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상태를 통해 바라보는 도덕의 본질
자연 상태의 인간이란 사회를 형성하지 않은 인간을 뜻한다. 이때 자연 상태의 인간을 관찰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 탐구할 수 있게 해주는 주요한 철학적 장치이다. 현재의 인간을 보았을 때는 인간의 특성에 어떠한 것이 영향을 미쳐 지금의 상태가 되었는지 명확히 알 수 없기에 그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초기 상태, 즉 자연 상태를 상정하여 이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다른 변수들은 전부 없애고, 인간만을 남겨둔 채 이를 바라봄으로써 인간의 본질 자체에 대해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기에 도덕의 본질을 탐구할 때 역시 이러한 자연 상태의 인간을 상정하여야 한다. 도덕의 본질에 대한 주장을 크게 둘로 나누면 도덕이 인간 내에 실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일 것이며 이는 오랜 철학적 논쟁이다. 도덕이 인간 안에 내재하는 것인지, 밖에서 부여하는 것인지, 실체로써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추상적 개념에 불과한 것인지 등 여러 주장과 논쟁이 역사적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므로 도덕의 본질에 대해서 보고자 할 때 역시, 특히 도덕이 인간 안에 내재하는지 아닌지를 탐구하고자 할 때 자연 상태의 인간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 어떠한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인간에게도 도덕이 존재할지를 보면 도덕의 본질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약 도덕이 존재한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도덕은 어디서 나오게 된 것인지에 대한 후속 논의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탐구할 때는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자연 상태는 어디까지나 철학적 상상이며 사고 실험이지만 이를 마치 실체가 있는 것과 같이 다룰 위험이 있다. 이는 경험적인 영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에 직관적 상상을 가미함으로써 우리가 알 수 없는 명제를 전제로 하여 철학을 하게 할 위험을 낳는다. 그렇기에 우리가 증명할 수 없는 전제들(예컨대 인간 내에 도덕이 내재하여 있다든지 사회가 형성되기 전 인간은 본래 선하다든지 등)을 시작으로 사유함으로써 오류를 피하지 못한 철학들이 여럿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하여 자연 상태의 인간만을 들여다보는 것은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전제를 도출할 위험이 있다. 이는 우리가 아무리 그러한 인간을 통해 무언가를 알고자 하더라도 이는 상상에 불과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그 상상이 진실일지 아닐지를 판단하는 것은 우리의 이성이 할 수 있는 영역 밖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덕의 본질을 탐구하여 자연 상태를 상정하되 위와 같은 위험성을 최대한 유의하여 사고해야 한다. 이에 필자는 자연 상태를 바라볼 때 자연 상태의 인간 본성이 어떨지를 상상하는 것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통하여 자연 상태의 인간을 추론하기를 요구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알 수 없는 사실을 명확히 구분하여 알 수 있는 사실의 범위를 넓혀가야 한다. 이를 통해 자연 상태만을 보면 순수하게 추상적이므로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없으나 이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경험적 사실과 종합하여 탐구하면 알 수 있는 인간의 자연 상태적 속성이 있으리라 본다.
먼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으며 직관적으로 전부 동의할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1. 인간은 사회를 이루었다.
2. 인간은 사회성을 가지고 있다.
위 두 명제는 너무나 자명하여 반론의 여지가 없으리라 본다. 그리고 아래는 이보다는 다소 논쟁이 될 가능성이 있는 명제이다.
3.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은 행동에 제약이 없으며 다만 자신 행위에 대한 모든 결과를 자신이 감수해야 한다.
그렇기에 제3 명제의 사용은 더욱 조심스럽다. 보다 풀어서 사용해 보자면, 사회에서는 법과 제도와 같은 명령이 작용하지만 자연 상태에서는 적어도 사회 상태일 때보다는 그 제약이 훨씬 미미할 것임은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이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논하는 것이 아닌 인간이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이를 막을 수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인간은 자신의 삶에 미쳐오는 모든 위험을 자기 스스로가 감수해야 하므로 사회 상태에 비해 극히 취약할 것 역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러한 세 번째 명제의 자세하고 구체적인 의미는 필자가 사용하는 것을 볼 때 그 맥락에서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 명제의 요소 역시 충분히 모두에게 납득이 되도록 사용될 것이다.
먼저 제1 명제를 본다. 인간은 사회를 이루었다. 말 그대로 참이다. 그리고 필자는 이 명제로부터 또 다른 명제 하나를 도출해 내겠다.
1-1. 규칙은 사회 형성의 조건이다.
규칙이 없는 사회를 상상해 보라. 그것이 사회인가? 규칙이 없다는 말은 인간 행동의 범위를 정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그러한 상태에서 제3 명제에서와 같이 각 인간은 행동반경의 기준으로 볼 때 무한정으로 자유롭다고 볼 수 있을 것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타인의 자유와 충돌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에 간섭할 자유를 포함할 것이므로 간섭할 자유와 간섭받지 않을 자유가 구조적으로 충돌하는 상태이다. 이는 불가피한 것이므로 규칙이 없는 사회는 존재할 수 없으며 즉 사회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규칙이 있어야 한다. 국가의 형성 조건이 주권, 영토, 국민이고 이것 중 하나라도 없으면 국가가 형성할 수 없듯,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각 개인의 자유의 권리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형성될 수 없다. 그러므로 규칙은 사회 형성의 조건이다.
또한 제2 명제를 보겠다. 인간은 사회를 형성하고자 하는 욕망이 내재하여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이 생존하기 위함일 것이다. 사회가 형성되지 않은 인간이 위험에 취약하리라는 것 역시 누구나 인정할 만하다. 그렇기에 인간은 자신의 가능한 행동반경을 좁히는 것에 동의하여 그만큼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습성이 현실로 실현된 것이 사회성인 것이다. 즉 사회성은 인간 생존의 수단이다. 혼자 사는 것보다 같이 사는 것이 위험에 더 강하며 행동의 결과를 오롯이 받아내는 것보다 사회가 다 같이 감내하는 것이 부담 역시 줄인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보존의 욕구가 현실적으로 실현된 사회성을 지니며 이를 통해 사회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이것에 도덕성이라는 말은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닌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지만 도덕성을 자연 상태에서 지니고 있는 것인지는 그 자체로는 증명할 수 없다. 이러한 상태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인간이 사회성을 가지고 사회를 형성하기를 원하며 이를 이루었고 이에 따른 조건으로 규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사회성이라는 습성을 통해 사회를 형성하기를 원하고 실현하고자 할 때 규칙이 사용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사회를 형성할 때의 모순을 막기 위하여 규칙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 그 모순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할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질 것이므로 규칙 역시 이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처음 규칙이 사회에 적용된 의미를 잃고 독단적이게 된다. 추가적으로 도덕의 실체에 대한 논의는 인간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는 문제이므로 과하게 형이상학적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명제는 다음과 같다.
1-2. 사회에서 규칙의 내용은 사회 상태에 의해 정의된다.
즉 인간은 사회를 형성하고자 할 때 필연적이고 불가피하게 규칙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이때 규칙은 사회 유지의 수단으로써 사용되므로 사회, 특히 사회 상태에 영향을 받아 그 사회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영속시킬 수 있는 것으로 정의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태에서 사회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인간들이 그 구성원일 것이므로 그들은 규칙을 따라야만 하며 이때 규칙은 당위성을 갖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때 사회 형성의 의지에서 파생된 규칙에서 도덕을 당위적인 것으로 정의할 또다른 규칙이 파생된다. 즉 규칙 그 자체가 도덕의 근본이 될 자격을 가진다. 만일 이 규칙을 제외한 다른 가치관이나 감정, 그리고 의지 자체에 도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면 도덕적 상대주의로 인해 사회적인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이로써 사회에서 도덕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는 알 수 있다. 다만 이때 도덕은 규칙들 중 사회에서 도덕으로 정의할만한 것으로 판단된 것들로 한정된다. 이 역시 사회 형성의 의지로부터 파생된 규칙인데, 사소한 모든 규칙을 전부 도덕으로 정의하는 것 역시 혼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전히 사회 이전에 도덕이 존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전부터 존재하던 도덕이 사회에 적용되며 종속되는 것으로 바뀐 것인지, 혹은 진짜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지 여전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덕에 실체가 존재하는지는 증명 불가능하므로 이를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의미 없다. 인간에 도덕성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도덕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할 것인데, 아직 이것이 규명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른 것에서 도덕과 그것이 나오는 도덕성이 존재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보았을 때 자연 상태의 인간이라도 타인과의 상호 관계나 감정적 특징으로부터 원시적 도덕성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 상태의 도덕과 사회의 도덕을 나눌 생각이 아니라면, 그러니까 도덕을 전부 한 범주로 생각할 것이라면 여기서는 서로 상충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즉 사회 형성의 의지를 가진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단순히 인간적 특징을 도덕성으로 삼고 이로부터 도덕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도덕의 당위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며 상대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다. 이것은 앞서 자연 상태의 도덕성을 배제하고 내린 결과와 상충하는 것이며, 자연 상태에 도덕이 존재한다면 이것에도 마땅히 해야 한다는 명령 형식이 존재할 필요가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때 인간에게 행동을 강제하는,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의지이다. 사회 형성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때 인간은 사회 형성의 필수 조건인 도덕을 따라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사회성은 자기 보존의 욕구가 나타난 한 면이라고 보았다. 즉 사회성이라는 욕구에서 사회 형성의 의지가 나오고 여기서 도덕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자연 상태의 자기 보존의 욕구에서도 이를 실현할 의지가 나오고 여기서 도덕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볼 수 있다.
보편 윤리와 도덕 자체의 당위성을 배제하고 생각하고 있는 지금, 도덕의 당위성을 설명하려면 그것이 없어서는 안돼 반드시 전제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우리가 볼 수 있는 상태인 사회의 도덕은 사회 형성의 의지로부터 불가피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이제 이것을 우리가 볼 수 없는 상태인 자연 상태에도 적용시켜보고자 한다. 자연 상태의 인간 역시 여러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이 욕구를 이성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다. 그러나 이 의지를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해야 하는 조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자기 보존의 욕구를 가진 인간이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다면 자살하지 말라는 명제는 그 인간에게 매우 유효한 것이다. 또는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지 말라는 것으로부터 가장 기초적인 도덕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의지는 단순히 그것을 바라는 욕구와는 구분되어 실현하고자 하는 행동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따라야 할 규칙이 생긴다. 이에 다음의 결과를 떠올릴 수 있다.
2-1. 의지로부터 규칙이 나온다.
2-2. 사회에서 도덕은 사회 형성 의지 실현의 규칙으로써 당위성을 가진다.
인간에게는 어떠한 것을 바라는 욕구가 있는 것일 뿐 그것에 이미 도덕이 존재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도덕이 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써 사용된다는 것일 뿐, 그 이전에 이미 내재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가 발현한다는 것은 인간의 욕망을 이성으로 실현하고자 한다는 것이고, 이것은 인간 본질 자체에 있는 것이라 볼 수 없다. 다만 그것이 매우 가깝게 연관되어 사실상 하나와 같이 보이는 것일 뿐이다. 인간에게는 욕망과 이성이 있을 뿐 처음부터 의지를 내재하여 태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도덕 그 자체에 목적을 두는 도덕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 의지의 실현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그것이 사용된다는 점에서 역시 도덕성이 내재하여 있다고 보기 어렵다. 도덕성이 이미 인간 본질에 존재한다면 그것이 욕망이 되어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는 도덕 자체가 목적이겠으나 우리가 본 바에 따르면 도덕 자체에 목적이나 가치, 당위성같은 속성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으며 도덕은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또한 욕망이라는 것은 습성이지 법칙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사회를 형성해야 하는 것이 아닌 형성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사회 형성에는 당위가 없으며 그 조건으로써의 도덕 역시 당위를 가지지 못한다. 만약 사회가 당위성을 가진다면 애초에 자연 상태의 인간을 상정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사회가 당위성을 가진다는 전제하에 자연 상태의 인간은 존재가 불가능하며 언제나 인간은 사회 상태에 있을 것임을 의미하고, 사회 상태의 인간 안에는 도덕성이 존재할 것이므로 인간 내에 도덕성이 본질적으로 존재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습성대로 살지 않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인간이 사회성을 가진다는 것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욕망과 의지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도덕 자체의 당위성은 나타날 수 없다.
다만 이와 같은 논의는 우리의 관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적어도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우리는 도덕의 정의를 의지의 필수 조건으로 한정해야할 의무가 있다. 이 정의 자체가 우리의 의지로부터 파생된 행동 규칙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연 상태의 인간 역시 의지를 가질 때 도덕이 형성될 수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 상태를 완전히 사변적으로 환기하여 본다면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무엇이 도덕인가를 정의할 메타 기준이 없기 때문에 완전히 객관적인 관점으로 자연 상태의 인간을 들여다본다면 여전히 무엇이 도덕인지는 알 수 없다. 이는 당위적인 도덕 역시 마찬가지이므로 이때 인간은 욕망이나 의지 그 자체를 도덕으로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어떠한 현상을 도덕이라고 정의할 필연적인 이유가 없기 때문에 이때 어떠한 것을 도덕이라고 정의하더라도 이는 진리가 되지 못한다. 이는 수박을 수박이 아닌 몽미라고 부르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사회 안에서는 언어의 사회성과 합의된 약속으로 인해 수박을 수박이라고 불러야할 필요가 있지만 그러한 조건이 없다면 그러한 명명은 상관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의지와 조건이라는 현상이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현상을 들여다봄으로써 이를 구성하는 원리를 찾아낸 것이며 다만 우리의 관점에서 이 원리를 이용해 도덕을 어떻게 정의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을 뿐 원리와 원리가 나타나는 현상이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특정 내용이 아닌 행동 양식이므로 사회의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이 현상을 자연 상태의 인간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떠한 개념을 정의할 때 현상을 관찰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이 현재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행동 양식으로써 의지와 조건 관계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 중 조건에 도덕이라는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우리의 의지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에서 선택적이며 이를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의무적이다. 즉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이 조건에 도덕의 의미를 부여하는 의지를 가진 것이다. 그러나 자연 상태에서는 이 의지 이외에 수많은 의지가 나타날 수 있으나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도덕적인가를 알 수 있는 상위 개념은 신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관점에서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아는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그렇기에 정리하자면 자연 상태의 인간에게 도덕성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사회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사회를 형성하였다는 것을 통해 도덕은 당위성을 띄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이 당위성은 의지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관찰하였고, 그러므로 자연 상태의 인간 역시 의지를 가질 때 도덕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것이 인간 행동의 기본 양식으로 드러난 의지와 조건에 따른 우리가 가져야할 결론이다.
물론 도덕의 존재 이유를 의지의 불가피한 필수 조건으로 한정한 것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또 결론적으로는 도덕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 안에 도덕이 존재하는지 명쾌한 답이 아닐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이와 같이 정의한 까닭은 자연 상태에서 인간에게 도덕성이 존재하는지는 인간 이성만으로는 증명할 수가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연 상태의 인간에 도덕성이 내재하여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사회 상태의 인간에게 도덕성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이러한 명백한 사실로부터 시작하여 자연 상태의 인간을 추론해 낼 때 그것만으로는 비록 순수 이성으로는 알 수 없더라도 이미 나타난 사실과 결과를 통해 그 속성을 이끌어낼 수는 있다. 자연 상태의 인간에 어떠한 속성이 원인으로써 존재하여 그것이 도덕이 내재하는 것이든 아니든 현재 사회 인간의 결과로 이어진 것임은 자명하다. 이때 원인만 보았을 때는 알 수 없지만 결과를 봄으로써 원인이 존재할 것임을 확신하고, 원인을 추론해 나가는 것은 가능하다. 이때 도덕이라는 기표가 가져야할 필연적인 기의를 규정할 수 없었기에 절대적인 결론을 내지는 못하였으나 자연 상태의 인간 역시 어떻게 행동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 원리가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즉 이러한 형이상학적 문제를 다룰 때는 우리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항상 유념하여야 한다.
아래는 이 글을 전제로 하여 도덕에 대해 탐구해 본 글입니다. 본 글에서 다소 설명이 부족했던 부분이 있다면 아래 글을 통해 이 부분을 보충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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