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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예술 박기열 Aug 05. 2018

삶은 예술 1 - 생각 비틀기

에리엇 어윗의 사진 한 장

(예술 인문학) 생각 비틀기


‘창의 수학, 창의 경영’

어느 순간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 앞에 ‘창의’가 붙기 시작하면서부터 창의력은 더 이상 예술가들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 되었다.
기술의 발전은 가속도가 붙어 그 어떤 대비도 할 수 없을 만큼 빨라져만 가고 세트로 딸려오는 변화된 삶의 패턴들 역시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어서 원래부터 스스로가 창의력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의 자신감을 바닥까지 떨어뜨린다.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창의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제 모두가 아는 기정사실이고 기존의 관습과 방법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발 빠른 사람들이 어디선가 또 ‘융합’까지 들고 나왔다.
‘창의’만으로도 죽을 맛인데 융합이라니..... 대체 어쩌란 말인가?

세상에 없는 걸 만드는 게 ‘창의’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해다.
단지 우리가 행해왔던 기존의 방법들이 창의력과 거리가 멀었던 것이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인데 국가의 행정시스템부터 기업의 경영시스템, 심지어 우리가 지금까지 받아왔던 교육시스템까지 창의력과는 동떨어진 것들 천지다. 남들이 쓰다 버린 시스템을 가져다가 시간과 돈을 조금 아끼긴 했지만 개인의 상상력과 창의력보다 결과와 무사안일에 상당기간 빠져있던 탓에 결국 예측이 불가능했던 미래가 도래하자 불거진 문제에 허둥지둥하고 있는 꼴이 됐다.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에 가야 하는 사람에게 경운기 운전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공기의 밀도가 달라서 무중력 환경에 새로 적응해야 하는 사람에게 코로 숨 잘 쉬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만큼 이제는 누군가에게 “아빠 어렸을 적에는 이렇게 했지, 내가 과장일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야.” 라는 말을 한다는 게 참 고루하고 뻘쭘한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창의력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쉽게 시작해 볼 수 있는 것이 생각을 비틀어 보는 것이다.
생각을 비트는 연습도 꾸준히 하다 보면 그 수준이 높아지겠지만 처음에는 정말 바보 같아 보이는 방법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예를 들어앉아야 하는 의자에 누워본다던지, 고무줄 대신 양말로 머리를 묶어 본다던지 뒤로 걷기 등 너무 단순하고 망측해서 이게 뭐야 싶은 것들 말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고정관념을 깨는 것인데 나에게 토르의 망치가 있어 한방에 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모양을 자세히 살펴보고 가볍게 톡톡 건드려보면서 공략 가능한 부분을 찾아보는 것이다. 몸이 낯설어하고 머리가 복잡해질 때 비로소 아이디어의 불꽃은 딱딱 소리를 내며 점화하기 시작한다.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창의력은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원래 알고 있던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에서 시작되는데 뭐든지 다르게 보고 비틀어 생각하려는 습성을 지닌 예술가들의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작품을 보면 일반적인 생각과 창의적인 생각의 경계를 좀 더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세계적인 사진가 단체 매그넘의 회원이기도 한 프랑스 태생의 사진작가 엘리엇 어윗(Elliott Erwitt, 1928~ 현재)이 1974년 뉴욕에서 촬영한 한 장의 사진을 보자.
비록 전체 풍경이 다 보이지는 않지만 개의 커다란 발과 여성의 부츠만 봐도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그러나 이 사진을 읽으려면 약간의 추리력이 필요하다.
사진에 보이는 황소만 한 개의 발은 그 크기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아마 네덜란드 태생의 그레이트데인(Great Dane)의 것이 분명하다. 또한 그 옆의 맵시 있는 롱부츠, 작은 치와와가 입고 있는 모자와 옷으로 유추해 볼 때 이 개들의 주인은 패션 감각이 뛰어난 아름다운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우리가 한강 고수부지를 걷다가 우연히 이들을 마주하게 됐다면 어땠을까? 
나뿐 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엄청난 개의 크기에 먼저 놀라고 그다음 멋진 여성의 자태에 눈길이 머물 것이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이때 자신의 레이더에 걸려든 이미지를 빛의 속도로 분석하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다 더 매력적인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프로그램을 돌리고 불필요한 이미지들을 필터링하기 시작한다. 

그런 상상을 한 뒤 다시 작품을 들여다보자.
두 마리 강아지를 끌고 산책하는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 정도로 조만간 희미해졌을 법한 이미지가 가장 소외되고 가장 조그만 치와와에 초점을 맞춘 것만으로도 집중력 있고 상상력 넘치는 작품으로 변신을 하였다. 이것은 가장 큰 다리 네 개를 그저 기둥으로 전락시켜 버린 작가의 과감성과 창의력이 만든 결과이다.
지난 20세기 전반에 걸쳐 인간사의 다양한 모습들을 스냅사진 형식으로 담아왔던 엘리엇 어윗(Elliott Erwitt)의 대표작 중에서도 전 세계를 돌며 촬영한 ‘DOG’ 시리즈가 특히 유명한데 그는 평범한 일상을 새로운 눈높이로 관찰하여 오히려 인간을 조연으로 만들어 버리는 낯선 풍경을 담아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품 안에는 유머와 휴머니티가 가득하다.
평범함을 비틀어서 본질을 더욱 부각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어렵게 생각했던 창의력의 힘이기 때문이다.

화낼 때마다 쌍욕을 남발하던 사람이 욕 대신 존댓말을 쓰면 오히려 더 긴장되는 것처럼 매번 반복하던 자신의 패턴을 살짝 흐트러뜨리는 것만으로도, 늘 응시하던 곳이 아닌 다른 곳을 살짝 곁눈질하는 것만으로도 잠자던 당신의 창의력은 꿈틀대기 시작한다. 
허나 파스타에 고추장을 넣었다고 창의적인 요리가 되는 건 아니듯이 파스타 본연의 맛을 유지하면서 우리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특별한 재료를 찾아 나서는 것,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드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행동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이 바로 이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의 시작점이다.


엘리엇 어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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