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운영자의 바캉스

<글쓰기 모임의 휴식기>

by 김지현

글쓰기 모임 2기 운영을 마무리 짓고 약 2주간의 휴식을 갖기로 했다. 작게나마 운영상의 미흡한 점을 개선하고 지친 나를 돌볼 필요가 있었다. 이번 주는 완전한 휴식 기간. 그리고 다음 주는 3기 회원분들을 모집하는 기간으로 삼았다. 소규모 모임 운영으론 꽤 긴 휴식기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쭉쭉 이어 나가는 것도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독서’였다. 고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나면 모든 시간이 내 것이라 생각했다. 어머나, 이 많은 시간들을 어쩌지? 황홀하면서도 아찔했으나 정작 나와보니 의외로 책 읽을 짬이 나질 않았다. 이것저것 준비하고 생각할 것들이 아주 많았다. 머리만 바쁜 상반기였다. 글쓰기 모임을 지나치게 섣불리 운영한 게 아닐까, 살짝 후회도 되었다. 운영자인 내가 충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열었다면 회원분들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렇긴 하지만... ‘완벽해지면 시작하자!’는 생각으로 접근했다가 시작도 못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오히려 내킬 때 만들었기에 이만큼이나마 운영할 수 있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한참을 자기 계발서와 같은 실용서에 집중했다. 퇴직 후, 내 앞길은 어둠이 내려앉는 딱 저녁 6시와 같은 상태였다. 앞으로 더 까매질 일만 남은 앞날. 뭐라도 해야 했기에 각종 자기 계발서들을 붙잡고 읽어 내려갔다. ‘인생 최적화’에 걸맞은 내용과 문체.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이 많은 만큼 읽어갈수록 정서적으로 위축되었다.


내가 모임에서 하는 피드백의 방향은 90% 정서적인 공감과 느낌이다. 인풋(input)이 늘어나야 아웃풋(output)도 다양해진다. 그러나 지금처럼 실용서만 읽어서는 그나마 한 줌 남아있는 말랑한 마음마저 딱딱해질 우려가 있다. 덕분에 작년부터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읽지 못하고 쌓아만 둔 소설책과 에세이를 집어 들었다. 오히려 소설을 읽으며 인생 실전 팁을 더 많이 알아가는 때도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당장 눈앞에 요약된 정보에 혹해, 수많은 자기 계발서를 읽어왔다. 소설과 에세이가 읽을수록 마음이 차오르는 책이라면 자기 계발서는 시간이 갈수록 텅 빈 항아리 같은 마음을 만들었다. 4기 모임을 운영하기 전까지 다양한 감정들로 내 안을 꽉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에 정신없이 만들고 내버려 두었던 네이버 카페도 손보았다. 비록 회원분들의 글을 모아놓는 아카이빙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가입하신 분들이 글을 좀 더 업로드하기 쉽게, 업로드된 글은 눈에 편안하게 닿을 수 있게 조정한다. 카페는 하나만 운영을 하고 그 안에 1기, 2기, 3기 등이 메뉴로 지정되어 있다. 회원분들은 자신이 속한 기수의 메뉴에 들어가 글을 읽고 쓰는 것이다. 알기 쉽게 메뉴명도 다듬고, 말머리도 지정해 놓았다. 새로 들어올 3기 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공지 글을 미리 써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제 됐다, 싶어 인터넷 창을 끄려다가 초등학생이 만들어 놓은 듯한 카페 첫 화면 디자인을 보게 되었다. 아, 맞다! 두 달여 전에 얼른 개설해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대충 그림을 그려 카페 대문에 박아 놓았다. 조금 부끄럽다. 이 화면을 스무 명 넘는 분들이 매주마다 보아왔단 것일까. 신경 좀 쓸걸. 현재 모임의 성격에 어울리는 차분하면서도 가벼운 이미지로 교체하고 나서야 노트북을 덮을 수 있었다.


다음 기수가 활동하는 시기는 9월 둘째 주부터 10월 둘째 주까지이다. 즉, 용광로 같던 여름이 서서히 식어가는 기간. 분명 8월만큼 덥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완연한 가을이라 보기도 어렵다. 낮엔 햇볕이 따갑도록 비칠 것이므로. 지난 기수처럼 계절감이 드러나는 주제를 선택해야 할 것인지, 그것과 상관없이 정할 것인지 고민했다. 완벽하게 선선한 날씨라면 가을과 관련된 주제를 손쉽게 채택할 수 있지만 딱히 그러기엔 애매했다. 옷장의 반팔을 대체 언제쯤 정리할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도 않는 날씨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둘째 딸의 24색 마카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24개나 되는데 벌써 한두 개는 잃어버린 것 같다. 게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보라색과 파란색은 하도 자주 써서 잉크가 벌써 바닥이 났다. 내가 좋아하는 색은 초록색인데... 어? 노란색, 빨간색?


3기 글의 대주제를 ‘색깔’로 정하면 어떨까? 개인마다 선호하는 색깔은 다를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의외로 색깔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어제 가족들과 함께 먹었던 떡볶이는 빨간색, 디저트로 먹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하얀색이었다. 내가 가장 즐겨 쓰는 노트 커버의 색깔은 검은색, 자주 머무는 장소인 집의 색깔은 대부분이 베이지색... 그렇네. 색깔은 삶과 가까이 닿아있는 감각의 한 요소였다. 어릴 때엔 색에 민감해진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알 수 있다. 핑크색 옷을 입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는 아이, 꼭 파란색 포장에 담긴 걸 먹고 싶다 우기는 아이...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둔감해진다. 먹고 있는 음식의 색깔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입는 옷들도 무난한 색깔이 대부분이다. 받쳐 입기 수월해야 하니까. 기거하는 집은 매일 보고 오래 살아서 그런지 색깔과 전혀 상관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의 색깔을 가졌다. 나 역시 눈동자의 홍채는 밤색이며, 머리카락은 짙은 갈색이다. 좋다. 다음 글쓰기 대주제는 ‘색깔’로 정해야겠다. 어떤 분들이 모이고 그분들이 또 어떤 글을 쓰실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살짝 들뜬 마음으로 3기 모집을 위한 포스터를 제작했다. 2기 모집 포스터는 대주제인 ‘여름’의 느낌이 나는, 쨍하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삼았다. 이번엔 색깔과 관련 있게 해보고 싶은데... 그렇다고 너무 많은 색깔로 인해 촌스러운 느낌이 나는 건 싫었다. 아예 색연필 디자인을 배경으로 만들어 볼까, 하다가 딱 적당한 템플릿이 있어 순식간에 포스터를 제작했다. 살짝 낮은 채도의 색깔들이 어우러져 무지개 느낌을 주는 포스터가 완성되었다. 새로운 3기 회원분들은 각자 어떤 색깔을 띠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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