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결의
나의 의원면직 결심은 당연하게도 친정 부모님 귀에 들어갔고, 엄마는 한동안 위통에 시달리셨다고 한다. 아니, 마흔이 넘은 자식이 자기 앞가림도 못할까. 자식 걱정하는 엄마의 애처로운 마음 씀씀이에 감격하기보다는 조금 어처구니없었다. 엄마, 내가 열 살 이유? 내 새끼가 지금 중학생이네! 물론 환갑이 되어도 엄마 눈에 나는 꼬맹이 속없는 첫째 딸일 것이 뻔하지만.
주말 동안 동생네 집에서 면직 결심 파티를 열었다. 면직은 아직 하지 않았으니 면직 파티가 아니다. 결심만 했으니 결심 파티다. 안정적 ‘이라고 여겨지는’ 교사를 때려치우기로 결심한 언니의, 첫째 딸의 용기를 기리고자 여는 파티였다. 설명이 길다. 그냥 돼지파티다.
원래 멋들어지게 펜션을 예약하려 했지만 급조된 파티였던 터라 어지간한 곳은 모두 예약 마감이었다. 게다가 동생의 두 아이들은 아직 어렸다. 복작복작한 상태로 숙소에 가는 것은 돈이 아까운 짓이었다. 아무리 비싼 호텔에 가더라도 우리가 하는 일은 먹고 마시고 씻기고 재우고... 였을 것이다. 편하게 동생의 집을 숙소 삼아 주말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부대끼며 놀고 어른들은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하며 술잔을 기울여보자.
한 번 마음먹은 것은 앞 뒤 재지 않고 실천에 옮기는 나는 사실 가족들이 끊임없이 말릴까 봐 두려웠다. 이미 내 안에서 교직에 대한 열망은 아주 차갑게 식어버렸다. 겉으로 대놓고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너는 돈줄인데 어찌 이 길을 저버리느냐’는 압력을 받을까 봐 노심초사해왔다. 다행히 가족들은 이런 내 성격을 알고 있는지 두 번 말리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그 과정을 옆에서 들어왔다. 몇 달 만에 10kg 이상 빠져버려 피골이 상접한 모습을 보아왔다. 그런 가족들은 차마 나를 잡을 수 없었으리라. 내 얼굴빛이 환해졌다고 했다. 이제 사람 같다고. 그동안 나는 무얼 하고 살았던 걸까.
그래도 가족들이기에 숨겨놓은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나 사실은 자신 있게 결심했지만 거지깡통을 차게 될까 봐 조금은 두렵다고. 무얼 하든 단번에 성공할 수는 없을 것을 안다. 하지만 그 실패에 주눅이 들어 자꾸자꾸 바닥으로 기어들어가 껌처럼 붙어버릴까 봐 겁먹고 있다고. 그런 내게 동생과 엄마는 어릴 때부터 보인 나의 호전적인 성격을 들먹이며 걱정 말라고, 오히려 나를 치켜세워주었다. 나는 걱정과 함께 치킨을 우걱우걱 씹었다. 맞다, 이건 결심파티를 가장한 돼지파티였지!
학교 밖은 정글이야. 사회는 추워. 숱하게 들었던 주변의 말들. 하지만 엄마는 알고 있었다. 학교 안에서도 몹시 불안해하던 딸의 모습을. 남들은 안정적이라고, 철밥통이라고 하지만 언제 아동학대로 고소당할지 몰라 불안해하는 모습이 요즘의 교사들이었다. 아이들의 가방 안에 녹음기가 있으면 어떡하지. 내가 혹시 한숨을 과하게 쉬지는 않았을까? 말실수를 하지는 않았나? 아까 목소리 데시벨이 지나치게 컸다면 어떡하지? 방금 어깨를 두드렸는데 쳤다고 느낀 거면 어쩌지? 수업 때문에 아이가 아픈 것을 가정에 바로 알리지 못하고 점심시간에 문자만 겨우 보냈는데 이게 문제가 되면 어떡하지? 쩌지 쩌지 어쩌지......
교사 똥은 개도 안 먹는다고 했다. 이렇게 전전긍긍 불안에 떨며 살아가는 교사의 똥이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말이다. 엄마. 나 이제 그런 불안에 떨기는 싫어. 눈물이 날 것 같지만 어금니를 지그시 눌러 참아보았다. 작년, 한 해 동안 지나치게 울었다. 이미 그만두기로 결심까지 했는데 더 이상 울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먹고 있는 치킨이 한창 맛있는 부위에 이르렀다. 좀 더 음미하고 싶다. 울면서 먹던 걸 흐지부지하기엔 너무 아까운 맛이다.
돼지파티는 새벽 3시, 진라면 순한 맛을 계란 한 개와 함께 끓이면서 마무리되었다. 이걸 먹지 않으면 나의 의원면직은 개운하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그렇게 분위기를 만들어나갔다. 이미 배는 찢어질 것 같았지만 의식을 치르듯 정숙한 표정으로 모두들 꼬들한 진순이를 호록 호록 빨아들였다. 자. 우리 이 자리에서 함께 한 그릇 뚝딱 하였으니 나의 앞길을 축복해 주는 거야. 마치 도원결의와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