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해야 발견할 수 있는 도심 속 예술들
가깝지만 낯선
- 의식해야 발견할 수 있는 도심 속 예술들
시청역 인근 중견 건설사에 근무하는 김 과장은 오늘도 팀원들과 식권으로 점심을 먹고 계산대 옆에 비치된 이쑤시개 하나와 믹스커피 한잔을 뽑아 들고 식당을 나섰다. 입추가 지나서 그런가? 무더웠던 어제와 다르게 하늘이 유난히 쾌청하고 모처럼 선선한 바람까지 부니 곧바로 사무실에 들어간다는 게 영 내키질 않는다. 팀원들을 먼저 보낸 김 과장은 걸어서 5분 거리의 청계천 입구까지 짧은 산책을 하기로 한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엄마,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들, 식사 후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직장인 무리까지 정말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따사로운 오후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 틈 사이에서 온몸으로 광합성 샤워를 하고 있던 김 과장 앞에 햇볕을 가로막은 커다란 물체 하나.
7층 건물 높이는 족히 될 법한,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 같기도 하고 소라껍데기 같기도 한 이것은 무엇인가?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이자 도시 모뉴먼트의 선두주자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1929~2022)는 일상의 오브제를 대형화시키거나 변기, 비올라 같이 딱딱한 물건들을 부드러운 비닐이나 천으로 제작해 오브제와 물성 간의 관계를 해학적인 이미지로 치환하는 조각가이다.
그가 만든 조각들은 크기에서 오는 이미지의 강력함으로 작품의 소재가 되는 대상의 일상적 쓰임과 장소성, 스케일 등이 고려된 모뉴먼트 사이의 괴리감을 인식하게 하여 사고영역의 확장을 가져다준다. 또한,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알아차리기 힘든 하찮고 진부한 것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 줌으로써 예술을 실제 삶 속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이런 올덴버그의 아이디어는 도시 공간에 대한 그의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한 미술학교 앞에 설치된 커다란 붓 한 자루, 그 아래 보도블록엔 붓으로부터 낙하한 듯한 오렌지색 물감 덩어리가 있고 미니애폴리스의 커다란 연못을 가로지르는 숟가락 위에는 크고 탐스러운 체리 한 알이 올려져 있다. 작가는 엄청난 크기의 두 조각 모두가 도시 풍경의 구성요소로서 기능과 장식의 구분을 넘어선 하나의 문화적 가치를 지닌 예술이라 생각하였다. 올덴버그는 그의 대형 조각을 유기적으로 건축과 연결하는 동시에 특정 장소의 역사, 문화, 지역적 특성까지 꼼꼼히 조사하여 작품에 대입시키려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또 하나의 방식은 기존의 영웅적이고 서사적인 기념비적 개념에서 탈피해 일반 대중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일상과 가까운 사물을 소재로 장엄하거나 권위적이지 않은 친근한 공공조각을 만드는 대신 그 사물들에 상상력을 부여하고 크기의 확대를 통해 감상자가 사물에 부여된 본연의 기능을 잊게 만드는 것이다.
필자 역시 2016년경,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조성과 연계된 공공조각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예산 규모도 어마어마하고 브랜드 아파트의 랜드마크가 될 기회이니 내로라하는 공공 조각가들이 모두 덤벼들었던 대형 프로젝트였다. 미술판에서 작가로만 활동하던 필자가 우연히 발을 디딘 이 시장은 경쟁입찰부터 건설사, 컨설팅사, 땅을 고르고 작품을 만들어 설치하는 과정에 가담하는 모든 산업, 주민 공청회, 허가를 내주는 공공기관 등 프로젝트 하나에 매달린 산업과 업체들이 줄줄이 알사탕에다가 신경 쓸 일이 한두 개가 아니라서 미술판이라기보단 거칠고 투박한 건설판에 더 가까웠다. 작품에 대한 고민보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재료를 구하고 더 싸게 만들어줄 공장을 찾아야 하는 것이 작가들에게 제일 중요한 미션이 되고 작품이 놓일 곳에 대한 공간성이나 작품에 담긴 철학, 뭐 이런 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내기조차 힘든 그야말로 돈과 욕망이 집결하는 블랙홀 같은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좋은 기억도, 큰돈을 번 것도 아닌, 그저 서울 한복판에 내 손길이 닿은 작품 하나 남겼다는 만족감뿐이었는데 최근에는 공간적 특성과 공공의 가치를 모두 담은 공공조각이나 건축물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과거 마구잡이로 아무렇게나 놓였던 의미 없는 조각들은 아예 사라지거나 다른 것들로 대체되고 있는 추세이다.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예술과 도시가 맥락에 맞게 어우러져 가는 지금의 모습이 다행스러운 반면, 아주 오래전부터 절대 평범하지 않았던 올덴버그의 엉뚱한 상상들을 현실로 구현해준 예술 선진국의 창의적인 지역행정과 기업의 과감한 투자 등은 예술가의 관점에서 봤을 때 부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2006년 청계천의 리모델링과 함께 35억을 들여 청계천 입구에 세워진 높이 21.3미터, 무게 9톤짜리 올덴버그의 스프링(spring)을 보고 많은 한국의 예술가들은 ‘청계천 소라 탑’이라 부르며 국내 작가들의 어려운 예술 환경을 무시한 채 외국 작가에게 과한 지출을 한 도시 행정을 비꼬았다.
수입 명품 때문에 우리나라의 작품을 홀대한다는 것, 소라 모양의 작품이 장소성에 집중했던 올덴버그의 전작들과 달리 청계천과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인다는 점 또한 비난의 이유가 되었는데 어떤 작가단체는 국내 작가 350명에게 1000만 원씩만 지급한다고 해도 국내 미술발전에 더 가치 있는 일이 될 거라는 주장을 펴며 올덴버그의 조형물에 대한 설치 반대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올덴버그의 작품들은 설치된 장소보다 그의 작품 자체가 더 강력한 공공적 지표가 될 만큼 엄청난 힘을 지녔으니 그의 작품을 앞에 두고 비싼 가격이나 국내 작가의 작업환경에 대해서 논한다는 것이 좀 뻘쭘한 일이 되었다.
산책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던 김 과장이 아까보다 좀 더 자세히 소라껍데기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작품의 제목처럼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봄(spring)의 아지랑이 같기도 하고 표면에 장식된 붉은색과 파란색이 마치 우리나라 태극의 색상과 비슷하다는 생각까지 드니 이런 발견을 해낸 스스로가 무척이나 대견하다.
비행기만 한 복사기, 월드타워 높이의 꽃병을 상상하며 다시 일터로 향하는 김 과장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