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토요일마다 ‘토요 명화’라는 걸 틀어줬는데 오프닝 BGM이 흘러나오면서 오스카 트로피가 빙글빙글 돌았던 걸로 기억한다.
한때 미국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명화로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다.
봉준호 감독을 엄청 좋아하는 것 까지는 아니지만 디테일 끝판왕인 이 사람이 만약 지금과 같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면 그저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는 괴짜 감독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수상소감은 그의 영화만큼 디테일이 있었고 원래 여유로운 사람이라기보다 철저한 준비로 여유로움을 만드는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다.
특히 스콜세지에 대한 찬사로 그 순간을 한 편의 영화처럼 만들어버린 수상소감이라 더 멋졌다.
통역을 맡은 샤론 최도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는데 같은 재능으로 이창동 감독보다 봉감독 옆에서 훨씬 더 빛이 나는 이유 역시 사람이든 상황이든 주변의 모든 걸 간파해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봉감독의 연출력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너무 빨리 이룰 걸 다 이뤘으니 앞으로 봉감독은 좋은 것도 크게, 나쁜 것은 더 크게 맞이할 것이다.
게다가 미워하고 시샘하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의 능력으로 짐작하건대 그 모든 상황조차 세계가 인정한 연출력으로 좋게 바꿀 것 같은 막연한 기대를 갖게 한다.
다 떠나서 무엇보다 봉감독이 오스카상을 휩쓴 일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미국 영화를 명화로 떠받들던 한국에서 태어난 소년이 가장 미국적인 영화제의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건 마치 K-pop을 사랑하던 프랑스 소년이 SBS 인기가요에서 1등을 한 정도가 아니라 한국의 국악을 사랑하던 르완다 시골마을의 한 소년이 어른으로 자라 전주에서 열리는 대사습놀이에서 판소리 부분 대상을 거머쥔 느낌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