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껏 무기력하자
개학 날의 아이들은 조금은 무기력하다. 오랜만에 보는 선생님과 친구들이 약간 반갑지만 반가운 티를 냈다간 학교를 좋아하는 이상한 아이로 낙인찍힐까 봐 부득불 하나같이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한껏 반가운 티를 낸다. 얘들아 반가워, 방학 때 뭐 하고 지냈어? 하지만 진심으로 반갑지는 않다. 학교에 적어도 나 한 명쯤은 너를 반가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해. 사실은 선생님도 일하러 왔어. 나라고 뭐 다를 게 있겠니. 나도 하루만 더 쉬었으면 좋겠다 얘들아. 선풍기 틀고 바닥에 누워 조금만 더 뒹굴고 싶은데 일단 개학이잖니. 나와서 일해야지. 오늘부터 다시 부지런한 선생님으로 돌아가야 해.
지금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는 활동에서는 아이들 대부분 '지루하다', '시간이 안 간다', '다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등의 부정적이고도 아련한 의견이 다수 등장했다. 그래. 간만의 학교 생활이 즐겁지만 즐거운 티를 냈다간 학교를 좋아하는 이상한 아이로 낙인찍힐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거지? 애써 위안해 본다. 내가 주로 하루를 보내는 직장인 학교. 그런 학교를 거부하는 마음들을 마주하니 숨이 막히려고 한다. 하긴, 학교가 좋은 아이들이 어디 있겠어. 그러나 막막한 마음을 옆으로 슬쩍 밀어놓고 "곧 있으면 재밌어질 거야"라며, 아이들을 위하는 건지 나를 위하는 건지 모를 말들을 뱉어낸다. 그치. 학교가 너무너무 싫지? 그 싫은 학교를 선생님은 이 나이에도 다닌단다. 교사 초년생의 시절이었다면 지루하고 시간이 안 간다는 아이들의 반응에 밑도 끝도 없이 실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감정엔 잘못이 없다. 그렇게 느껴진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인정해 준다. 그렇게 느꼈구나. 지루할 수 있지. 시간이 안 갈 수도 있지. 다만 아이들이 그 기분에 머리채 잡혀 이리저리 끌려다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