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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예술 박기열 Apr 11. 2024

이제, 포스트 마더니즘으로

마더니즘의 두 번째 전시 <Oh! My Keeper> 리뷰

  1. 뭐라도 해볼까?     


엄마. 배 아파요

엄마. 도윤이가 나한테 나쁜 말 했어.

엄마. 리코더 찾아줘. 늦었어. 빨리.     


살면서 한 번도 만능이었던 적 없던 내가 의사도 됐다가 변호사나 탐정이 되어야 하는 K-엄마로 산다는 건,

실제 나의 능력치와 해내야 하는 현실 사이의 엄청난 거리를 매 순간 느끼게 되는, 이중적 모순과의 역설적인 합의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한때는 꿈과 작품이 곧 나였던 시절도 있었다. 어느새 자식과 남편이 그 자리를 차지했지만 거기에도 내 역할은 있으니 나쁘지 않은 것이라 여기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보람과 긍지로만 살기에는 내 속의 내가 여전히 팔딱거린다.

오랜 시간 예술을 공부하고 심지어 작가였던 내가 어쩌다 엄마로 살았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의 난 아무도, 누구도 아니다.

예전처럼 흙먼지를 일으키고 가마에 불을 지피는 건 꿈도 꿀 수 없으니 아이들 유치원 간 사이 혼자 그림을 그려볼까? 아니면 갈수록 눈에 띄게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는 남편을 대신해 동네 아이들을 모아 미술이라도 가르쳐 볼까? 아니지. 그럴 시간에 아이들 간식이나 더 정성껏 준비하자며 내 속의 나와 옥신각신하길 여러 번.     


2. 작가의 삶은 예술과 분리될 수 없다고?     


그렇게 나불거린 인간은 분명 하루 세끼 아이들 밥을 차려내거나 속옷 빨래, 양말 빨래 번갈아 가며 세탁기를 돌려본 적 없는 사람일 거야.

대체 누가 예술은 작가의 현실을 반영해야 하는 거라고 했던가?

끊이질 않는 집안일, 숨돌릴 틈 없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엄마의 삶을 살다 보면 직장을 다니며 고정적인 수입을 벌어오는 남편의 일보다 가치 없게 느껴지는 예술의 위치를 문득 깨닫게 되고 한때, 나의 전부였던 예술은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현실을 망각해야만 곁에 둘 수 있는 취미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엄마란 단지 인간이 겪는 육체적 노화와 정신적 성숙의 개념 위에서 그냥 자연스럽게 부여받는 자격이 아니라 내 몸을 찢고 부수고 태워야 가능한 자리라는 걸, 아이를 받아 들고 처음 느껴보는 경이로움도 잠깐, 아이를 안은 팔이 저려올 때마다 나의 꿈과 현실을 맞바꾼 자리였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무섭고 서러워서 한참을 울었다. 하지만 나를 위한 이성보다 아이를 위한 본능이 앞설 수밖에 없게 된 엄마의 시간을 맞이한 지금, 그때의 힘든 기억을 굳이 떠올리지 말자. 지금껏 제대로 꿈 한번 펼쳐본 적 없는 나지만 누군가의 우주가 되어야 한다는 한 가지 사실에만 집중해보자.      


3. 우리가 다시 만난 날     


어느 시절, 함께 공부하고 작업했던 우리가 서로 사는 모양과 색은 달라도 엄마로서의 고민은 다 거기서 거기인가보다. 예술에 관계된 뭐라도 해볼까 싶어 만났지만 아무 결론 없이 결국 아이들 얘기로 끝을 맺는다.

자자. 집중.

우리가 가족과 분리될 수 없다면 우리의 역할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면 어떨까? 흙이라는 버거운 재료로 힘들게 작업해왔던 우리라면 가사나 육아와 같은 노동의 예술적 측면 또한 관찰할 수 있지 않을까?

마더(Mother).

무겁지만 거역할 수 없는, 자랑스럽지만 내 몸에 다 담기 어려운 엄마라는 역할 안에서 우리의 현실과 고민을 작품으로 표현해 보는 거야.

그래! 마더니즘(mothernism)      


마더니즘 <Oh! My Keeper>     


굽네 플레이타운 홍대


홍대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 한가운데에 독특한 문화공간이 하나 있다.

총 네 개 층으로 구성된 굽네 치킨의 플래그십 스토어 <굽네 플레이타운>은 Z세대를 잡기 위한 기업 문화 마케팅의 하나로 먹거리와 볼거리, 즐길 거리를 동시에 제공하는 복합 공간인데 그중 4층은 갤러리로 운영되며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을 소개하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마더니즘의 <Oh! My Keeper>전을 보기 위해 들어선 1층부터 고소한 치킨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지난 연말에 열렸던 마더니즘의 첫 번째 전시 ‘모두의 작업실’ 역시 엄마인 작가들이 차려낸 음식으로 가득한 공유주방을 전시공간으로 꾸며 과거 엄마의 상징과도 같았던 부엌을 작가의 작업실로 상정한 것이 특별했었는데 그러고 보면 마더니즘의 모든 전시에는 후각적 자극이 있었던 것 같다.     

전시공간은 미디어 스페이스로 설계된 3층과 갤러리가 있는 4층이다.


팀 XYZ 作

3층에는 시간, 공간, 사건을 각각 X, Y, Z 값으로 측정해 만든 영상 작품이 있었는데 작업의 컨셉이 되었던 좌표 XYZ가 그대로 이 작품을 만든 박수진과 김동철(이하 XYZ)의 팀명이 되었다. XYZ는 도자 조형 작업을 하던 아내와 공학도 출신이자 인공지능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남편이 결성한 프로젝트팀이다.

대부분의 기혼 여성들은 오랜 시간 결혼생활을 유지하면서 남편에게 크고 작은 배신을 당하거나 치사한 말과 행동에 정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영민하게도 작가인 아내가 예술에 관심이 많은 남편을 공동 창작자로 영입함으로써 눈치 볼 대상을 원천적으로 제거해버렸다. 심지어 조력자라니..

XYZ는 집안에서 가족 간에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을 시간과 동선으로 측정해 기록했다. 그렇게 구한 좌표를 블렌더 3D에 얹어 영상으로 구현해 냈고 거기에 쌍둥이 아들들이 손을 보탠 오브제까지 더해 평면과 입체가 혼합된 공간으로 구성했는데 이것은 흙과 불이라는 재료에 익숙한 엄마가 자신의 가족들과 새로운 매체를 이용해 낯선 공간으로 뛰어들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결과다. 의도치 않게 플레이타운을 찾는 손님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포토존이 된 3층을 지나 4층으로 올라가니 평면과 입체작품으로 가득 찬 또 다른 공간이 나타났다.     


유은혜 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이상한 숫자와 기호가 대형 캔버스와 초벌 된 흙 판 위에 알 수 없는 패턴으로 표시된 유은혜의 작품 <지각하는 우리-드로잉1,2,3>이다. 유은혜의 이전 작품은 초벌 된 기물 위에 켜켜이 유약을 올리고 소성을 통해 흘러내리게 한 <산> 시리즈인데 전작과 비교하면 이번 작품들은 거의 헐벗은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건 벗은 게 아니라 의식만으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을 무의식까지 동원하여 극복해보려는 작가의 의지가 반영된 작품이며 작가는 그 과정 중에 발견한 무질서 속의 질서를 찾으려는 방법의 일환으로 숫자와 기호를 작품 위에 입힌 것이다. 또한 자기반성과 희생에 이미 익숙해진 작가가 과거 온 가족이 산에서 길을 잃었던 경험을 통해 멈추거나 외면할 수 없는 현실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한 흔적이 담긴 깊은 성찰의 산물이다.     


진혜주 作

프랑스 벼룩시장에서 운 좋게 건진 멋진 흑백사진처럼 담백하고 아련한 작품을 만들었던 진혜주가 이번에는 색을 입혔다. 과거 자신이 만들었던 기물을 화폭에 담고 그 안에 균형 잡기 직전의 불안한 자신의 포즈들을 그려 넣었다. 기물과 몸의 경계에는 반복된 붓 터치의 재질감을 살려 드리운 여전히 아련한 그림자가 있고 작가가 고민하는 자신의 정체성, 몸과 마음의 흐트러짐, 현실의 수렴 등이 회화와 조각의 교차지점에 대한 지난 고민을 만나, 마치 그녀의 작품이 정신은 강렬했지만, 표현은 결코 과격하지 않았던 유럽 추상 표현주의의 작품과 닮아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찾기 위한 우리의 여정과도 같아 자꾸 눈이 가는 작품이다.      


나정희 作

커다란 나무 위에 고양이 열매들이 맺혔다.

고양이를 소재로 한 회화와 조각은 나정희의 작품인데 그림도 잘 그리고 손재주도 좋은 나정희는 동네에서 발견한 아픈 고양이 네모와의 만남을 계기로 고양이 작업을 구상하게 된다. 나정희의 작품은 언제나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지키는데 기꺼이 자신의 모든 걸 내던지는 그녀의 성정을 그대로 반영하는데 TV 리모컨을 들고 세상에서 제일 편하고 게으른 자세로 누워있는 고양이 가족들은 그녀의 가족 역시 앞으로 그렇게 편하고 안전하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투영된 것 같아 유쾌하지만 한 편으로는 짠하다.

예술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우리의 감정을 변환해 보여주기도 하는데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귀엽고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가족을 지켜내기 위한 용맹스러운 엄마 호랑이로 점점 변하는 것 같다.     


박선영 作

전시 제목 <Oh My Keeper>의 Keeper는 대체로 엄마이자 여자인 작가들이 지켜야 할 어떤 것에 관한 의미이지만 박선영은 자신이 지켜야 하는 많은 것들로 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도피’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에선 결국 도피한 곳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다음엔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혼란스러운 마음이 감지된다. 그도 그럴 것이 도피해서 만난 것들이라 하기엔, 혹은 도피하기 위해 위장한 자기 자신이라 하기엔 너무나 사랑스럽지 않은가?

그녀와 함께 하는 도피라면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로맨스가 있고 남을 위한 봉사도 있고 어려운 사람을 위한 기부도 있을 것만 같다. 도피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다른 형태로 모든 걸 지키고 있었던 역설의 서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박수진 作

뭔지 모를 낱개의 조각들이 큰 그림을 이루고 있다.

음식 재료를 모티브로 작품을 만든 박수진은 일상의 재료를 확대하거나 해체, 재조합하는 과정을 거쳐 비일상적인 이미지로 치환한다.

마더니즘 맴버 중에 가장 맏언니지만 언제나 꼴찌를 자처하는 그녀는 멤버들을 힘들게 하는 그 소란한 마음들을 이미 오래전에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모든 멤버를 통틀어 자기의 삶에 어떻게 예술을 곁에 두면 좋을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같아 보인다. 그런 그녀는 마더니즘의 리더가 아니더라도 오랜만에 예술의 맛을 본 다른 멤버들이 또 다시 욕망의 화신이 되지 않게 진정시키며 팀의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대단한 뭔가가 되고 싶다기보다 이렇게 표현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하다는 듯한 태도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지만 무엇보다 엄마의 작품에 근사한 피드백을 해주는 그녀의 다 큰 아들을 바라보는 각 멤버들의 눈빛을 보고 있으면 조만간 자신이 맞이하게 될 미래에 대한 기대감 같은 것들이 엿보인다. 그리고 마더니즘이 더 성장하기 전에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정보가 있다. 마더니즘의 멤버 중에 박수진과 동명이인이 있는데 남편과 협업하는 박수진이 XYZ라는 팀명으로 활동하니 확실히 구별해주기 바란다.     


마치며.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인생이란 덩어리는 대부분은 사소하고 소소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위대한 엄마를 사소하게 대하곤 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엄마보다는 친구가,

엄마가 해준 밥보다 치킨이 더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난생처음 엄마라는 계절을 맞이한 그녀들이 누군가에게 사소하게 여겨진다고 느낄 때마다 엄마의 계절엔 끈적한 여름과 차가운 겨울만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마더니즘을 통해 포근한 봄과 바삭한 가을이 있었다는 것을 점차 알게 될 테니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마더니즘이 엄마를 대변했던 한때의 해방 주의 운동 같은 게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성찰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는 커다란 예술적 흐름이 되길 바란다. 그러다가 나중에 포스트 마더니즘,

네오 마더니즘, 파더니즘 같은 것도 막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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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 _ 박기열 (엑스퍼트 컨설팅 Art & Edu Center 소장)     

20년 가까이 도예가로 활동하다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전향하여

‘박경림 토크 콘서트’의 예술감독과 오은영 박사 강연 ‘훈육의 새로 고침’을 총괄 기획했다. 현재는 예술 기반의 기업교육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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