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비틀기

에리엇 어윗의 사진 한 장

by 삶은 예술 박기열

‘창의 경영’, ‘메타 인지’

어느 순간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 앞에 ‘창의(creative)’라는 단어가 붙기 시작하면서부터 창의력은 더 이상 예술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 되었다.
기술의 발전은 가속도가 붙어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림자도 밟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앞서 가고 그로 인해 변화된 일상의 모습들마저 낯선 요즘이다.

게다가 학습, 추론, 지각 등 모든 인지능력조차 AI에게 밀리고 있는 인공지능 시대에 메타인지까지 활용해 기계와 다른 생각을 해야 한다는 부담은 스스로 창의력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의 자신감을 바닥까지 떨어뜨리고 만다.

정확히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제 모두가 아는 기정 사실이고 기존의 관습과 방법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이처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판국에 발 빠른 사람들이 어디선가 ‘융합’까지 들고 왔으니 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세상에 없는 걸 만드는 게 ‘창의’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해다.
단지 우리가 행해왔던 기존의 방법들이 창의력과는 먼 거리에 있었던 것이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인데 국가의 행정시스템부터 기업의 경영시스템, 심지어 우리가 지금까지 받아왔던 교육시스템까지 창의력과는 모두 동떨어진 것들 천지다. 남들이 쓰다 버린 시스템을 가져와서 시간과 돈을 조금 아끼긴 했지만 개인의 상상력과 창의력보다 결과와 무사안일에 상당기간 빠져 있었던 탓에 결국 예측이 불가능했던 미래가 도래하자 불거진 문제에 허둥지둥하고 있는 꼴이 됐다.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에 가야 하는 사람에게 경운기 운전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공기의 밀도가 달라서 무중력 환경에 새로 적응해야 하는 사람에게 코로 숨쉬는 법을 가르쳐 준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창의력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쉽게 시작해 볼 수 있는 것이 생각을 비틀어 보는 것이다.
생각을 비트는 연습도 꾸준히 하다 보면 점차 수준도 높아지고 세련된 아웃풋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처음에는 정말 바보 같아 보이는 방법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예를 들어 앉아야 하는 의자에 몸을 누여본다던 지, 고무줄 대신 양말로 머리를 묶고 외출하거나 한적한 거리에서 뒤돌아 걷기 등 너무 단순하고 망측해서 “이게 뭐냐” 싶은 것들 말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고정관념을 깨는 것인데 나에게 토르의 망치가 있어 한방에 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모양을 자세히 살펴보고 가볍게 톡톡 건드려보면서 공략 가능한 부분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디어의 불꽃은 몸이 낯설어 하고 머리가 복잡해질 때 비로소 딱딱 소리를 내며 점화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창의력은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원래 알고 있거나 별 것 아닌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에서 시작되는데 뭐든지 다르게 보고 비틀어 생각하려는 습성을 지닌 예술가들의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작품을 보면 일반적인 생각과 창의적인 생각의 경계를 좀 더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세계적인 사진가 단체 ‘매그넘’의 회원이기도 한 프랑스 태생의 사진작가 엘리엇 어윗(Elliott Erwitt, 1928~ 현재)이 1974년 뉴욕에서 촬영한 한 장의 사진을 보자.
비록 전체 풍경이 다 보이지는 않지만 개의 커다란 발과 여성의 부츠만 봐도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elliott-erwitt_new-york-city-1974-dog-legs.jpeg elliott-erwitt_new york city, 1974, dog legs

그러나 이 사진을 읽으려면 약간의 추리력이 필요하다.
사진에 보이는 황소만 한 개의 발은 그 크기로 봐선 아마 네덜란드 태생의 그레이트 데인(Great Dane)의 것이 분명하다. 또한 그 옆의 맵시 있는 롱 부츠, 작은 치와와가 입고 있는 모자와 옷으로 유추해 볼 때 이 개들의 주인은 패션 감각이 뛰어난 젊은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우리가 한강 고수부지를 걷다가 우연히 이들을 마주하게 됐다면 어땠을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엄청나게 큰 개에 먼저 놀라고 그 다음으로 멋진 여성의 자태에 눈길이 머물 것이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이때 자신의 레이더에 걸려든 이미지를 빛의 속도로 스캔하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다 더 매력적인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프로그램을 돌리고 불필요한 이미지들을 지워 나가기 시작한다.

그런 상상을 한 뒤 다시 작품을 들여다보자.
두 마리 강아지를 끌고 산책하는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 정도로 조만간 기억에서 사라졌을 풍경이 가장 소외되고 가장 조그만 치와와에 초점을 맞춘 것만으로도 집중력 있고 상상력 넘치는 작품으로 변신을 하였다.

크고 화려한 것을 주인공이라 여기는 사회적 통념을 깨고 가장 굵은 다리 네 개를 그저 기둥으로 전락시켜 버린 작가의 과감함과 새로운 관점이 탄생시킨 창의적인 결과이다.
지난 20세기 전반에 걸쳐 인간사의 다양한 모습들을 스냅사진 형식으로 담아왔던 엘리엇 어윗(Elliott Erwitt)의 대표작 중에서도 전 세계를 돌며 개를 촬영한 ‘DOG’ 시리즈가 특히 유명한데 그는 평범한 일상을 새로운 눈높이로 관찰하여 오히려 인간을 조연으로 만들어 버리는 낯선 풍경을 담아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품 안에는 유머와 휴머니티가 가득하다.
평범함을 비틀어서 본질을 더욱 부각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어렵게 생각했던 창의력의 힘이기 때문이다.

화낼 때마다 쌍욕을 남발하던 사람이 갑자기 품위 있는 언어를 사용하면 오히려 더 긴장되는 것처럼 매번 반복하던 자신의 패턴을 살짝 흐트러뜨리거나 늘 응시하던 곳이 아닌 다른 곳을 살짝 곁눈질하는 것만으로도 잠자던 당신의 창의력은 꿈틀대기 시작한다.
허나 파스타에 고추장을 넣었다고 창의적인 요리가 되는 건 아니듯이 파스타 본연의 맛을 유지하면서 우리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특별한 재료를 찾아 나서는 것, 자신의 취향을 갖고 나를 더욱 나 답게 만드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행동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이 바로 이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의 시작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