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호출하다, 그리움이 호출하다
그리운 존재들은 차마 잊히지 않습니다. 우리 곁으로 다시 불러내고 싶은 아주 사소한 기억들. 그들을 수배합니다.
사라져버렸습니다. 소리, 소리들이. 익숙했던 청각의 기억이 어느 순간, 실종된 겁니다. 이제 듣기 힘들어진 귀에 선한 그 소리들…
‘탈.탈.탈,탈’가속이 붙은 어머니의 미싱 재봉틀 박자, 보름 장이 설 때마다 제일 재밌던 "귀 막아요~! 뻥이요", "옥수수, 현미, 햅쌀 가져오세요. 뻥뻥 뻥 튀겨드립니다~~",“구두 닦아~”,“신문 사세요. 석간 호외요”.‘칼 갈아요~’하며 신기료상이 틀어대던 이 박사 뽕짝 말입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얼음! 땡!’구슬·딱지치기, 술래잡기, 고무줄놀이로 놀이터를 점령한 동네 아이들의 왁자지껄이 종일 들려왔고, 울림의 파장에는‘철수야, 영희야~’기어이 어머니가 아이를 불러들이는 외침들이 이어졌습니다. 내일이면 다시 그 자리에 모일 거면서도, 참 살뜰하게들 인사했었지요.
그리고 어스름 깔릴 즈음엔 어김없이 두부장수 트럭의 두부종소리가 들려오곤 했습니다. 이어지는‘아- 아-. 아파트단지 내 주민 여러분. 702동 김철수 어린이가 아직 귀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철수 어린이와 있는 주민은 귀가를 도와주세요. 오늘 저녁 반상회는 몇 호입니다. 한 집도 빠짐없이 반상회 모이세요’관리실 방송.
‘눈 내린 겨울밤.‘찹쌀떡 사려~, 메밀묵~’그 구성진 올림은 또 얼마나 유혹적이고 애잔하게 정겨웠던가요?
우렁차거나 구수하거나 묘하게 중독되던 어조의 소리, 소리들…. 요사이엔 좀처럼 들어보기 어렵습니다.
그런 소리들을 배경음향으로 우리들은 어떤 습관에 열중해있곤 했습니다. 종이비행기들을 접어 날리고 흐르는 개울마다 종이배를 띄워보고 천 마리 종이학을 선물하던 젊은 날의 소박한 손놀이들 말이죠.
미술시간, 원색 색종이나, 공책으로 꼬깃꼬깃 종이비행기 접어보신 기억. 다들 유년의 추억 어느 갈피에 남아있으실 겁니다. 껌종이로는 기원들을 담아 학을 접고, 남자애들은 다 쓴 공책, 달력들로는 딱지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푹 빠져있던 모험동화의 주인공처럼 종이비행기엔 그리운 사연이나 소망, 암호 비스무리한 몇 줄을 적어 넣기도 했죠. 제가 조그마한 아이였을 때 언니들은 지구 반대편에 저와 비스름할 또 하나의 나인 '도플갱어'가 존재한다고 일러주곤 했었죠. 그러면 상상하기 좋아하는 어린 맘에 왠지 신비하기도 저릿하기도 한 동경에 빠져선 나의 분신 그 도플갱어의 존재나 훗날 만나게 될 운명적인 연인에게로 전해지길 꿈꾸면서 비행기 날리고, 종이배들을 띄웠던 것도 같아요. '높이 높이 날아주렴' 주문을 걸고 새가 날갯짓하듯 힘차게 내 존재의 흔적도 지구 반대편까지 닿아주기를…, 그런 멋진 장면을 상상하고 기대했던 것도 같습니다. 모처럼 갠 화창한 날, 무언가 허전하고 아쉬운 연말 건조한 겨울 하늘을 올려다봤는데요. 어느 아이가 실수로 놓쳐버렸는지 분홍빛 선연한 풍선이 저 높은 창공에 두둥실 떠가고 있었습니다. 그래, 고개를 꺾어 풍선의 비행을 한 참 바라보니까요. 뜬금없이 어린 시절 날려 보낸 종이비행기가 떠올랐네요. 어렸을 적 잃어버린 그 비행기를 하늘에서 만나고도 싶고요.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의 머리글자를 적어놓은 종이배를 띄어보는 심정으로, 연애편지 보내는 설렘으로, 통일편지 혹은 군인 오빠에게 위문편지를 쓰는 따뜻한 순정으로 당신의 가슴에 가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호출을 얘기하니까 생각나는 사소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며칠 전 동네 슈퍼마켓에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슈퍼 옆에 붙어있는 작은 구둣방으로 흘깃 고개가 향해졌습니다. 문득, 있는 듯 없는 듯 오래된 나무처럼 두 평 남짓한 그 비좁은 공간을 지키고 계실 구두 수선방 할아버지가 응당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수선 방엔 그 할아버지는 뵈시질 않고 처음 뵈는 젊은 아저씨가 앉아 계신 거예요. 슈퍼마켓 아주머니 말씀으로는 며칠 전부터 수선집의 새 주인이 오셨다고요. 마땅히 돌봐주는 가족 하나 없이 성한 한쪽 눈으로 수선 일로 생계를 이어 가시는 것으로 아는 애꾸눈 신기료 할아버지. 백발에 안대를 하신 연로한 할아버지는 제가 가져간 구두나 가방 수선물 이것저것을 신묘한 솜씨로 뚝딱 뚝. 몇 분 만에 새것으로 고쳐내어 주시곤 하셨죠. 글쎄 정말 그 신기료 할아버지께서 왜 그만 나오신다는 것인지, 세세한 곡절에 관해서는 알 길 없지만요. 행여나, 어딘가에서 구린내 풍기던 우리의 구두들을 그리워하고 계신 건 아닐까…. 싶은 오지랖 넓은 상념은 돌아서는 제 뒤통수를 잡곤 쉽사리 놓아주질 않더라고요.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그 한 치의 미래를 가늠하기 힘이 듭니다. 비록, 결곡히 맺어져 있던 아주 깊은 관계라 할 순 없다 하더라도 말이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많은 날 그 집 앞을 수없이 지나쳤는데도 그동안 왜 따뜻한 눈인사 자주 드리질 못했었나…. 살가운 인사말 쫌 더 자주 건네드릴 걸, 하는 뒤늦어 실없는 아쉬움도 일었네요.
그런 정겨운 인간애, 생명에 대한 따스한 예의. 그런데 그렇게 그 별들이 그 별빛들이, 별님에게 안부를 전하고 기도하는 착한 마음들이 시방까지 남아들 있는 건가요? 정중히 안부를 묻습니다.
우리 옛 어른들께서는 사람의 영혼은 모두 우주의 별들인 거라고, 고인들의 혼들도 모두 별들이 된다고들 하셨습니다. 유년의 누군가가 그리울 때, 순수를 되찾고 싶을 때 밤 하늘을 올려다보고 기도해왔습니다. 그렇게 가장 값싸면서도 가장 멀리 떠날 수 있는 여행, 우주여행도 다녀오곤 했었는데요. 그저 야심한 시간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요. 밤하늘 펼쳐진 별자리들의 운행을 맨눈으로 찾아 쫒던 그 시절과는 달리 육안으로는 몇 점 셀 수 없는 별들일지라도 유년 시절 우주와 접속을 시도하고 무한상상을 펼치던 감성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같습니다. 저리 여리게 몸을 떠는 귀한 행성들과 교신해보는 겨울밤엔 광막한 우주의 운치에 한껏 취해버릴 것만 같습니다. 세상 모든 그리운 것들, 미쁘고 안쓰러운 그 존재들을 기리는 기도는 달콤하고 뜨끈한 안주가 됩니다.
이렇게‘그리움’이란 단어는, 잊히지 않고 또 잊을 수 없다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청각으로, 종이 연으로, 별빛으로, 온기를 나누고픈 그대 자체가 우리들 각자에겐 하냥 그립고 귀한 존재들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 어떤 존재도 완벽하게 소멸하는 건 없다고 합니다. 우리 안의 그리운 존재들의 향기는 하늘 아래에 끝없이 돌고 돌고 있습니다. 그렇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에너지 파장에 만물의‘기운(起運)’으로 유유히 흐르며 가끔, 저희들을 기억 속에서 호출한다고, 그리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