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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객관성'은 어디에 있는가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막힘 없이 읽기에는 쉽지 않은 문체였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천천히 반복해서 읽어봐야 하는 문장과 작품 속 현실을 떠나 추상적인 이야기로 넘어가는 통로들이 가끔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연출과 장치들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이틀에 걸쳐 읽었고, 한 번의 중단이 필요했다.


    이 소설의 소재는 물론 작가의 의도도 다를 테지만, 유사한 갈등과 구도를 그린 황석영의 『손님』을  연상하게끔 했다. 지금 『손님』과의 비교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손님』을 완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두 작품이 닮은 점이 있기에, 그리고 진실의 위치를 개인의 바깥이 아니라 개인 안에 두고자 하기에 닮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바로 주인공의 설정값이다. 주인공은 꽤 낭만적인 인물이라서 하이네의 시를 외우고, 인간의 선함을 믿기에 연인의 죽음과 복수의 대상이 보여주는 부성애를 견디지 못하며, 사색적이라서 혁명의 구호를 내면화하지 못하고, 기독교적인 윤리를 내면화한 인물이라서 결국 복수에 성공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또, 무엇보다도 그는 텅 빈 자아를 지녔다. 앞서 서술한 그의 특징들이 겉보기에 '텅 빈 자아'와 상충하는 듯 보이지만, 그의 '텅 빈 자아'는 의심할 여지 없이 사실이다. 그가 자신의 텅 빈 자아를 의식하게 되는 것은 만철 직원으로 간도에 오게 되면서부터다. 나카지마의 인상평 혹은 충고는 주인공이 자신의 공허한 상태를 의식하게 되는 시작점이었고, 그의 '텅 빈' 상태는 그가 이 소설 속에서 거듭하여 변모하게 되는 가능성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아 찾기의 여정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전시되는 그의 모습은 사실, 주인공이 독자들에게 '있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를 함께 발견해나가는 과정이었다.


   내가 이 주인공을 좋아하는 또다른 이유는 그의 상태가 당대 간도 조선인들의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누구도 아니고, 동시에 그 무엇도 될 수 있었다. 이때, '될 수 있었다'는 술어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다. 그들을 규정하는 객관적인 진술이 의미가 없다는 말이며, 그들은 중국 민족주의적 공산당과 일본 제국주의 틈바구니에서 그 무엇으로도 규정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는 것이다. 자신을 표현하거나 규정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고, 그들 사회 내에서 그러한 믿음이 존재했다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것은 작가가 비관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이기에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톨스토이로 대변되는 선민의식과 복수의 힘을 의심하는 기독교적 사랑을 옹호하고 믿는 사람이다. 주인공의 낭만적이고, 감성적이며, 사색적인 인성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간도 조선인들의 상태, 말할 능력도, 자신을 규정할 수 있는 능력도 없는 상태, 동시에 그 무엇으로도 규정될 수 있었던 상황은 1930년대 간도의 복잡한 상황을 더 잘 보여주기 위함이다. 민족, 계급, 자유 지상낙원, 자치 등 바깥의 말들이 복잡하고 치열한 간도에 들어와 규정의 폭력을 실행하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유격구 조선인들 사이의 동족상잔의 비극은 단순히 '이념대립의 비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분명히 해야겠다.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이 소설에 대한 오독이다. 작가는 민족, 계급, 젠더를 망라하여 나타나는 격정적인 변화의 시대에 단순하고 추상적인 개념들이 복잡한 현실을 폭력적으로 규정하는 상황에서, 그 속에 놓인 개인들이 무엇을 경험하는지, 그들에게 어떤 세계가 쓰였으며, 쓰이는지, 또 그들이 그 서사를 어떻게 이끌어가는지 보여주고자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이 소설에서 진실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 속에 자리하고 있다. 객관적인 것은 없고 오로지 주관만이 있다는, 변화무쌍하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유격구의 상황에 관한 주인공의 평가가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과연 객관성이 무엇인지, 그것은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따위를 질문하는 사회과학자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그런 소설이다. '강한 객관성'이라는 말도 떠오른다. 이 책을 추천해준 어느 경제학자에게 덕분에 잘 읽었다는 말도 남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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