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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삶의 밸런스

by 삶은 예술 박기열

예술이 좋은 건 다들 안다.

인류가 지나온 긴 시간 동안 아는 자와 가진 자들이 동시대의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끊임없이 욕망해 왔다는 것은 이미 역사책에 기록된 사실이고 시대의 변곡점마다 우리를 치유하고 우리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준 장치 또한 언제나 예술이었다. 그러니 모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삶에 치이고 지칠 때마다 고통보다 더 큰 쾌락과 유희를 선택해 스스로를 마비시킨다. 예술은 차마 내가 발을 들일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까이 가는 것은커녕, 가까이 가는 방법조차 찾아내기 어려운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예술은 인간에게 “우리가 필요할텐데...” 라며 언제 어디서든 손을 내밀어왔지만 갈수록 멀게만 느껴지는 예술을 어떻게 해야 내 삶 가까이 끌어당길 수 있을까?

사진1) 대(代)를 걸쳐 60여 년간 미켈란젤로를 지원한 메디치 家의 무덤_ 산 로렌초 성당,  미켈란젤로 제작.jpg 대(代)를 걸쳐 60여 년간 미켈란젤로를 지원한 메디치 家의 무덤_ 산 로렌초 성당, 미켈란젤로 제작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력의 유무가 아니라, 지금까지와는 다른 습관을 만들어 거추장스럽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일상에 변화를 끌어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전제 하나.

지금부터 언급되는 예술은 작가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끝내 완성해 낸 그림이나 조각 같은 작품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일상에서 발휘할 수 있거나 머리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최대치의 이상한 생각, 혹은 이전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쓸데없는 짓 정도로 수준을 낮추고 범위도 좁혀야 한다. 낯선 습관을 장착하는 일은 나쁜 습관을 버리는 것 만큼이나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창의적인 생각 역시 일상 속에서 불쑥 튀어나와야 비로소 우리 삶에 직접적인 힘을 발휘하는데 그 모든 것들은 나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습관처럼 몸에 배어있지 않으면 필요한 순간에 절대 작동하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예술가라 해도 자신의 재료를 만지고 다듬는데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진2) Apple Clock (사과를 15일간 촬영, 2006). 박마스터는 과거 어린 딸에게 긁어 먹이고 남은 사과의 갈변 과정을 사진으로 남겼는데 관점을 달리하면 음식쓰레기조차 시간이 담긴 예술로 변모시킬 수 있다 _ photo by 박기열.jpg Apple Clock (사과를 15일간 촬영, 2006)_ 과거 어린 딸에게 긁어 먹이고 남은 사과의 갈변 과정을 사진으로 남겼는데 관점을 달리하면 음식쓰레기조차 시간이 된다.



사진3) 화려한 성취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아름다움과 취향을 발견하는 공원 화장실 청소부의 삶을 그린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 퍼펙트 데이즈'.jpg 화려한 성취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아름다움과 취향을 발견하는 공원 화장실 청소부의 삶을 그린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 퍼펙트 데이즈'

예술 없이도 충분히 잘 살아왔다고 믿는 사람들일수록 AI시대에 접어든 지금, 과거처럼 정답을 좇는 일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뻔한 정답이 아니라 이전엔 없었던 질문이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기존의 생각과 몸에 밴 습관에 대대적인 전환이 일어나야 하는데 습관을 몸에 장착시키기 위해선 수많은 동력이 필요하다. 몸 안에 스며들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오래가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지속하게 할만한 계기와 장치가 필요하고 예술을 삶으로 끌어들이는 방식 역시, 각자의 기질과 특성에 맞게 스스로 발견해 나가야 한다.

금연이나 다이어트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겠다.

오랫동안 이어진 흡연과 운동 부족, 무분별한 식습관으로 몸이 망가진 사람들은 약간의 마른기침이나 가쁜 숨, 누적된 피로쯤은 익숙한 듯 감수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공기 좋은 곳에서 청량한 들숨과 넘치는 활력을 단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그 후로 다시는 자신의 몸을 함부로 방치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좋은 경험을 해본 사람은 자꾸만 자기 주변으로 더 좋은 경험을 끌어모으려 애를 쓴다.

금연을 결심한 사람은 그 사실을 먼저 주변에 알리고, 보건소나 병원의 금연 클리닉을 찾고, 담배 생각이 나지 않도록 자신의 환경을 금연에 정조준한다. 다이어트 역시 마찬가지다.

금연과 다이어트가 건강을 되찾아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라면, 예술은 낡은 가치관과 정형화된 습관을 전복시키고 굳어 있던 감각을 깨워, 이전에는 감지하지 못했던 세상의 미세한 신호들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장치이며 우리의 가치관을 다시 세팅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에 없던 창의적인 습관을 장착하고 예술과 친해진다는 것은 금연이나 다이어트와 비교해도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일이어서 설렁설렁, 시간 날 때 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둔다.

사진4) 돗자리와 뚫어뻥(Cup Plunger)을 이용해 인공위성을 만든 광학 기술 연구원들_창의 실습 프로그램 '상상공장공장장'.JPEG 돗자리와 뚫어뻥(Cup Plunger)을 이용해 인공위성을 만든 광학 기술 연구원들_창의 실습 프로그램 <상상공장공장장>

직장인을 대상으로 예술 강의를 하다 보면, 창의적인 습관과 사고를 기존의 직무교육처럼 공식화하거나 일반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그런 접근의 교육은 미슐랭 셰프의 파인 다이닝이라기 보다는 대형마트 시식 코너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은데 그래서 예술 강사인 나의 미션은 전형적이고 정형적인 틀을 벗어난 기업예술교육의 새로운 접근방식과 교수법을 찾아내는 데 온통 집중되어 있다. 예상을 뒤엎는 낯선 방식으로 접근해야만 대중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예술의 ‘맛’에 호기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낯섦에서 비롯된 불편함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 때 비로소 본격적인 예술 놀이에 몰입할 수 있다.

창의적인 사고는 아주 긴 시간 동안 쌓여온 습관의 결과다.

숟가락을 쥐는 방식, 무심코 고른 옷의 색상, 직접 만들어 낸 집 안의 인테리어, 수십 년간 부모와 나눴던 대화의 방식은 물론, 자신의 인생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던 일들의 종류와 범위와 깊이만큼 자라난다. 그런 이유로 단 한 번의 강의나 실습만으로 인간이 갑자기 창의적으로 변할 수는 없으니 기업교육 또한 더 깊이, 더 꾸준히 예술이 사람 속에 스며들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설계해야 한다. 기술의 진화 속도를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각자의 일터와 가정에서 더 굳건히 유일하고 특별한 개인으로 존재해야 한다.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모양에 맞는 창의력을 기획하고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지금 기업교육에 필요한 예술의 역할이다. 그리고 이것을 예술 ‘놀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 모든 과정이 반드시 즐거운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5) 예술의 무게_AI work by 박기열.png 예술의 무게 _ AI editing by 박기열


얼마 전까지 우리가 필요로 했던 것은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는 워라밸(work+life+balance)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끌어올리고, 자기만의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는 아라밸(art+life+balance)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워라밸이 시계라면, 아라밸은 시간이다.

워라밸이 지갑이라면, 아라밸은 돈이다.


우리 모두 아라밸 행성으로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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