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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사라지는 것들의 잔상

영화 <판소리 복서>

by 개인

나는 가끔 내가 살아내지 않은 시절을 그리워한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영화나 음악, 아빠와 엄마의 연애시절 편지, 지금은 바래버린 시골집의 벽지 색깔 같은 것들. 누군가 왜 그런 것들이 그리웠냐 물으면 나의 답은 언제나 같았다. 그 시절에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지. 그 시절 경험했다면 지금쯤 그 모든 것들을 지겹다고 말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갖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동경은 언제나 아름답기만 하다. 이루지 못한 꿈, 놓쳐버린 사랑, 그 밖에 어떤 것이라도.


영화 <판소리 복서>의 오프닝 시퀀스는 주인공 병구가 사방이 탁 트인 드넓은 바다에서 사랑하는 여자의 장구 장단에 맞춰 판소리 복싱을 연습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해당 장면 이후 이어지는 장면은 앞의 장면과 전혀 다르다. 사방이 꽉 막힌 좁은 단칸방에서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은 병구는 더벅머리를 한 채로 거울에 비친 자신을 응시한다. 그리고 병구의 어눌한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꿈을 꾼 것 같아요. 길고 이상한 꿈." 영화는 처음부터 구구절절 병구의 과거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오프닝 시퀀스에서 이어지는 두 신을 통해 병구의 과거와 현재를 요약하여 보여준다. 사방이 탁 트인 드넓은 바다와 사방이 꽉 막힌 좁은 단칸방. 공간의 대비만으로 그의 현재가 과거에 비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기정사실화된다. 바다에서 판소리 복싱을 하던 병구는 사랑하는 여자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판소리 복싱, 그 모든 것을 가졌다. 하지만 단칸방 침대에 걸터앉은 병구의 주변에는 사랑하는 여자도, 판소리 복싱도 없다. 그저 홀로 남은 자신만 거울에 비칠 뿐이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병구는 자신이 가지지 못했던 것들을 찾아 헤맨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에는 이미 기량이 많이 떨어져 버렸고 펀치드렁크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와중에도 판소리 복싱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다시 선수 면허를 발급받았을 때는 과거 판소리 복싱을 함께 했던 그리고 사랑했던 여자 지연을 찾아간다. 영화 속에서 온몸을 바쳐 노력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현실적으로 판소리 복싱이 링 위에서 상대를 공격하기에 적합하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영화는 픽션이라는 핑계를 대며 판소리 복서라는,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성공담을 그가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써내기를 자꾸만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희망찬 기대를 품으면서도 자꾸만 마음이 아리다. 결국 모든 것은 영화를 보는 나의 희망사항일 뿐 영화 속 병구의 이야기가 될 수 없음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에.


예상대로 병구의 노력은 희망찬 결말을 맞이하지 못한다. 링 위에서 판소리 복싱으로 상대를 쓰러뜨리지 못했고, 한때 함께 미래를 꿈꾸던 지연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병구가 지연의 죽음을 다시 경험할 때, 영화 <메멘토>가 떠오른다. 영화 <메멘토>는 죄책감이 인간을 얼마나 비겁하게 만드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물론 영화 <메멘토>의 레나드와 달리 병구는 지연을 죽이지 않았다. 지연의 죽음을 잊은 점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다. 펀치드렁크로 인해 의도치 않게 지연의 죽음을 잊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과거 자신이 복싱 프로 선수였다는 사실, 지연과 함께 판소리 복싱을 연습해 왔다는 사실 등은 기억하면서 지연의 죽음만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병구가 무의식 중에 지연의 죽음과 관련한 기억을 잊는 것으로 죄책감을 벗어나고자 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영화 <메멘토>와 달리 그의 비겁함은 자꾸만 안쓰럽다. 어떻게 해서든 생을 살아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타자를 범인으로 모는 레나드와 달리, 병구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펀치드렁크로 기억을 잃어가던 중 너무나 삶이 고통스러운 나머지 사랑했던 여자의 죽음을 기억 저편으로 떠내려 보냈을 뿐이다. 사랑했던 여자의 죽음을 기억해 내고 빗속에서 우는 병구의 절박함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그렇게 병구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영화는 사라지는 것들을 조망한다. 고장 나버린 텔레비전, 잉크가 떨어진 볼펜, 재개발을 앞둔 체육관, 주류문화에서 멀어진 판소리, 버려진 강아지, 오래된 필름카메라, 아무도 찾지 않아 싸게 팔아버리는 필름, 폐업할 예정인 사진관, 지워지는 병구의 기억,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병구. 존재하는 것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비단 이 영화만의 설정은 아니다. 결국 이 땅 위의 모든 것들은 형태를 막론하고 소멸을 향해 달려간다. 나는 이 사실이, 이 당연한 세상의 이치가 지독히도 낯설다. 한 물리학자가 방송에 나와 말했다. "우주는 죽음으로 충만하고, 죽음이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보인다." 죽음이 기이한 것이 아니라, 삶이 기이한 것이라는 물리학자의 말에 나는 우리가 모두 찰나의 생명체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의문이 들었다. 그가 연구하는 물리학이 죽음이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설명한들, 사랑하던 존재가 죽음의 상태로 존재할 때 과연 그는 슬퍼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행히도 그는 뒤이어 답했다. "존경하던 분이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운 죽음이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당연히 슬펐다. 죽음을 원자로 이해하고자 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 의미를 찾아 나를 추스르려는 노력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의 슬픔은 내게 위안이 되었다.


이 영화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지만 그것들에게서 의미를 찾고자 하지는 않는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영화 속 사라지는 것들 중 어떤 것은 새것을 구매하는 것이 더 싸게 먹혀도 끝내 고쳐지고야 말고, 또 어떤 것은 예정된 수순대로 소멸의 행보를 걷는다. 그리고 또 어떤 것은 자신의 다음을 남김으로써 사라짐과 동시에 존재하며, 또 어떤 것은 시대가 끝났다고 우리가 끝난 건 아니라고 외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지금 고쳐져도 결국 시간이 흐르면 사라져야만 하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고, 다음을 남겨도 사라지는 현실은 불변하며, 시대가 끝났다고 우리가 끝난 건 아니라고 세상에 아무리 외쳐도 어느 날에는 우리도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라는 걸.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지독한 잔상에 사로잡히는 것은 보여주지 않아도 그 모든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복싱 영화를 보니 복싱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과거 복싱을 배운 적이 있었다. 복싱을 배우면서 관장님께 한 가지에 대해 반복해서 지적을 받곤 했다. 잽 동작을 할 때마다 가드를 올린 팔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복싱에서 가드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기술이자, 복싱의 기본기 수업에 반드시 포함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나를 지키고자 열심히 배웠지만 어느 날엔가 결국 우리가 사라진다는 예정된 결말 앞에서만큼은 어떤 식으로도 가드를 올릴 수 없다는, 영화가 말하는 현실이 나를 번번이 무력하게 만든다. 하지만 찰나가 아름다운 것은 결국 이 모든 것이 영원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는 황경신 시인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죽음과 삶이 공생하므로, 결국 죽음은 삶의 가치를 설명한다. 이 영화는 사라지는 것들의 가치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지 않았지만, 영화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갈수록 나는 자꾸만 영화 속에서 사라지는 것들의 가치를 찾고자 노력했다. 그러다 맞이한 영화의 결말, 내가 사라지는 것들의 가치를 찾기가 무색하게 병구는 말한다. "민지 씨. 이번 시합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 알아요. 결국 모든 것들은 사라지거나 잊혀지고 저 역시 곧 잊혀질 거라는 걸 알아요." 영화를 보는 내내 나만 알기를 바랐던 진실이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올 때 나의 동공은 어찌할 줄을 모르고 흔들린다.


영화의 시작과 끝, 주인공 병구는 말한다. "꿈을 꾼 것 같아요, 아주 길고 이상한 꿈." 그동안 나는 아이들에게 '경험을 통해'라는 표현과 '현실에 기반하여'라는 표현은 동일하게 해석된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경험은 때때로 현실을 초월한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마저 꿈과 현실의 경계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고, 그러다 때로는 경험으로 둔갑해 현실을 대체하기도 한다. 현실을 대체해 버린 병구의 상상처럼. 결국 병구의 세상에서 지연의 재미있는 이야기는 남자와 여자가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문장으로 막을 내린다. 영화를 보는 나는 알고 있다. 병구의 상상은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님을 알아도 나는 자꾸만 그의 아주 길고 이상한 꿈을 지켜주고 싶다. 끝내 사라져 잔상으로 남을 그를 그렇게라도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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