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의 새 앨범 'my fuxxxxx romance'
이별장인(離別匠人)
우리가 이별에 능수능란해지고 그렇게 장인이 될 수 있었다면
살면서 겪었던 많은 이별에 매번 마음 아파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래전, 얼굴마저 희미해진 누군가와 이별했던 순간이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불쑥 떠오르는 이유는 헤어진 이에 대한 그리움보다 혼자가 되는 내가 서럽고 불쌍했던 가슴 쓰린 순간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력 없이 안 되는 지겨운 사랑이라 할지라도 혼자가 되는 것은 늘 두렵다.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했지만 그게 누구였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우린, 너 아니면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겠다던 숭고한 다짐을 새로운 사랑 앞에 다시 반복하며 깃털처럼 가벼운 입방정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우린, 그야말로 외로움의 노예다.
한때 몇몇 노래의 소재일 수도 있는 그의 실제 사랑과 이별을 가까운 거리에서 목도한 내가 생각하는 박원은 절대 이별장인이 아니다. 사랑에 한 번 빠지면 가족도 선생(?)도 눈에 안 보일 만큼 더 깊게 들어가 헤엄치기는 하지만 이별 앞에서는 늘 겁쟁이이고 비겁하다.
호기심이 많은 박원은 높은 곳에 올라가 보려 하지만 그곳에 오래 머무를 배짱은 없다.
사랑하고 싶은 욕망 또한 크지만 그 사랑을 오래 품을만한 인내심도 그 사랑을 다듬어 안전하고 튼튼하게 만들 마음 역시 지금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자유의지 위에 놓아두려 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위치나 상황에서도 수가 틀리면 아무리 두려워도 다시 원점으로 뛰어내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일과 사랑 모두에서 말이다.
우리는 그를 이별장인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이별준비의 장인(匠人)인 것이다.
그걸 스스로가 잘 알기 때문에 현재는 꽤 많은 자유를 양보하고 감정소비가 큰 실제 사랑보다는 음악에 시간을 더 투자할 수 있도록 사랑의 기억만을 더듬어 필사적으로 작업에 매달리고 있는데 사랑처럼 음악과도 언제든 이별할 준비가 되어있을 박원을 생각해보면 지금 세상에 나오는 한 곡 한 곡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사랑과 이별이 함께 붙어 다니지만 그 둘은 결코 등가 교환되지 않는다.
사랑의 벅참은 짧고 이별의 아픔은 길다. 만남은 설레고 헤어짐은 쓰리다.
그리고 사랑의 아픔을 회복하려면 사랑했던 시간의 몇 배가 걸린다.
박원은 끝까지 갈 수 없었던 사랑의 기억을 자신의 음악에 투영시킬 뿐이지 이별을 잘 알거나 잘하는 사람이 결코 아닌 것이다.
결국 이별장인(離別匠人)은 빌어먹을 사랑(fucking romance)때문에 괴로워하는 박원이 아니라 헤어지는 그 순간에 잘 먹고 잘살라고, 그리고 뒤통수 조심하라며 뼈큐(fuck you)를 날릴 수 있는 쿨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