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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노트 in 샌디에이고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vs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14.05.03)

by clayton

어릴 적 세상에 둘 도 없는 친한 관계라고 생각했던 친구와 다툰 이후 관계가 소원해져 버린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다시 그때를 떠올려보면 사소한 이유로 많이도 다퉜던 것 같다. 그때는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서 다퉜는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 순간을 추억하면 낯이 뜨거워질 때도 있다.


중학교 시절, 점심시간에 같은 반 친구와 축구하다가 절교할 뻔한 일이 있었다. 동네나 학교 축구 룰은 프로 경기와 다르다. 경기 중에 수시로 필드 플레이어가 골키퍼가 되기도 하고, 골키퍼가 필드 플레이어가 되기도 한다. 방법도 간단하다. 가볍게 서로의 손을 터치하는 것으로 필드 플레이어와 골키퍼가 서로 역할을 바꿀 수 있다.


그 날 경기에서 나는 골키퍼로 시작하여 경기 후반에는 골키퍼를 다른 친구에게 넘겨주고 필드 플레이어로 나섰다. 경기는 꽤 접전이었는데, 사건은 경기 후반에 벌어졌다. 상대팀 친구의 결정적인 슈팅을 골문 근처에 있던 내가 두 손으로 잡아버린 것. 필드 플레이어가 된 순간 손으로 공을 잡으면 핸들링 반칙이 되는데, 위급한 상황이 되자 발보다 손이 먼저 나가버린 것이다.


승부욕 때문이었을까. 그 상황에서 나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골키퍼라고 우겼다. 거기에 핀트가 상한 상대팀에 있던 친한 친구는 나와는 다시 축구를 하거나 놀지 않겠다고 절교선언을 해버렸다. 뒤늦게 그 친구를 찾아가 사과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친구와 화해의 장은 당시 축구장에서 열렸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친구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의 편지를 썼고, 그 편지가 친구의 마음을 움직여 축구로 생긴 일은 축구로 풀자며 K리그 프로축구 경기를 같이 보러 가자고 제안했던 것.


기억력의 한계로(벌써 20년이 넘게 흘렀다...) 정확히 어떤 경기였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울산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울산 현대와 포항 스틸러스의 경기로 기억한다. 전후반 90분 동안 승부를 가리지 못한 양 팀은 연장전을 거쳐 승부차기에 돌입했고, 승부차기 끝에 승패가 결정되었다.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를 같이 관람한 친구와의 우정은 다툼 이전보다 더욱 돈독해졌고, 서로 좋지 않았던 감정은 눈 녹듯 녹아내렸다.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홈구장 펫코 파크. (C) clayton


2014년 5월, 샌디에이고를 여행지로 선택하게 된 건 대학교 신입생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초대 덕분이었다. 몇 년간의 수험생활 끝에 공인회계사가 된 친구는 샌디에이고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었고, 당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던 나는 근로자의 날부터 어린이 날까지 이어진 연휴기간에 친구의 초대를 받아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 친구와의 공통분모는 운동이었다. 고향을 떠나 타지 생활을 하고 있던 우리는 서로의 자취방에서 무수히 많은 스포츠 경기를 함께 보았으며, 학교 운동장에서 새벽까지 농구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둘 도 없는 친구사이였던 우리는 군입대와 취업준비 시절을 겪으며 자연스럽게 거리가 멀어졌다. 서로의 길이 너무 달랐다. 수험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던 나는 빠르게 취업을 선택했고, 친구는 보다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을 준비했다.


시간이 흘러 샌디에이고에서 재회한 우리는 샌디에이고의 주요 명소들을 함께 관광했다. 물론 메이저리그 경기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였다. 펫코 파크에서 열린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2014년 5월 3일 경기였는데, 원정팀 애리조나의 2:0 승리로 끝났다. 팽팽한 투수전으로 경기가 진행된 탓에 경기 종료까지 2시간 반도 채 걸리지 않은 깔끔한 경기였다.


미국인들에게 야구는 삶의 일부분이다. 옆자리에 앉은 지긋하게 나이 든 할머니는 경기 내내 야구는 보는 둥 마는 둥 열심히 책을 읽었다. 제드 저코의 팬인 듯 샌디에이고의 4번 타자로 나선 저코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만 저코의 이름을 연호할 뿐이었다. 승패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승패보다는 그저 앞에 놓인 맛있는 음식과 이따금씩 부딪히는 맥주잔, 야구장을 감싸는 포근하고 따뜻한 분위기 그것으로 충분했다. 약간은 어색하고 서먹서먹했던 우리의 관계는 그날 경기를 기점으로 조금은 회복됐다.


그 이후로 6년이라는 시간이 또 흘렀다. 친구는 글로벌 회계펌의 회계사가 되어 현재는 뉴욕에서 파견근무 중이다. 뉴욕의 시티필드나 양키 스타디움에서 친구와 또 다른 추억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쉽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샌디에이고 펫코 파크에서 만든 추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샌디에이고에서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준 친구에게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홈구장 펫코 파크. (C) clay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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