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정책을 '갈리치기'로 규정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글
선거철이라서 평소에 정치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사람들과도 자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어제 동생과의 대화에서 사람들이 어떤 후보에게 표를 던지게 되는 과정을 살펴볼 기회를 얻었다. 이 에피소드를 공유하며 몇 가지 이야기를 좀 풀어볼까 한다.
어제 동생이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나와 맞는 후보' 테스트를 가족단톡방에 올렸다. 그는 여성정책에 관한 질문을 캡쳐하고 공유했고, 김문수의 공약이 가장 잘 맞는 공약이라고 결과를 받았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테스트'가 대단히 '잘못된 조사질문'이라고 말했고, 그 개발자가 정책과 후보에 대해서 그 어떤 식견도 없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면서 테스트 결과를 믿지 말라고했다. 그랬더니 그는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궁금해했고, 나는 그 이유를 아래와 같이 구구절절 적어서 그에게 공유했다. 동생에게 보낸 글은 구어체로 썼던 것이고, 이를 다시 문어체로 옮기는 과정에서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를 감안해서 봐주면 감사하겠다.
동생은 테스트의 '여성정책'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 2번 응답을 골랐던 것 같다. 그러나 평소 나눈 대화를 상기해볼 때, 동생은 캡처된 질문에 대해서 1번과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1번 응답에 자신의 입장을 가깝게 놓는 사람들을 쉽게 본다. 페이스북에서 한 때 자기아들을 구원해왔다는 어머니의 게시글이 돌며 조롱당한 것을 봤는데, 글쓴이의 비대한 자의식이 불쾌하기는 하지만 그 글에는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 있다고 느꼈다. 어떤 사회 문제에 대해서 나와는 다른 프레임으로 보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그들의 믿음의 근거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는 지점들이 관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대화할 때 그 지점들을 논점으로 다루어야 효율적인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이 내가 동생과의 에피소드, 반론을 SNS에 공개하는 이유이다.
[동생에게 보낸 답]
우선 그 질문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질문이다. '여성을 위한 정책 중 어떤 것이 더 현실적인가?'라는 질문에 제시된 선택지들은 서로 질적으로 상이한 내용, 차원들을 포함하고 있다.
1번 선택지는 '여성을 위한 사회적 분배가 필요한가'에 대한 가치판단을 요구하고 있고,
2번 답변은 인구재생산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제시한 것이다.(이것은 '여성정책'일 수 있으나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님.)
3번 선택지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이 질문은 '여성을 위한 정책'이 무엇인지, 또 그것을 어떤 층위에서 논의할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 없이 다양한 수준의 항목들을 나열하고만 있다. 그럼에도 응답자에게 답변을 고르라고 하기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구성된 사회조사 질문지와 그로부터 얻은데이터는 연구 윤리와 조사방법론의 기초를 위배하고 있기 때문에 신뢰할 수가 없다.
아마도 여성정책을 '젠더전쟁'으로 보는 사람들은 1번 선택지를 고를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나는 1번에 대해서만 이야기 구체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1번 선택지는 '여성만 챙기는 정책보다 전반적인 시스템을 바꾸는 게 맞아'라는 것인데, 이 문장은 두 가지의 중의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1) 여성만 챙기는 정책은 정당하지 않다. 남성을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2) 여성만 챙기는 정책은 지금의 노동시장 상황을 개선하기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근본적인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첫 번째 해석은 여성정책이라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이고, 여성정책은 필연적으로 역차별로 이어지기 때문에 공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논리를 가진 주장이다. 이는 보통 여성정책을 때려서 2030 남성 유권자를 포섭하고자 하는 정치인들(a.k.a이준석)의 프레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두 번째 해석은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에 주목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려는 입장에 가깝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이 지지되려면 '여성만 챙기는 정책'이 왜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하지 않는지, '전반적인 시스템'이 왜 문제가 되는지에 규정과 근거가 필요하다. 이렇게 하지 않을 경우 이 주장은 보통 헛된 주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두 해석은 서로 다르지만, 여성정책을 '여성만 챙기는 정책'이라고 규정한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가진다.
그런데 과연 '여성만 챙기는 정책'이란 무엇인가? 젠더 정책에 대해서 매번 '갈라치기'라고 평가하는 자들이 이야기하는 '여성만 챙기는 정책'이란 사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을 가리키고 있다. 이러한 규정을 바탕으로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에 세금이라는 사회적 자원을 써야하는가라는 식으로 비판하면서 매번 여성정책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정책의 본질을 왜곡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럼 실제로 여성정책이란 어떤 것인가? 여성정책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멀리 갈 것도 없이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정책'(3번 선택지)을 예로 삼아보자. 이름에 '여성'이 들어가기 때문에 여성만 이익을 보는 정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으며 사회 전체적으로 이익을 줄 수 있다.
'경력단절 여성'이란, 청년기에 취업했다가 결혼과 육아를 이유로 노동시장에서 퇴장하고, 양육이 끝이 난 후 다시 취업을 통해 노동시장에 재진입하는 여성들을 가리킨다. 문제는 청년기에 취업할 때 훌륭한 역량을 바탕으로 좋은 일자리에 진입하였다 할지라도 이후 재진입할 때에는 대체로 질낮은 일자리에 진입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재취업하는 여성에게만 손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전체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 고용주와 조직에게도 손해를 주며, 남성생계부양자의 책임을 덜어내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직과 고용주의 입장에서 한 번 보자. 고용주는 일 할 사람을 잘 뽑아서 직업훈련을 시키고 숙련된 노동력을 오랫동안 쓰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향을 가진 고용주의 입장에서 볼 때, 여성은 숙련에 투자할 유인이 크지 않다.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규채용에서 같은 대학을 나왔더라도 지원자가 여성이라면, 이러한 판단을 근거로 채용과정에서 불이익을 볼 수 있다. 채용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채용되더라도 숙련훈련을 요구하는 직무에 배정되지 않을 수 있다. 사회과학에서는 이를 가르켜 '고용주의 선호문제'로 규정하고 이것이 실제 젠더불평등에 미치는 효과를 탐구해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고용주들은 좋은 숙련된 여성인재가 없다고 불평한다. 이런 상황과 결과는 대단히 비효율적이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정말로 여성이 '리스크가 큰 자원'이라면 리스크를 만드는 사회적 조건을 해결하면 된다는 입장이 경력단절 여성 대상 정책의 동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자. '여성정책'은 '여성만 챙기는 정책'인가?
'여성만 챙기는'이라는 말이 '여성에게만 이익을 주는'을 의미한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니다'이다. 경력단절 여성 정책은 여성취업자 개인에게만 이익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고용주, 나아가 사회전체에 이익을 줄 수 있는 정책이다.
나아가 취업한 여성들이 결혼, 출산, 육아를 이유로 노동시장에서 나가야 하는 이유가 사라진다면, 그러한 여성들과 함께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는, 혹은 살아갈 '남성'들의 입장에서도 가족의 생계부양자로서의 책임을 아내와 나눠 질 수 있기 때문에 '이익'이 될 수 있고, 가족 단위의 삶의 질 역시 향상될 수 있다. (그러나 생계부양자로서의 책임 분담이 가사노동의 공평한 분담으로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여성정책을 '여성만 챙기는 정책'으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