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저스 vs 시카고 컵스 (2013.08.28)
승패를 쉽게 예측할 수 없어 더 매력적인 스포츠가 야구다. 아무리 잘하는 팀도 긴 시즌을 치르다 보면 10번 중에 4번 꼴로 진다. 팀의 에이스도 9이닝 평균 3점은 내주고, 아무리 좋은 타자도 10번 중에 6번 이상은 실망감을 안은 채 더그아웃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공은 둥글다'라는 스포츠계 격언은 야구에도 분명 통용되는 말이다. 하지만 정규시즌의 커쇼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성기 커쇼는 의심할 여지없는 확실한 승리 보증수표였다. 포스트시즌만 가면 초라해지는 커쇼지만, 정규시즌 성적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최근 5년 중 가장 부진했다는 지난 2019시즌에도 커쇼는 16승 5패, 3.0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이름을 가리고 보면 웬만한 선수의 커리어 하이 시즌 성적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수치인데 그 성적이 커쇼에게는 커리어 로우 시즌이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다.
그만큼 커쇼의 정규시즌 성적은 화려하다. 통산 12시즌에서 169승을 거두는 동안 패전투수가 된 것은 74번에 불과하다. 승률로 따지면 7할에 가깝다. 사이영상을 수상했던 2011년과 2014년에는 21승을 거두며 8할이 넘는 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커쇼가 정규시즌 마운드에 오르면 경기에서 질 거라는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커쇼의 투구를 처음 직관한 날도 그랬다. 2013년 8월 28일(한국시간) 시카고 컵스와의 홈경기였는데, '오늘 경기는 무조건 이기겠지'라는 부푼 마음을 안고 다저스타디움으로 향했다. 커쇼에게 믿음을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커쇼의 8월 페이스가 정말 대단했다. 직전 3경기에서 모두 8이닝을 소화했고 3경기 동안 자책점은 단 1점에 불과했다. 시즌 평균자책점은 1.72까지 떨어뜨린 상황.
지나친 확신 때문이었을까. 커쇼는 1회 초부터 주자 2명을 내보내며 고전했다. 후속 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실점은 면했지만 투구수가 1회에만 30개에 육박했다. 2회는 잘 넘겼지만 3회 초에 곧바로 위기가 닥쳤다. 상대 투수 트래비스 우드에게 안타를 맞은 것이 화근이었다. 1사 이후 디오너 나바로에게 적시타를 허용하며 커쇼는 이날 경기 첫 실점을 기록했다.
순항하던 커쇼에게 6회 초,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6회 시작과 함께 안타와 볼넷을 허용하며 무사 1,2루에 몰린 것. 삼진으로 아웃카운트 2개를 잡아내며 실점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안도한 순간. 다음 타자 스탈린 카스트로의 타구가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뚫어내며 커쇼의 이날 경기 두 번째 실점으로 이어졌다.
투구수는 이미 108개에 달한 상황으로 투수 교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커쇼는 브라이언 윌슨에게 마운드를 넘기며 이날 경기 피칭을 마무리했다. 다저스는 커쇼가 마운드를 내려간 이후 두 점을 쫓아갔지만, 7회에 한 점을 더 보탠 컵스를 결국 따라잡지 못했다. 커쇼의 3연승이 끝남과 동시에 시즌 8패째를 기록한 순간이었다. 5.2이닝 2실점의 기록상 나쁘지 않은 투구였지만, 정규시즌 커쇼의 이름값에는 분명 미치지 못하는 투구였다.
무조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경기에서 맛본 패배의 쓴맛은 더욱 쓰고 강렬했다. 아마도 커쇼는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자신이 등판한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과 싸워야 했을 것이다. 그것이 에이스의 숙명이라고는 하나 어깨에 짊어졌을 부담감과 기대의 무게를 생각해보면 상상만 해도 잔혹하게 느껴진다.
나 역시도 나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높은 편이었고, 실수를 했을 때 실망과 자책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이를 내려놓게 됐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커쇼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았다. 커쇼는 이어진 9월 다섯 경기에서만 3승을 더 추가하며 결국 그해에 본인 통산 두 번째 사이영상을 거머쥐었다. 여러모로 커쇼는 참 대단한 투수이자 본받을 만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