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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헤드 데이의 추억

필라델피아 필리스 vs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9.08.20)

by clayton

버블헤드(bobblehead) 데이. 선수들의 얼굴을 본떠 형상화 한 버블헤드 인형을 관중들에게 나눠주는 날이다. 버블헤드 인형은 3등신에 가깝게 머리가 과장되어있고, 머리와 몸통을 잇는 부분이 스프링으로 되어있어 머리를 까딱거리는 인형이다.


퀄리티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선수들의 얼굴과 버블헤드 인형이 잘 매치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지금까지 여러 선수들의 버블헤드 인형을 봐왔지만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싱크로율이 높은 버블헤드 인형은 아직까지 없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팀을 대표하는 선수들의 버블헤드 인형을 만들어 관중들에게 증정하는 이벤트를 연중 수차례 연다. 지난 2019시즌 LA 다저스는 스타워즈 데이를 맞아 스타워즈 '한 솔로' 캐릭터에 류현진의 얼굴을 대입한 '현 솔로' 버블헤드 인형을 증정하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브래드 릿지 버블헤드 인형. (C) clayton


20경기 이상의 메이저리그 경기를 직관하다 보니 그중 두 경기에서 버블헤드 인형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제일 처음 받았던 것은 2009년, 당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마무리 투수였던 브래드 릿지의 버블헤드 인형이었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3연전 중 두 번째 경기였는데, 그날 경기에 브래드 릿지의 버블헤드 인형을 받기 위한 관중들이 몰려 일찌감치 모든 좌석의 티켓이 동이 났다. 티켓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던 나는 결국 입석표를 사기 위해 땡볕에서 1시간가량 줄을 서야만 했다.


브래드 릿지에게 2009시즌은 악몽 그 자체였다. 42번의 세이브 기회에서 11번의 세이브 기회를 날리며 31세이브를 거두는 데 그쳤다. 7.21의 평균 자책점, 11번의 블론 세이브 모두 마무리 투수에게 낙제점에 가까운 기록이었다.


더군다나 바로 직전 시즌이었던 2008시즌에 단 한 번의 블론세이브 없이 41세이브를 거두며 세이브 성공률 100%라는 믿기 어려운 기록을 달성했던 릿지였기에 팬들의 충격은 더했다. 2008시즌을 앞두고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해 온 릿지의 활약에 힘입어 필리스는 2008시즌에 28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버블헤드 데이의 주인공이었던 브래드 릿지는 그 날 경기에서 등판 기회를 잡지는 못했다. 선발투수로 나선 클리프 리가 빼어난 호투로 9이닝을 끝까지 책임지며 완투승을 거뒀기 때문이었다.


사진 = LA 다저스 공식 SNS


두 번째 버블헤드 인형은 'SAVE THE FLAG'로 유명한 릭 먼데이의 버블헤드 인형이었다. 2013년 8월 28일(한국시간)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와의 3연전 중 두 번째 경기였는데, 당시에는 릭 먼데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꽤나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먼데이는 당시 뛰고 있던 현역 선수도 아니었고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스타플레이어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먼데이의 버블헤드 인형은 원정팀인 시카고 컵스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다저스타디움에서 왜 시카고 컵스 유니폼을 입은 먼데이의 버블헤드 인형을 나눠주는지 충분히 의문을 가질만했다.


배경을 알고 나서야 이해가 됐다. 1976년 4월 25일(현지시각) 경기였는데, 경기 중 다저스타디움 외야에 난입한 관중 2명이 성조기를 불태우려는 시도를 했다. 원정팀 컵스의 외야수였던 먼데이는 재빠르게 그들에게 달려가 성조기를 낚아채 불 탈 위기에 놓였던 성조기를 구했다. 다저스타디움에 모인 관중들은 홈팬 원정팬 가릴 것 없이 먼데이에게 열렬한 환호와 지지를 보내며 화답했다.



사진 = LA 다저스 공식 SNS


수십 년이 흐른 뒤에 먼데이의 버블헤드 인형을 제작하여 나누어줄 정도로 성조기를 구한 먼데이의 행동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그 날 경기가 인연이 되었는지 먼데이는 1977시즌을 앞두고 다저스로 트레이드되어 선수생활 말년을 다저스에서 보내기도 했다.


브래드 릿지, 릭 먼데이 두 명의 버블헤드 인형은 한동안 내 책상 위를 차지했지만 아쉽게도 현재는 모두 망가져 보유하고 있지 않다. 인형의 머리 부분이 견고하지 않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부러지기 쉽다. 다음에 또 버블헤드 인형을 받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좀 더 오래 보유하기 위해 언박싱 하지 않은 채로 보관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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