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사상에 대한 표현의 자유

자유와 혼란의 중용

by CLY

종북, 파시즘과 같은 사상은 더 이상 사회에서 논의될 가치조차 없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이 또다시 준동할 가능성이 있으며, 또 다른 형태의 극단적인 사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이를 극단적인 사상이라 함은 우리 체제에서 당연시되는 민주주의, 자유와 같은 가치를 억압하는 특성 때문이며,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우리 체제를 억압할 사상에 대한 주장을 우리 사회가 허용해야 하는가가 문제다.

이에 우리는 사회를 이루는 도덕과 가치의 궁극적인 의미를 따져 물어야 한다. 이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극단적인 사상이 우리에게 왜 해가 된다고 하는지조차 답할 수 없다. 단순히 종북은 나쁘다, 자유는 좋다와 같은 현재 우리에게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고는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정확히 도덕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그 후에 극단적인 사상이 우리 사회에 문제가 되는지, 표현의 자유가 무엇이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인지, 필요하다면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 등의 현실 영역에서의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구성주의적 도덕론


도덕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겠으나, 필자는 도덕이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안정적인 영속에 필수적이며,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과 감정의 영역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도덕은 자연 상태에서는 관찰되지 않는다. 물론 도덕처럼 보이는 여러 동물의 행동이 보이지만, 이는 진화적 본능 또는 동물에게도 있는 감정의 영역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인간은 도덕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고, 이는 사회의 형성과 함께 나타났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단순히 동족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기초적인 도덕에서 현재에 이르는 광범위한 도덕론이 정립되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사회가 도덕에 선행하며,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도덕은 충분히 변화할 수 있고, 이 점에서 구성주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인류사 전체를 관통하는 절대적인 도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뿐, 도덕적 상대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도덕이 미래에 변화할 수 있을지언정, 현재 도덕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실 영역으로 들어왔을 때, 현재 21세기 대한민국에 알맞은 가치라 함은 당연히 자유, 민주주의, 법치주의와 같은 현재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체제이다. 종북, 파시즘이 우리 사회에서 현재 부정되는 이유는 이 체제들이 우리 사회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안정적으로 영속시킬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상들은 역사적으로 실패하였고, 어느 정도 미래가 온다고 하더라도 자유, 민주주의와 같은 가치가 부정될 정도로 사회가 변화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기 때문에, 다른 극단적인 사상의 준동 역시 부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문제는 이렇게 문제가 많은 사상을 주장할 자유마저 주어야 하는가이다. 현재 우리에게 자유가 우리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기둥임은 자명하지만, 이를 현실적으로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가 논란이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가치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논의하였다. 이 가치들이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고 영속시킬 수 있는지 따져보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 특히 표현의 자유를 바라보면 된다.


표현의 자유의 필요성


표현의 자유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를 막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정체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논리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아무리 인간 하나가 천재라고 할지라도, 그가 완벽하게 옳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토론함으로써 주장을 보다 설득력 있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다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억압당하는 주장이 옳은 것이라면 이를 막는 것은 직관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억압당하는 주장이 진실로 옳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장을 막아서는 안 된다. 국가나 정부는 이를 충분히 검토하고 이 주장들을 억압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이는 사회에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틀린 주장을 국민이 직접 살펴봄으로써 이에 반박하고, 또한 옳은 주장은 왜 옳은 주장인지 스스로 사유함으로써 국민들은 스스로를 판단 주체로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판단을 국가와 정부에 이양시켜 버린 국민들의 수준은 그렇지 않은 국민들보다 낮을 것이 분명하다. 국민들은 옳은 주장이 왜 옳은지조차 생각할 수 없게 될 것이며, 이는 옳은 주장이 쉽게 왜곡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도 표현의 자유는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애초에 적어도 도덕 영역에서 완벽하게 옳은 주장과, 완벽하게 틀린 주장이 가능한지조차 불분명하다. 그렇다면 아무리 틀려 보이는 주장이라도, 그곳에서 취할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취하여 옳게 보이는 주장을 더 견고하게 하는 것이 사회에 이로울 것이다.


극단적인 사상의 표현의 자유도 필요할까?


이제 우리는 종북/파시즘과 같은 극단적인 사상에 대한 표현의 자유가 용인될 수 있는지 논의할 수 있다. 종북과 파시즘은 적어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틀린 주장으로 여겨지며, 다른 극단적인 사상 역시 필요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이런 의미에서 이러한 사상이 우리 사회를 이루는 체제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것이 그것들에 대한 주장 자체를 전면 차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떠한 주장을 완벽하게 억압할 수 있다는 생각은 남용되기 쉬워 위험할 뿐만 아니라,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옳지도 않다. 다만, 제한 없이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미 역시 아니다.

만약 누군가가 어떤 사람을 비난하는 글을 신문에 기고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그 사람의 표현의 자유로 용인되어야 한다. 그러나 성난 군중이 어떤 사람의 집에 모여있는데 기고한 글과 같은 논지를 군중에게 외치는 것은 규제되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이는 해악을 끼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극단적인 사상의 주장 자체를 원천 차단하는 것은 옳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이를 통해 국민을 적극적으로 선동하여 반체제적 운동을 확산시킬 우려가 크다면 규제되어야 마땅하다.


결론


정리하자면, 도덕은 사회를 발전시키고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이런 의미에서 표현의 자유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극단적인 사상을 주장하는 것 역시 표현의 자유로 용인되어야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를 발전시키고 유지하는 것이므로, 자유만을 주장하여 무조건 용인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그러므로 표현의 자유는 사회가 감시하며 보장해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도덕은 인간에 내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