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의 첫 번째 글쓰기
규칙과 규율을 좋아한다. 우리 모임에서는 매주 월요일, 글의 주제를 알리는 안내 문자를 띄운다. 글을 쓰는 기간은 일주일 정도로 넉넉하니 주 초에 아무 때나 안내해도 상관없긴 하지만 일정한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한 시각은 ‘월요일 오전 10시’. 그 정도면 지나치게 이른 시간도 아니고 직장에 출근하신 분들의 경우, 조금은 예열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4주 간의 주제는 회원 모집 시기에 미리 정해 놓았다. 닥쳐서 정하느라 허둥대고 싶진 않았다. 대신, 어떤 식으로 안내할지는 전날 일요일 밤에 고민한다. 지나치게 사무적이지 않게, 그렇다고 또 너무 가볍지도 않게. 글에 대한 피드백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 덜컥 멈춰 선다. 살갑게 굴고 싶지만 친정 부모님께도 무뚝뚝한 나였다.
[나이쓰 8월 1주 차 글쓰기 주제 안내]
이번 주의 글쓰기 주제는
"올여름, 나는 이렇게 지내고 있다!"입니다.
열 번도 넘게 맞이한 무더운 여름,
나는 어디서 어떤 시간들을 보내왔을까요?
유난히 느렸던 하루, 뜨거웠던 저녁, 그리고 자주 찾게 된 장소들…
지금의 내가 마주하고 있는 여름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직접 겪은 일, 사물에 관한 이야기, 관찰한 것들 등
가볍게 일상 기록처럼 써도 좋고, 마음에 남는 한순간을 붙잡아도 좋습니다 :)
*마감: 이번 주 토요일 자정까지
*카페에 업로드하신 글은 서로 읽고 응원의 댓글을 나눕니다.
사실 성격대로 하자면 개괄식으로 안내했을 것이다. 1. 주제, 2, 예시, 3. 기한... 세상 딱딱한 안내문을 떠올리다 절레절레하며 따뜻하게 맞이하는 문장으로 작성했다.
안내 문자를 올리고 나니 10시 10분이 되었다. 오전이기도 했고, 회원분들 수가 많지 않기도 해서 안내문에 대한 답장은 따로 없었다. 대신, 문자창을 꾸욱 누르면 표현할 수 있는 하트 표시가 드문드문 올라와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보송해졌다. 기다리고 있으면 수요일부터 회원분들의 글이 하나씩 올라올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내 할 일을 하면 되겠다.
뜻밖에도 주제를 안내한 당일, 카페에 글을 올리신 분이 있었다. 문자가 올라간 지 3시간 만이었다. 스르륵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고 글에서는 여름에 흘리는 땀처럼 짭짤한 맛이 났다. 나에게 여름이란 오로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만 덜렁 던져주는 계절인데 역시, 달랐다. 아마 뒤이어 올라올 분들의 글도 제각기 다른 색과 모양일 것이다.
바로 피드백을 하는 건 너무 성급해 보였다. 일단 오늘 한번 읽었으니 잠시 묵혀두었다가 수요일에 다시 읽어야지. 전문 작가가 쓴 글이 아님에도 처음 읽을 때와 두 번째 읽을 때의 느낌은 굉장히 다르다. 아무리 책을 속독하는 편이라지만 회원분들의 글은 두세 번 꼼꼼하게 읽는다.
수요일이 되자 총 5개의 글들이 모였다. 아니, 이렇게 빨리? 주말쯤 카페에 올리실 것이라 예상했지만 정확히 빗나갔다. 덕분에 목요일과 금요일이 몹시 바빴다. 하루의 시간을 정해 글에 대한 피드백을 시작한다. 피드백을 하는 일은 흥미 있으면서 동시에 고되다. 단순히 ‘재밌었어요’, ‘너무 슬프네요’ 정도로 끝내고 싶지 않다. 한 편의 글에서는 글쓴이 자신도 모르는 욕망이나 욕구가 표출되는 경우도 있으며 의외의 감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타인의 입장. 회원들이 글을 쓰는 동안 매몰되어 깨닫지 못한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물론 우리는 서로 얼굴도 모르는 온라인 인연. 아는 거라곤 서로의 이름과 전화번호, 이메일뿐이라 글 한편을 읽고 피드백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내가 그 상황이 되어보지 못했으므로. 그러나 교직에서 숱하게 아이들 일기장에 답글을 달며 깨달은 것이 있다. ‘마음으로 글을 읽으면 많은 것이 보인다’.
아이들의 일기야말로 사실 별 내용이 없다. 어떤 아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신이 한 일만 나열하기도 하고, 또 다른 아이는 부모님이 싸운 이야기를 쓰기도 한다. 뭐라고 답글을 써야 하나 고민할 때 늘 떠올렸다.
-이 아이가 일기를 쓸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글씨체가 어제와 좀 달라. 감정적인 변화가 생겼나?
-혹시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숨겨진 건 아닐까?
그러다 보면 갑자기 쓸 말이 소록소록 생기곤 했다. 나의 경험도 적어주고, 아이의 마음도 상상해서 쓴다. 그렇게 답글이 적힌 일기장을 받은 아이는 한참 동안 공책에 얼굴을 파묻고 읽어 내려갔다. 그 모습은 볼 때마다 내 마음을 말랑하게 만들었다.
지금 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 역시 일기 검사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회원분들은 일기 쓰는 아이들과 달리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쓴다. A4 한 장도 안 되는 글 속에서도 많은 걸 발견하고 느낄 수 있다. 주제가 같아도 글은 저마다 달랐다. 육아에 대한 이야기, 아픈 가족에 대한 이야기, 깊고 깊은 취미 생활과 관련된 이야기... 과연 글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첫 주의 마지막 글은 아픈 가족을 보살피고 집으로 돌아와 맞이하는 꿀 같은 휴식에 대한 글이었다. 병원에서의 시간은 몹시 느리지만 정확히 대비되어 연기처럼 가벼운 휴식 시간을 가지는 A님의 글에서는 납작한 고단함과 함께 여름의 뜨거움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