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기의 마지막
올해 여름엔 제주도 감귤농장이 난리가 났다. 지나친 고온 현상에 얇은 귤껍질이 벌어져 과육이 다 터져버린 것이다. 그만큼 강렬한, 아니 강력한 햇살을 피해 그늘로만 다니던 나날들.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시작된 두 번째 글쓰기 모임도 마지막을 향해 내달렸다.
2기의 핵심어는 ‘여름’이다. 흔하지 않으면서 글 쓰는 데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쉽게 쓸 수 있는 주제를 찾느라 많은 문서와 책을 뒤졌다. 제시된 글쓰기 주제를 보자마자 ‘아, 이걸 쓰면 좋겠다!’하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꽤나 고민했다. 물론 ‘여름 냄새’와 같이 막막한 내용을 던지기도 했지만, 덕분에 회원분들이 글 쓰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렸지만.
1기를 운영할 때, 마지막 주에 ‘한 문장 글쓰기’를 시도했다. 무리한 결정이었다. 각자의 성향과 이 모임의 성격을 미처 생각지 못하고 성급하게 정한 주제였다. 다들 어찌어찌 쥐어 짜내어 한 문장을 작성하였고, 나는 그걸 받아 예쁜 이미지 카드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게 마음에 들기는 했을까. 단순히 혼자만의 만족으로 벌인 일은 아닐까, 좌절했다.
지친 정신상태도 여기에 몫을 더했다. 처음 운영해 본 모임에다 심지어 유료. 당연히 서툰 점은 수없이 발견되었다. 21명의 글에 대한 피드백에 기준 이상의 에너지를 써버려 마지막 주에는 ‘이걸 계속해나갈 수 있을까’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 4주 차엔 내 몫의 짐을 가볍게 만들어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차라리 일반적인 산문 주제를 제시하고, 해오던 것처럼 피드백을 하는 것이 서로에게 더 도움 됐을 텐데.
2기의 마지막 주는 1기와 달리 얼토당토않은 주제를 요리조리 피해 갔다. 뭔가 새로운 실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살포시 눌러 담았다. 때론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회원분들이 원하는 것에 간극이 있기도 하다. 나이쓰 글쓰기 모임은 오로지 나의 자아실현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싶었다. 평범한 우리들이 글을 쓰며 무거운 세상을 구름처럼 가볍게 만들 수 있다면, 싶었다. 그러니 의도대로 ‘쉽게’ 가자!
4주 차 주제는 간단했다. [내가 해마다 여름이 되면 하는 00]. 저마다 여름이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음식, 장소, 옷차림, 습관 등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여름만 되면 수박을 냉장고에 늘 채워두기도 하고, 가족들과 바다로 여행을 가는 일정을 잡기도, 또는 얇은 면 원피스 하나만 입고 집 앞 카페에 나가기도 할 것이다. 주제 안내 문자를 작성하며 생각했다. 그럼 나는 여름에 어떤 것을 반복해서 하고 있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건 너무 흔한 일이라 제외하기로 하자. (물론 한겨울에도 속에 천불이 나서 마시기도 하니.) 놀러 가는 것도 안 좋아하고, 더위를 잘 타 땀을 많이 흘리는 나는 언젠가부터 여름이 돌아오면 뉴진스 노래를 들으며 다이어리를 쓴다. 물론 에어컨이 작동하는 실내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데뷔곡인 ‘어텐션’을 들으며 숏컷 머리가 마치 그녀들처럼 긴 생머리인 양 착각하며 고개를 흔든다. 책상 앞에 앉아 발을 까딱거리며 다이어리를 꺼내 들고 아무 말이나 쓴다. 일기인지 낙서인지 모를 무언가를.
이렇게 가벼운 장면을 적어도 좋고, 잊고 있던 오래된 기억 속의 여름을 꺼내어도 좋다고 설명했다. 나이쓰 모임의 규칙 역시 반복해 안내드렸다.
-형식과 분량은 자유롭습니다!-
A4 용지를 한 장 가득 채워야 한다거나, 몇 문장을 만들어야 하는 등의 규제는 없다. 이 모임은 ‘글을 지속해서 쓰고 싶게 만드는’ 모임이다. 형식과 분량을 제시하는 순간 무의식엔 ‘지켜야 하는데’, ‘채워야 할 텐데’ 등의 약한 강박이 생기고 만다. 그것에서 자유롭게 해야만 했다. 쓰기 어려운 주에는 딱 3줄만 써도 좋다. 물론 피드백을 하는 나로선 약간의 어려움이 생기겠지만. 그러나 이것은 숙제가 아니므로.
한 주가 흘러가는 동안 회원분들은 각기 다른 날짜에 글을 업로드했다. 좋아하는 책도 2번 읽는 것을 꺼리지만 회원분들의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가볍게 한 번 읽고, 피드백을 적어가며 두 번 읽는다. 세 번째 눈으로 훑으며 피드백을 마무리한다. 한 명 당 기본적으로 3번~4번 정도 반복해 읽는다. 마치 수능 언어영역 지문을 분석하듯 꼼꼼히 살피며.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글 하나로 마음이 통하려면 열심히 읽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서비스. 회원분들이 4주 동안 작성해 온 글들 중 아름답거나 재미있다고 생각한 문장을 하나씩 뽑아 이미지 카드로 제작한다. 지난 한 달의 모든 글들을 다시 반복해 읽는다. 피드백을 위해 읽는 것과 미감을 위해 읽는 것은 또 다른 맛이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이미지 카드를 만들었다.
1기 땐 일일이 메일로 보내드렸다. 그러나 수신확인 창을 보니 열지 않는 분들이 꽤 많았다. 이번엔 만들어 놓은 이미지 카드를 한꺼번에 오픈 채팅방으로 업로드했다. 나의 아름다운 문장과 다른 회원의 멋진 문장을 함께 볼 수 있는 효과가 있었다. 물론 여기에 쓰인 문장은 오로지 ‘내’ 기준으로 선정했다. 본인이 쓰고도 잊어버리거나 지나치는 문장이 꽤 많았을 테다. 문장으로 표현된 자신의 미감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3기 모집은 한 타임 쉬었다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원래 다음 주, 신청을 받고 그다음 주에 바로 시작해야 하지만 모임을 재정비하며 휴식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의 공백을 두었다. 아마 3기는 지난 2기보다 더 적은 회원으로 운영될 수도 있다. 이걸 수익화 수단의 하나로 쓰는 건 아니다. (돈을 벌 수 없는 구조다!) 3명이 모이더라도 그 안에서 우리는 글 하나로 마음을 이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