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글쓰기 모임 3
월요일 오전 10시, 고민을 거듭하며 미리 작성해 놓은 주제 안내 문자를 채팅창에 올렸다. 글만 올리면 너무 사무적으로 보일 것 같아 재미난 사진도 한 장 첨부했다. 역시 내향형 운영자답게 사람들에게 안내하는 데에만 오늘의 에너지 70%를 이미 사용해 버렸다.
이제 남은 건 ‘글을 기다리는 일’이었다. 첫날인 오늘, 글의 주제가 제시되었으니 보통은 수요일쯤 쓰기 시작할 것이다. 목요일에 폭발적으로 글이 업로드되며 그밖에 올리지 못한 분들은 주말 동안 나누어 업로드하시겠지. 당장 내가 할 일은 없었다. 잔뜩 긴장했던 승모근이 조금씩 내려가던 수요일, 첫 글이 카페에 게시되었다.
이제부터 올라온 모든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건 기본, 세세하고 정성껏 여러 번 읽으며 공감성 피드백을 해드리는 것이 운영자인 나의 역할이다. 그렇다고 막 올라온 글을 읽자마자 피드백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 번 읽고 마음속에 묵혀두었다가 다른 시간대에 또 읽어보고 싶었다. 때에 따라 글을 읽는 내 마음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총 21편의 글이 올라올 예정이었다. 한 건의 글이 게시될 때마다 바로바로 피드백을 한다면 내 일상이 엉켜버릴 수도 있다. 두세 편의 글을 모아 한 번에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생각했다. 일종의 자체 업무 시간을 정해두는 것이다.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나이쓰 카페에 올라온 글을 읽고 피드백할 것
백수의 삶에서 새로운 스케줄이 생긴 순간이었다. 소액이라도 타인의 돈을 받아 하는 일이다. 나는 그들의 돈뿐 아니라 일정량의 시간과 에너지를 함께 받았다. 그것이 아깝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던 ‘완벽 추구 자아’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이지만 엉성한 모습을 보여선 안돼. 서툴러선 안돼. 작은 실수도 하지 않게 조심해야 해. 쓸모없는 사람이 되지 마. 너에게 투자한 가치를 보여야 해!
그 자아에 이끌려 회원분들이 올린 글들을 미친 듯이 읽어 내려갔다. 정성을 다해 따뜻하게 읽겠다는 초반의 선언과는 달리 적장으로 진격하는 장수처럼 비장한 마음이 되고 말았다. 몇 번이고 다시 읽어서 감동받은 문장, 잘 표현된 문장 등 피드백할만한 문장들을 찾아내어 정신없이 답글을 적었다.
하지만 쓰면서도 걱정되는 지점이 있었다. 나의 피드백 댓글이 혹시나 사무적으로 보이면 어떡하지? 마음으로 공감한 느낌이 잘 드러나야 할 텐데, 마치 챗GPT가 쓴 것처럼 유려하면서도 묘하게 이질적인 느낌을 주면 어떡하지? 일단 거침없이 써내려 간 피드백 댓글을 꼼꼼하게 살폈다. 지나치게 감정이 메마른 부분은 없는지, 억지로 공감하는 듯한 곳은 없는지. 이런. 수능 공부를 할 때 이렇게 분석하며 했더라면 지금의 삶과는 또 달랐을 것이다.
댓글을 적고 나니 한 가지 고민이 더 생겼다. 내가 쓰는 피드백 댓글의 길이는 어떻게 조절해야 할까! 교사였던 시절, 학생들의 일기장 검사를 할 때 길게 쓴 아이에게는 나 역시 장황한 피드백을 해주었다. 그러나 짧게 썼다고 피드백도 댕강 짧은 건 아니었다. 그것이 소통의 매개체가 되기도 했고 학생들은 자극받아 나중에 일기가 점점 길어지기도 했으니까. 글쓰기 모임 회원 분들에게는 어느 정도 균일한 분량의 피드백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물론 하고 싶은 말을 다 쓰려니 길다!) 결국 피드백을 따로 적는 문서 양식을 제작했다. 이 틀 안에 쏙 들어가게 글을 쓴다면 모두 비슷한 분량의 피드백을 받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J유형의 계획적인 모습이다.
목요일 오후부터 시작된 나의 댓글 쓰기는 일요일 밤까지 계속되었다. 마감 시간이 토요일 자정이었음에도 일요일 자정이 다 되어 쓰신 분들이 두 분이나 되었다. 글 쓰는 일은 어떻게 보면 마음의 짐 같은 일이다. 써야지, 하면서도 쉽게 첫 문장이 써지지 않는 그런. 나처럼 글쓰기에 접근이 쉽다면 애초에 이 모임이 생기지도 않았겠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수시로 들게 하는 것, 백지를 놓고 첫 문장을 아무렇게나 일단 써보는 것. 그것이 이 모임의 목적이며 목표였다.
혹시라도 글의 소재가 겹쳐 내 피드백 내용이 비슷비슷해지면 어쩌나, 걱정되었는데 괜한 생각이었다. 총 19개의 글이 올라왔다. 모두 참신한 문장에, 재미난 표현들이 가득했다. 유명한 작가의 글을 읽는 것도 좋지만 서툰 사람들의 글에서 날것의 표현을 만나는 일은 너무나 짜릿하다. 그들은 그것을 해내고 있었다. 어쩜 이걸 이렇게 표현하지? 이런 묘사 방법을 쓸 수도 있구나! 글의 길이와 상관없이 읽는 나에겐 감탄의 연속이었다. 자신이 쓴 글이 별로일까 봐 고민했다는 분들의 말과 글들에서 괴리감이 느껴졌다. 회원님들, 기만자야!
그렇게 첫 주가 지났다. 회원분들은 서로의 글에 댓글로 응원을 하고, 본인의 감상을 남기기도 했다. 내가 원하던 모습이다. 적막한 글쓰기 카페는 지양하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카페는 활기를 더해갔다.
두 번째 주와 세 번째 주 모두 ‘나’와 관련된 글쓰기 주제가 제시되었다.
-2주 : 나의 습관에 대하여
-3주 : 내가 좋아하는 시간
주제만 덜렁 내놓으면 어려워하실 것이기에 예시 문장을 자세히 적었다. 그리고 늘, 자신감을 잃지 말고 쏟아내라는 응원의 이미지 한 장을 함께 첨부했다.
3주쯤 되어가니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혔다.
1. 나는 월요일에 글쓰기 주제 안내 문자를 올린다.
2. 틈틈이 카페에 업로드된 글이 있나 살펴본다.
3. 목요일이 되면 지친 회원분들에게 힘이 나는 독려 문자를 올린다.
단, 글을 독촉하는 느낌이 들지 않아야 하기에 세심하게 손보았다.
4. 금, 토, 일요일에 한꺼번에 글들이 올라오므로 이때 정신을 똑바로 차린다.
허투루 읽지 않기 위해 애쓰고 맑은 정신일 때 피드백을 하기 위해 시간을 고른다.
5. 모두 마무리되고 나면 또다시 월요일을 맞이한다.
쭉 지켜보니 두 분의 회원이 2 주차가 지나도록 글을 올리지 않으셨다. 분명 오픈 채팅방의 문자는 확인하신 것 같은데(읽었다는 표시가 확인되었다) 왜 글이 없을까. 만약 앞으로도 쓰지 않으신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은 모임에서 겪는 문제라고 한다. 유료 모임일지라도 의욕이 앞서 신청했지만 막상 시작되면 일상에 치이거나 여유가 부족해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다. 아마 이 두 분도 그럴 것이다. 2주까진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괜히 초반부터 연락드리면 ‘왜 글을 쓰지 않으시는 거예욧! 얼른 내세욧!’하며 꾼 돈 받으러 온 사람처럼 보일 일이었다. 3 주차가 되자 본격적으로 두 분에게 개인적인 문자를 보냈다. 글이 올라오지 않아 걱정이 된다. 무슨 일이 있으신지. 여유가 되신다면 딱 3줄이라도 카페에 남겨주셨으면 좋겠다. 등등... 다행히 두 분 모두에게서 답장이 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분은 마지막까지 결국 글을 올리지 못하셨다.
글쓰기 모임은 신청 후, ‘아, 괜히 했다’하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자의로 참여했지만 글이라는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내 관심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이런 일이 앞으로도 종종 생길 것이다. 그럴 때의 대처 방안도 미리 생각해 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