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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예술 박기열 Feb 04. 2020

인생은 어제보다 한 스푼 더

인생은 어제보다 한 스푼 더.     


인식을 못할 뿐이지 사람이 살아가는데 리듬 감각은 엄청나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백화점 입구 회전문을 통과하려고 해도 우린 그 속도에 맞춰 박자를 세어야 한다. 

어릴 적 친구들이 팔을 크게 저으며 돌리던 긴 줄을 넘기 직전, 리듬을 타면서 기회를 엿보던 그때처럼 말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배가 고파 푸드 코트로 가려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야 하는데 밀려 내려가는 계단에 집중하는 우리 몸의 모든 감각은 다시 한번 박자를 쪼개며 첫 발을 내딛을 순간을 포착하게 된다. 

사람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음악을 잘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물 흐르듯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거나 미끄러지듯 회전문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느끼는 리듬은 각자의 심장 박동과도 연결이 되어있다. 특히 루틴의 영향을 받는 운동선수들이 경기 전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소의 감각을 불러오기 위해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듣는 것도 그런 리듬 감각과 무관하지 않다. 

꼭 음악가가 아니더라도 싫든 좋든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 음악을 듣고 노래하며 사는 우리에게 리듬은 현실적으로는 회전문을 통과하는 것처럼 호흡과 박자가 필요한 일상의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한편, 정서적으로는 음악이라는 장치를 통해 각박하고 건조한 세상 속에서도 바짝 말라 비틀어지지 않고 적당한 습도를 유지한 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음악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어떤 뮤지션에 관한 이야기이다.


 팝의 본고장 미국에서 발표한 앨범의 판매량 단 여섯 장, 이렇듯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연기처럼 사라졌지만 생뚱맞게도 지구 반대편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우연히 흘러들어 간 그 앨범이 대중의 사랑을 받고 오랜 기간 100만 장이 넘게 팔리며 초대박의 인기를 얻게 된 가수가 있었다. 

팬들이 그를 다시 소환하려 했지만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어쩌다 노래는 회생했지만 가수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이름조차 알리지 못한 비운의 뮤지션 식스토 디아즈 로드리게스(Sixto Diaz Rodriguez)의 실체에 다가가는 “서칭 포 슈가맨”은 그의 노래 “슈가맨”에서 따온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지금 대한민국도 지나간 뮤지션 한 명을 소환해 열광하고 있는데 로드리게스의 실화에 영감을 받아 기획된 이 예능 프로그램의 제목 역시 ‘슈가맨’이다.

당시에 그를 알아보지 못했던 대중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당시 새로운 문화의 아이콘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더 센 캐릭터를 만난 그의 불운 탓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대중은 다시 돌아온 그에게 못다 한 관심과 기회를 무한 제공하며 마치 힘들었던 과거를 한 방에 보상해주려는 분위기이고 왠지 그는 처음 경험해보는 삶의 정점에 올라선 느낌이다.


누구나 긴 인생을 살다 보면 정점에 이르는 때가 있다. 

스스로 느끼던 타인이 규정해주던 ‘영광의 순간’ 같은 것 말이다.

정점은 스스로의 노력은 물론 조상님과 우주가 도와 자신이 모을 수 있는 가장 큰 힘을 뿜어 제일 높이 도달해 찍는 성취와 환희의 점이다. 하지만 시각을 조금 바꿔 생각해보면 추락 바로 직전에 놓여있는 하강과 절망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놀이동산에서 바이킹을 타고 제일 끝까지 올라갔을 때 그 높이의 쾌감을 제대로 만끽하기도 전에 아랫배가 찌릿해지는 추락의 신호를 감지하게 될 때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르겠다.           


다시 영화 “서칭 포 슈가맨”으로 돌아가 보자. 

디트로이트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던 로드리게스는 결국 팬들에게 소환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뜻밖의 변화들에 감사하며 남아공에서 몇 번의 콘서트로 보답을 하였다. 

그리고 결과는? 그는 다시 소환되기 전의 삶으로 되돌아갔다. 

대중 앞에서 사라졌지만 주어진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노래 가사들처럼 세상에 질문하고 그렇게 이해한 세상 속 작은 행복에 감사하는, 극명한 영광의 시간보다 어제보다 한걸음 나아가는 작은 전진을 소중히 여겼던 로드리게스는 뮤지션보다는 현인(賢人)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이제 우리가 소환한 그도 그러기를 바란다. 

그에게 찾아온 이런 포근함이 인생에 다신 없을 기회가 아니라 온 몸으로 막아냈던 지난 모진 풍파처럼 어쩌다 곁을 스치는 삶의 한 부분임을 깨달은, 그렇게 봄볕에 취하지 않고 언젠가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현인(賢人)이기를 바란다.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꼭 음악으로 뭘 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리듬이란 것이 회전문을 통과하거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데 필요한 것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영광의 순간 역시 과시하고 움켜쥐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늘을 무사히 보내고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는 삶의 도구로 여길 수 있기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당신은 긴 인생을 사는 동안 더 자주, 더 많이 영광의 순간과 대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일상에서 얻게 되는 보람 한 스푼, 감사 한 스푼, 건강 한 스푼을 내 삶으로 떠 옮길 도구의 성분이 금수저든 흙수저든 상관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늘만큼은 욕심을 버리고 어제보다 딱 한 스푼만 더 담아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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