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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예술 박기열 Aug 05. 2018

삶은 예술 2 - 가깝지만 낯선.

클래스 올텐 버그의 공공조각

(예술 인문학) ‘가깝지만 낯선’ 


눈을 똑바로 뜨고 도심을 걷다 보면 빼곡하게 들어선 빌딩과 빌딩들 사이에 놓여있는 뜻 모를 조각 작품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둥글거나 혹은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조형물부터 풍만하게 조각되어 있는 대리석 모자(母子)상도 내가 늘 다니던 그 길가에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주 눈여겨 쳐다보지 않으면 감지할 수 없을 만큼 그저 건축법을 위한 형식적인 조각인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그동안 찾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뭔가 작품성이 있어 보이는 요상한 조각들도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것들이 삭막한 회색 도시 풍경에 아름다운 획 하나를 그려준다고 생각하니 문득 답답했던 숨이 트이고 마음도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시청 앞 대기업에 근무하는 영업팀 김 과장은 오늘도 동료들과 우르르 몰려나와 식권으로 점심을 먹고 이쑤시개 하나와 계산대 옆에 설치된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뽑아 들었다.
하늘이 유난히 쾌청하고 선선한 바람까지 부니 오늘따라 곧바로 사무실에 들어간다는 게 영 내키질 않는다. 그래서 5분 거리의 청계천 입구까지만 조금 걷기로 한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엄마들, 막 연애를 시작한 듯 보이는 풋풋한 연인들, 김 과장과 다를 바 없는 한 무리의 넥타이 부대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따사로운 오후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 사이를 헤치며 온몸으로 햇빛을 흡수하려던 그 순간, 눈앞을 가로막은 무언가에 김 과장은 잠시 움찔했다. 7층 건물 높이는 될 법한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 같기도 하고 소라 껍데기 같기도 한 이것은 무엇인가?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이자 도시 모뉴먼트의 선두주자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1929~ )는 일상의 오브제를 대형화시키거나 변기나 바이올린 등의 딱딱한 물건들을 부드러운 비닐이나 천등을 이용해 해학적인 조각을 만드는 조각가이다.
그가 만든 대형 조각들은 크기를 통한 이미지의 강력함으로 대상과 일상생활 간의 괴리감을 인식하게 하여 사고영역의 확장을 가져다주었다. 또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미처 깨닫지 못한 하찮고 진부한 것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 줌으로써 예술을 실제 삶 속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올덴버그의 아이디어는 도시 공간에 대한 그의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 
미술학교 앞에 설치된 커다란 붓 한 자루, 수도꼭지에 연결된 고무호스 등 건물 크기의 조각 모두가 도시 풍경의 구성요소로서 기능과 장식의 구분을 넘어선 하나의 인간문화의 가치를 지닌 예술이라 생각하였다. 올덴버그는 그의 대형 조형물을 언제나 건축과 연결시키고, 특정 장소의 역사, 문화, 지역적 환경을 작품에 대입하면서도 기존의 영웅적이고 서사적인 기념비 조각의 개념에서 탈피하여 일반 대중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공조각을 제작하였다
일상적이어서 너무나 가까운 것들에 상상력을 부여하고 오브제의 확대를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사물에 부여된 본연의 기능을 잊게 만드는 것이다.

2006년 청계천의 리모델링과 함께 35억을 들여 청계천 입구에 세워진 높이 21.3미터, 무게 9톤짜리의 그의 작품 스프링(spring)을 보고 많은 한국의 예술가들은 ‘청계천 소라탑’이라 부르며 국내 작가들의 어려운 예술 환경을 무시한 채 외국작가에게 과한 지출을 한 도시행정을 비꼬았다.
수입 명품 때문에 우리나라의 작품을 홀대한다는 것, 소라 모양의 작품이 장소성에 집중했던 올덴버그의 전작들과 달리 청계천과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인다는 점 또한 비난의 이유가 되었는데 국내 작가 350명에게 1000만 원씩만 지급한다고 해도 국내 미술발전에 더 가치 있는 일이 될 거라는 주장을 펴며 올덴버그의 조형물에 대한 설치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의 작품 자체가 작품이 설치된 장소보다 더 강력한 공공적 지표가 될 만큼 엄청난 힘을 지녔으니 그의 작품을 앞에 두고 비싼 가격이나 국내 작가의 작업환경에 대해서 논한다는 것이 좀 쑥스러운 일이 되었다.

아까보다 좀 더 자세히 소라껍데기를 관찰해본다. 
작품의 제목처럼 몽글몽글 피어올라가는 봄(spring)의 아지랑이 같기도 하고 표면에 장식된 붉은색과 파란색이 마치 우리나라 태극의 색상과 비슷하다는 생각까지 드니 이런 발견을 해낸 스스로가 무척이나 대견하다.
비행기만 한 복사기, 63 빌딩 높이의 꽃병을 상상하며 다시 일터로 향하는 영업팀 김 과장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볍다.

필라델피아 미술학교에 설치된 올덴버그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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