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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earest Blue Oct 30. 2019

에미뇌터:아인슈타인에게 수학 천재라는 평을 받은 수학자


발견해 주고 싶은 어떤 멋진 삶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들







수학자 에미 뇌터는 그의 이름을 딴 '뇌터의 정리'를 발견했다. 대칭이 있으면 그에 대응하는 보존 법칙이 존재한다는 내용이다. 완벽한 구를 생각해보자. 구는 회전을 시켜도 그 차이를 알 수 없다. 이때 구는 회전대칭을 가진다고 한다. 뇌터 정리는 그렇다면 회전과 관련한 무언가 보존된다고 말해준다. 실제로 각운동량이라는 것이 보존된다. 각운동량은 물체의 질량, 속도, 거리를 모두 곱해서 얻어지는 물리량이다. 이 때문에 지구는 일정한 속도로 돈다. 엄밀하게는 달 때문에 속도가 조금씩 변한다.



위의 문단에서 등장하는 에미 뇌터는 남성일까 여성일까?

아마 수학이나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선뜻 답하게 어렵다면 힌트를 조금 더 드리겠다.



뇌터는 당시에 여성 과학자로서 수많은 차별을 받아야 했다. 1915년 독일 괴팅겐대학에서 강의를 맡으려 했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학의 반대에 부딪힌다. 결국 그녀를 지지한 다비드 힐베르트 교수가 자기 이름을 빌려 강의를 개설해준다. 힐베르트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수학자 중 한 사람이다. 뇌터가 교수자격시험 논문심사에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엄청난 반대에 직면했다. (독일에서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박사학위와 별도로 '하빌리타치온'이라는 논문심사를 통과해야한다.) 결국 힐베르트는 "여기는 대학이지 대중 목욕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힌트가 너무 친절했나?

이제는 모두가 에밀 뇌터의 성별에 대해 쉽게 대답할수 있을것 같다.





어쩌면 처음에는 위의 질문에 대해

쉽게 답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 아닐까 싶다.


지난 여름 EBS의 신규 방송 프로그램인

발견의 기쁨 동네책방의 작가님으로부터

방청객 섭외 제안을 받고 읽었던 책인

김상욱 교수님의 '떨림과 울림'의 226페이지에 나오는

수학자 뇌터와 힐베르트에 관한 일화이다.


이 내용은 225페이지에서 시작 된

보전법칙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엮여서 등장한 이야기다.


사실 떨림과 울림 책에서 이 부분을 읽는 동안

당연히 뇌터라는 수학자가 남자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뇌터는 당시에 여성 과학자로서 수많은 차별을 받아야 했다."라는

구절을 접하고 나서야 무언가 잘못 생각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나는 역사 속 수학자는 당연히 남성이라고 이미지화 하고 있었을까?

독일식 이름에 익숙하지 않아서 일수도 있겠지만,

책에서 에미 뇌터를 '그녀'라고 지칭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여성보다 남성이 수학을 잘 한다고 널리 알려진 사실 때문이었을까?

혹은 과거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한 교육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여섯 줄로 축약 된 수학과 과학의 역사의 한 장면에는

두 명의 멋진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아인슈타인으로부터

"가장 주목할 만한 창조적인 수학전재"라는

찬사를 받은 에미 뇌터와

그녀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아낌없이 지지해준

다비드 힐베르트 두사람이다.


예전부터 발견해 주고 싶은

이런 멋진 이들에 대해서 한번쯤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




사진출처: 위키백과






그녀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자 인터넷 여기저기를 찾아 보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녀의 삶에 대해서 일관성있게 쓰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그녀가 수학자였던 아버지 막스 뇌터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수학 공부에 관심을 보였다고 하고

다른 누구는 어릴때는 수학에는 흥미가 없었고 음악과 춤을 좋아했다고 표현한다.

아마 그녀에 대한 적절한 기록이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 아닐까 싶다.


1900년대 당시 여성에게 대학 교육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대학 수업을 2년간 청강을 했다.


그리고 1903년 당시 수학의 메카였던 괴팅겐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공식적으로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하지 않았고

이때도 청강생 신분으로 등록해 클라인의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클라인은 당시 괴팅겐대학의 수학과 학과장을 맡고 있었으며,

여성의 교육을 지지한 선구적인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녀의 교육 과정은 에를랑겐 대학->괴팅겐대학->에를랑겐 대학

순으로 정리된다.

괴팅겐 대학에서 클라인을 비롯 힐베르트, 민코프스등의 강의를 들으며

수업을 듣던 중 건강상의 이유로 1년간 휴식을 취하던 중

에를랑겐 대학에서 여학생 입학을 허용하자

다시 에를랑겐 대학으로 돌아가 학업을 계속한 것이다.


1907년 3중 4차 형식의 불변량의 완비 체계에 관해 라는 논문으로

최우수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8년간 에를랑겐 대학에서

직위와 보수 없이 계속해서 수학 연구에 몰두 했다고 한다.


이후 그녀가 발표한 논문과 연설이 물리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1915년 괴팅겐 대학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팀과 일하고 있던

클라인 힐베르트로 부터 팀 합류 제안을 받아 함께 수학 공식을 연구하게 된다.

괴팅겐 대학교에서도 7년간 무급으로 일하고 나서야 봉급을 받게 되었다.

이 과정에도 그녀를 지지한 힐베르트와 클라인, 아인슈타인의 공이 컸던것으로 보인다.


이후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유태인 출신이었던

그녀는 괴팅겐 대학의 교수 자격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다행이도 그 해에 미국의 펜실베니아주에 있는 브린모어 대학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당시 브린모어 대학의 수학과 학과장이었던 여성 수학자 휠러의 초청과

록펠러재단의 지원으로 브린모어 대학의 전임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후 1935년 그녀는 악성종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독일 수학자들은 정부의 지침을 무시하고 수학연보에

그녀의 생애를 소개하고 업적을 찬양하는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


또한 아인슈타인은 뉴욕타임스에 에미에 대해 아래와 같이 기고문을 썻다고 한다.

“현존하는 가장 유능한 수학자들의 판단을 고려할 때, 에미 뇌터는 여성의 고등교육이 시작된 이래 가장 훌륭하고 창조적인 수학의 천재였다. 재능 있는 수학자들이 수세기 동안 활발히 연구했던 대수학 분야에서 그녀는 매우 중요한 증명 방법을 발견해 냈다. 이 방법은 현재의 젊은 수학자들이 이용하면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그녀의 생이나 수학적 업적에 대해서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그녀의 삶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해준 김상욱 교수님께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시대적 어려움 속에서도 업적을 쌓은 그녀와

그녀를 도운 많은 이들을 기리며...











참고:

떨림과 울림 (김상욱)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85529&cid=60280&categoryId=60280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423149&memberNo=866433&vType=VER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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