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테이너(Artainer)의 시대가 온다.
백종원이 요리사인지 사업가인지는 여전히 헷갈린다.
본인 스스로 요리사가 아니라고 하지만 어떤 요리든 거침없이 척척 만들어내는 것을 우리 눈으로 확인했고 그의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면 어떤 요리도 기본은 한다는 사실 또한 부엌에서 경험을 했다.
음식이 달고 짠 것은 부수적인 가지일 뿐, 결국 큰 뿌리는 요식문화에 대한 전방위적인 관심과 타고난 재능, 천부적인 사업가 기질로 여러 분야에서 성공해봤던 경험을 보유한 사람, 게다가 특유의 뚝심과 능청스러운 말투로 매체를 가리지 않고 대중들에게 리더십의 표본으로 또 친숙한 이미지로 자리 잡은 걸 보면 음식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욕망도 꿰뚫어 볼 줄 아는 통찰력의 소유자이기도 한 것 같다.
어쨌건 과거 전문음식점이나 호텔에서만 맛보던 음식들을 전 국민이 자신의 집 식탁에서 맛볼 수 있게 했으니 대중들이 먹는 욕망에 눈을 뜨고 그 이상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보다 한참 앞서 음악이 먼저 우리의 삶에 들어왔다.
가요 TOP10, 뮤직뱅크, 가요무대 등 몇 개 되지 않는 프로그램으로 대중음악을 풍미하던 기성세대 앞에 단순한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 아니라 경연의 포맷을 한 프로그램이 나타난 것이다.
가수가 자신이 부를 노래를 선정하고 연습하며 다른 가수들과 경쟁하는 마지막 순간까지의 모든 과정을 공유하면서 대중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친숙한 음악이 편곡을 통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선 경악했다. 경연 프로그램이 첫 선을 보이던 그때를 묘사해보자면 천체망원경으로만 바라보던 달에 첫 발을 내디딘 우주인의 마음 비슷한 것 아닐까?
물론 ‘전국 노래자랑’이라는 긴 역사의 전 국민 경연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나는 가수다’나 ‘불후의 명곡’은 이미 알려진 추억의 노래가 프로 뮤지션을 통해 새롭게 창작되고 전달되면서 듣는 국민 모두를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극한의 감동으로 데리고 가더니 건조한 그들을 음악 없이 살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그뿐인가?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작곡자가 누구인지 관심도 없고 알 수도 없던 시절, 오로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소리에만 집중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경연을 통해 뮤지션들이 음악을 대하는 방식을 알게 되고 개성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협업하고 음악을 재창조하는지 매 분매초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면서 들리는 음악 그 이상의 정보를 몸속에 채워 넣게 되었다.
이제 국민들은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도 자신들의 노래 속에 공기가 반이 섞였는지 소리가 반이 섞였는지 인지하는 건 물론, 최신 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간단한 음악 용어를 섞어가며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경연 프로그램이 창궐한 이후부터 그 장르가 얼마나 다양해졌냐 하면 발라드, 댄스는 기본이고 힙합에 오페라도 모자라 가수에게 가면을 씌우고 그게 누구인지 맞추게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것뿐이랴.
음악에만 그치지 않고 미션을 통해 최고의 디자이너를 찾는 프로젝트 런웨이를 비롯한 요리사, 피겨스케이팅, 아나운서, 연예기획사의 인턴을 뽑는 프로그램과 최근엔 트로트 경연까지 방송을 탔다. 재미를 위해 경연이나 오디션 형식을 차용했지만 늘 결과만 소비하던 대중들에게 창작의 과정을 알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삶을 창의적으로 바라보고 과정 또한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했다는 점에선 아주 긍정적인 효과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100 퍼센트는 아니더라도 그전까지 상상해보지 못했던 창작자의 고민과 창작물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그 깊이 그 느낌 그대로 전달하는 일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 것이다.
예술의 깊이에 두려워하지 않고 대중이 예술을 가깝게 느끼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창작의 과정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높아진 대중의 수준과 창작물을 통해 위안을 얻는 것을 넘어 창의적인 것들로 더 새롭고 신선한 걸 시도하면서 자신들의 현실에 놓인 복잡한 삶에서의 돌파구로 예술을 활용해보겠다는 욕망이 가져온 현상 같기도 하다..
요리도 역사도 음악도 모두 성공했으니 이제는 순수 예술의 차례이다.
대중적인 것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온 순수 예술가들의 작업방식을 현실과 영합하지 않으면서 얻게 된 깊은 철학까지 더해 전달하려면 대중성이 가미된 음악이나 실생활과 밀접한 요리를 전달하던 것과는 좀 더 복잡하고 세밀한 방식이 필요할지 모른다.
예술가들의 창작과정을 살펴보면 화가나 조각가, 클래식 음악가, 무용가 할 것 없이 대부분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견뎌야 하는 게 기본이자 습관인데 그 과정이나 결과는 대중들이 받아들이기엔 비논리적이거나 불편한 것들도 많아서 그 진정성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대중들로 하여금 예술에 대한 호기심보다 “예술가는 왜 저렇게까지 힘들게 살까?”라는 거부감 내지는 “내가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두려움을 갖게 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자신의 발이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처럼은 되어야 뭔가를 할 수 있다면 누가 예술을 하고 싶어 하겠는가?
그리고 지금까지의 예술은 오랜 훈련으로 예술가의 몸에 베인 기술과 그 과정을 고스란히 견뎠던 강한 마음을 한 곳에 담아 시대를 표현하고 삶의 애환과 기쁨을 가감 없이 보여주기 위한 몸짓이었지 누군가에게 나를 증명하거나 자신의 작품이 쉽게 소비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술이 대중에게 지금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선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머지않았다.
평소에 노래방에서 꾸준히 자신의 목소리를 갈고닦는 대중들은 음악뿐만 아니라 이미 라면 하나를 끓이더라도 서 너 가지 재료를 첨가하면서 맛의 깊이를 더하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조만간 그토록 꿈만 꾸던 예술의 시간이 도래할 것이다. 그리고 이때 누구보다 대중을 이해하고 예술 안에서 몸소 경험했던 어려운 과정을 대중의 언어로 쉽게 풀어내 줄 수 있는 예술계의 백종원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런 그들이 다양한 재능을 발휘해 예술이 얼마나 우리 삶에 유용하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지 증명해 줄 것이다.
진영이 둘로 나뉜 사회는 혼돈에 빠져있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모두가 어지러운 이때에..
아트테이너가 오고 있다.
요리테이너 역사테이너 그리고 예술테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