심하게 흔들리고 이리저리 폐품들을 정리하던 분주한 손끝은 딱딱하게 굳어져 버렸다.

이제 더 이상 무엇을 버릴지, 무엇을 버리지 말아야 할지 판단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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