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두 번째 회사의 퇴사 날짜가 결정되었다. 현재 회사에선 당시 내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재택근무를 도입하게 되어, 예상치 못하게 반년 정도 재택근무 경험을 해보게 되었다. 그간의 근무환경을 돌아보며 재택근무의 장단점을 정리해보려 한다.
출퇴근 시간이 없다는 것
지금은 그만뒀지만 날씨가 추워지기 전까진 8시부터 한 시간 동안 수영강습을 받고 얼른 샤워를 마친 후 공식 업무 시작 시간인 9시 반 이전까지 집에 도착해서 메신저에 접속 후 출근을 알렸다. 1-2시간가량의 시간 여유가 매일 생긴다니, 마치 돈을 번 것 같은 이득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비몽사몽 반쯤 눈이 감긴 상태로 출근 준비를 하고 지하철 자리가 있는 운 좋은 날에는 시트에 앉아 쪽잠을 자던 것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하며 알차게 시간을 쓰고 있는 것임은 분명했다.
업무가 끝난 퇴근 이후의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로 꽉꽉 들어찬 지하철을 버텨내야겠단 고민 없이 노트북을 덮고 방안을 나와 여가를 즐겼다. 공식적인 퇴근시간인 6시 30분 이후, 야근이 없는 한 6시 31분부터의 시간은 오로지 나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재택근무가 무조건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공간의 분리가 이렇게 중요하다니
나는 호캉스를 좋아한다. 단순히 호텔은 깨끗하고 시설도 좋으니까,라고 대변하기엔 '왜 집에서도 쉴 수 있는걸 굳이 비싼 돈 내고 호텔로 바캉스를 가는데?'라고 묻는다면 그에 대해선 어물어물하다가 정확한 대답을 내놓진 못했다.
그러다가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가 사람들이 호캉스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명쾌하게 답을 내린 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호텔에는 일상에서의 상처와 근심이 묻어있지 않은 공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영하 작가가 말하는 호캉스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고 주위에 말했을 때, 출퇴근과 사무실 사람들에 지친 주변 사람들은 '누워서 일할 수도 있겠네!'라며 매우 부러워했다. 단 한 번도 누워서 일을 해본 적은 없으나 어쨌든 내 집이기에 가능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바로 그 점에 있어 문제가 생긴다. 각 공간에선 그 공간에 맞게 내가 하는 일들이 있고, 공간별로 그것은 구분이 되어야 한다. 실질적으로 집이 사무실의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었기 때문에 쉬어야 하는 집과 일하는 장소의 경계가 겨우 문턱 하나라는 사실이 은근히 마음이 쓰였다.
업무를 하면서 비즈니스 매너가 없는 이의 무례한 메일에 기분이 상하고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일들에 치여 지쳤을 때, 업무시간은 이미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내 신경은 일들에 얽매여 있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등의 취미를 즐기던 공간이 그야말로 일터로 바뀌다 보니 집에 있어도 메일을 계속 확인해야 될 것처럼 늘 긴장감을 떠안게 되었다. 게다가 조그만 방 안에는 얼굴을 맞대며 내 스트레스를 토로하거나 가벼운 수다라도 떨 동료도 없다.
카페가 있어서 참 다행이야
물론, 복층 오피스텔과 같이 온전히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야 이런 걱정 따위 할 필요가 없겠지만 모든 이가 최적화된 환경을 가지기는 어려운 일이므로 나는 안락하게 쉬는 공간으로 집을 남기고 싶어 철새처럼 이 카페 저 카페를 떠돌아다녔다.
재택근무를 고려중이라면
비록 단점에 더 비중을 실어 이야기했지만 퇴사의 주원인이 재택근무인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에 취약하지 않고 혼자서도 잘하는 자율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이라면, 시간을 잘 활용한다면 가장 좋은 제도가 될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몇 가지 지켜져야 할 부분이 있다.
첫째, 서로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사무실 출근의 경우 상대가 담배를 피우러 잠깐 나가건, 화장실을 가건 자리를 비웠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메신저로 대화를 하는 상대가 5분이 넘게 답변이 없다면 혹시 딴짓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스멀스멀 피어나곤 한다. 이런 오해의 불씨를 꺼뜨릴 수 있도록 커뮤니케이션은 바로바로 이뤄져야만 한다.
둘째, 업무시간에는 오직 업무에만 집중을 해야 한다. 재택근무 시행 시의 업무 효율성에는 직원의 자율성이 달려있다. 편안한 장소에서 오는 나태함과 온갖 집중력을 흩뜨리는 요소들을 차단할 수 있어야겠다.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회사는 흔하지 않으므로 아마 다음에 이직하게 될 회사에선 사무실에서 업무를 하게 될 것이다. 가끔은 혹독한 추위나 비바람을 뚫고 가야 할 때도 있고 컨디션이 바닥을 치는 날도 있기에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어울리기에도 적당한, 한 달에 1-2번 정도라면 꽤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