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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yton Jan 08. 2020

#3. 미국에서 박찬호 사인받는 방법

필라델피아 필리스 vs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9.08.19)

평생 만나고 싶었던 우상 같은 존재를 직접 만나 사인을 받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발생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분명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정도의 쉬운 난이도는 아닐 것이다. 나의 노력 여하와 별개로 운과 같은 요소도 성공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만 '지성이면 감천한다'라는 말이 있듯 본인만의 비기를 가지고 노력한다면 성공률을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와 같은 극악무도한 난이도는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2009년 8월, 나에게도 그런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때는 박찬호가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활약했던 2009년이었다. 2008년 친정팀인 LA 다저스에서 화려하게 부활을 알린 박찬호는 같은 시즌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의 한을 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1년 계약을 맺게 된다.


시즌 초반 어렵게 꿰찬 5선발 자리를 그리 오래 유지하지는 못했지만, 경기 후반 주요 승부처에서 활약하며 불펜의 핵으로 자리를 잡아나가던 시점이었다.


필리스의 홈구장 시티즌스 뱅크 파크


Tip 1.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선 박찬호의 모습을 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다. 사실 사인을 받는 것은 부차적인 목적이었다. 하지만 미국까지 간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 싶었다. 그 후로 수차례 미국을 방문하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미국 여행은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기회라고 생각했다.


경기장마다 룰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기장에서는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의 훈련시간에 경기장을 팬들에게 개방한다. 당시 필리스의 홈이었던 시티즌스 뱅크 파크는 경기 시작 2시간 반 전부터 팬들에게 경기장을 개방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무조건 빨리 경기장에 도착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래야만 선수들과 만날 소중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 사인을 받을 기회도 당연히 많아진다. 설령 사인을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다음 경기를 기약해보는 등 PLAN B를 짤 수가 있다.


나의 경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3연전 기간(2009.08.19~2009.08.21) 내내 거의 1등으로 경기장에 도착하여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게이트가 열리기만을 기다렸고,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경기장으로 뛰어들어갔다.



Tip 2. 원정 경기를 노려라


약간은 전략적인 접근도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홈경기보다는 원정 경기가 오히려 기회가 많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첫 번째, 경기 전 훈련 패턴에 있다. 보통의 경우 홈팀 훈련-> 원정팀 훈련-> 본 경기 순으로 진행이 되는데, 앞서 언급했듯 경기장 개방시간은 경기장마다 차이가 있다. 따라서 일부 경기장에서는 홈팀의 훈련이 끝난 뒤에 입장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경기 전에 홈팀 선수들의 사인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일 수 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아무래도 홈경기의 경우 홈팬들의 수가 원정팬에 비해 절대적으로 많다. 사인으로 이야기를 국한하면 결국 사인을 받고자 하는 경쟁자가 많아진다는 뜻도 된다. 자신을 찾아온 모든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싶겠지만 시간이 부족하거나 여력이 없을 경우에는 일부 팬들에게는 본의와 다르게 사인을 못해주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원정경기에서는 이러한 어려움은 줄일 수 있다. 멀리 원정 경기까지 찾아온 팬을 발견한다면 선수 입장에서도 눈에 띌 것이고 반가울 것이다.


선발투수의 경우 등판하는 날에는 사인을 기대하기 어렵다. 당연한 것이 당일 등판을 위해 모든 본인의 루틴과 컨디션을 맞추기 때문이다. 등판 당일에는 팬서비스보다는 경기 준비 과정, 경기 결과에 촉각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결과로 평가받는 프로 선수이기에 이는 어쩌면 팬으로서 배려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Tip 3. 사인을 받을 공과 펜은 미리 준비하자


본인이 사인을 받을 공과 펜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가까이에서 만나는 것까지 성공했는데 사인을 받기 위한 준비물이 없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상황이 없을 것이다. 물론 경기장 안에 널린 것이 공이다. 연습 중에 쓰인 공은 경기 중에 활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공을 얻는 것도 방법이다. 펜은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빌릴 수도 있다. 다만 공과 펜을 미리 준비하는 철저함까지 갖춘다면 사인을 받을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비약적으로 올라갈 수 있다.



이 모든 Tip들이 의미가 없을 수 있는 것이 나는 원정경기가 아닌 홈경기에서 사인을 받았으며, 공과 펜을 미리 준비하지도 못했었다. 선수들이 연습 때 쓰던 공에 옆 사람에게 빌린 펜으로 사인을 받는 데 성공했다. 결국 운이라는 것도 무시 못 할 요인이며,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팬서비스에 대해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박찬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박찬호 선수에게 직접 건네받은 사인볼은 내 보물 1호로 간직하고 있다. 미국에서 그것도 메이저리그 공인구에 받은 사인볼이다. 사인을 받는 것은 성공했지만, 마운드에서 투구하는 박찬호의 모습을 직접 보겠다는 목표는 당시에는 달성하지 못했다. 당시 가벼운 팔꿈치 통증이 있었던 탓에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3연전에 박찬호는 등판하지 못했다.


그리고 2012년, 잠실구장에서 뒤늦게나마 마운드에서 투구하는 박찬호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당시 고향팀 한화 이글스에 입단해 활약했던 박찬호의 은퇴 시즌이었다.


우상과도 같은 선수를 직접 만나 눈앞에서 투구하는 모습을 보고 사인까지 받는 데 성공한 나는 '성공한 덕후'라고 할 수 있을까. 바라건대 한 가지 더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야구선수 은퇴 후에 '투머치토커'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박찬호를 직접 만나 그의 이야기를 실컷 들어보고 싶다. 귀에서 피가 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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