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짝수 자이언츠'의 성지 오라클 파크

오라클 파크 투어 (2014.10.11)

by clayton

우승은 하늘이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야구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를 막론하고 우승은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상대 팀보다 전력이 앞선다고 해서 무조건 우승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우승을 하기 위한 공식이 존재한다면 그 공식만 풀어내도 우승을 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메이저리그로 범위를 한정 지어보면, 뉴욕 양키스를 대단한 팀으로 여기는 것이 그런 이유에서다. 그 힘들다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역대 최다인 27번이나 했고, 1998년부터 2000년까지는 3년 연속하기도 했다.


2010년, 2012년 월드시리즈 우승 순간. 사진 = 자이언츠 공식 SNS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양키스와는 다른 의미로 최근 10년 동안 대단한 족적을 남겼다. 자이언츠는 2010년부터 5년 동안 세 차례 월드시리즈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것도 짝수해인 2010년, 2012년, 2014년에만 말이다. 짝수해만 되면 영험한 기운이라도 받은 듯 승승장구하는 자이언츠를 팬들은 '짝수 자이언츠'라고 부르며 경외시 했다.


샌프란시스코 오라클 파크(당시 AT&T 파크). (c) clayton


오라클 파크(당시 AT&T 파크)를 방문했던 때는 포스트시즌이 한창이던 2014년 10월이었다. 자이언츠는 디비전시리즈에서 만난 워싱턴 내셔널스를 3승 1패로 따돌리고 NLCS 진출을 확정 지은 상태였다. 직전 여행지였던 세인트루이스에서 다저스의 참담한 패배를 지켜봐야만 했던 다저스 팬의 1인으로서는 그저 부러울 수밖에 순간이었다.


우울한 기분도 잠시. 메이저리그 30개 구장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구장으로 손꼽히는 자이언츠의 홈구장을 마주하니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특히나 외야 너머 야구장과 맞닿아있는 해안가(윌리 맥코비의 이름을 딴 맥코비만)를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메이저리그 구장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절경이었다.


2010년, 2012년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 (c) clayton


다저스 팬의 부러움을 산건 사실 따로 있었다. 바로 구장한켠에 나란히 놓여있는 2010년, 2012년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였다. 야구장이야 오래되긴 했지만 다저스타디움도 전통 있고 아름다운 구장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 앞에서는 멘탈이 무너졌다. 정신승리도 불가한 순간이었다. 그저 부럽고 또 부러웠다.


내심 그 해 NLCS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이기길 바랬다. 많은 팬들이 그런 마음을 가진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꺾고 더 높은 스테이지로 향한 팀이 우승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면 그 팀에게 당한 패배가 조금은 덜 억울해진다. '어차피 우승할 팀에게 진건데'라는 마음에 조금은 위안을 얻는다. 게다가 자이언츠는 다저스와 숙명의 라이벌 아닌가. 자이언츠의 패배를 바라는 마음은 당연했다.


2014년 월드시리즈 우승 순간. 사진=자이언츠 공식 SNS


물론 그런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카디널스를 4승 1패로 가볍게 제압한 자이언츠는 월드시리즈에서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만나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또 한 번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감격을 맛봤다. 2010년, 2012년에 이어 짝수 자이언츠를 완성하는 순간이었다.


7차전 5회 말에 구원 등판해 끝까지 경기를 책임진 메디슨 범가너는 월드시리즈 역사에 남을만한 엄청난 투구를 시리즈 내내 펼치며 팀에 우승을 안겼고, 본인은 월드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당시 캔자스시티가 자랑했던 불펜 3대장도 가을 범가너의 미친 활약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다가오는 새 시즌에서는 다저스 팬도 자이언츠 팬처럼 감격적인 가을을 맞이할 수 있을까. 짝수 자이언츠를 감싸던 영험한 기운이 이제는 다저스로 향했으면 좋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