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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카 Aug 26. 2017

어설픈 여행의 기록

실수투성이의 지난 여행에 대한 기억을 쓰다

돌아보고 나니 힘든 시간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번개가 똘똘 뭉쳐진 먹구름 속을 막 지나가고 있는 비행기의 형상이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지금이 '바로 그' 시기라는 것을 너무나 여실히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이것저것 신경 쓸 것은 많았고, 급기야 가만히 넋 놓고 쉴 수 있는 시간조차 모자란 생활이 되었다. 탈탈 털어낸대도 일 년에 열흘도 되지 않는 여행까지 즐기게 되지 못하다니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하면서도 당장 닥친 일들에 집중하느라 금방 또 불만은 잊혀 버렸지만 순간순간 여행의 기억이 급습하듯이 떠오르곤 했다.


여행지에서 겪었던 일들에 대한 기억은 여러 가지 장면들로 나타났다. 소심하고 어설퍼서 때로는 시간을 길바닥에 마구 흘리고 그 날 그 날 계획을 밥 먹듯이 바꿔서 바보 같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은 여행들.

스무 살이 되고부터는 짜 놓은 프로그램에 아무 생각 없이 몸을 맡기는 여행은 잠깐 그만두기로 했다. 스스로 예약을 하고 짐을 싸고 공항에서 수속을 밟고 낯선 땅에 도착하는 일련의 단계에 대해 아주 치밀한 계획표를 짜서 그것을 완벽히 실행에 옮기며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보고 싶었다.



처음 혼자 가게 된 해외여행지는 싱가폴이었다. 현지에서 구매한 패키지 프로그램은 만족스럽지 못한 관광지들 뿐이라 어디든 크게 흥미롭지 않았고, 유명한 요리들은 혼자 먹기에 너무 많아 주문할 용기가 나지 않아 결국 식당만 기웃대다가 특별하지 않은 패스트푸드로 한 끼를 때우곤 했다.

오늘만큼은 꼭 만족스러운 여행을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운 다음 날, 첫 일정지에 가기 위해 여행사에서 지정한 호텔 앞에서 픽업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 올까 기다리다 시간을 보니 벌써 40분이 지나있었다. '오늘의 여행은 망쳤다!' 깨달은 나는 서툰 영어로 현지 여행사에 전화를 걸었다. 기대했던 여행인데 망쳐져 버리다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렇게 기다렸는데 왜 안 오냐며 서럽게 우는 나에게 여행사 직원은 다정하게 달래주면서 말했다.

이렇게 날씨가 맑은데, 왜 눈에서 비가 내리나요?

아무래도 운전사가 나를 못 본 것 같다며 다시 버스를 보내주겠노라 약속하고 전화는 끊겼다. 여행사에서 보내준 버스는 다시 도착해서 계획보다는 약간 늦었지만 무사히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후로도 서툰 영어와 나의 판단 미스의 연속으로 자잘한 실수가 있었으나 다행히도 눈물을 흘릴 일은 더 이상 없었다.



그 후의 나는 싱가폴에서의 인상적이었던 경험을 교훈 삼아 다음부터는 척척 여행을 하게 되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역시나 실수는 계속되었다. 길을 잃고 헤맸던 건 부지기수, 5분 거리의 숙소를 앞에 두고 가장 먼 길로 돌아가느라 새로 가져간 캐리어는 비포장 도로에서 마구 굴려져 걸레짝이 되었고, 핸드폰을 분실해서 공항 경찰서까지 갔지만 정작 핸드폰은 한국으로 부쳤던 수하물 가방 안에서 발견되었다.


다행히도 구글맵과 인터넷의 각종 정보들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으며, 나 나름대로도 몇 번의 여행을 통해 여유라는 게 생기게 되어 꽤 노련한 여행자인 '척'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조금만 방심해도 아직 어설픈 여행자의 면모가 여지없이 나타나곤 한다. 계획대로 잘 다녀오는 것도 아니면서 왜 계속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 때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가고 싶지 않나, 생각이 든다.


당장 집 앞을 나서면서도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삶, 낯선 곳에서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여행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매번 깨닫고 있다. 불완전했던 것을 채우기 위해 나는 또 여행을 갈 것이며 이 어설픈 여행들을 계속 기록하며 다시 떠올리고 싶다. 행복했던 기억, 가끔은 삐끗했던 기억을 모두 기록하고 나면 다음 여행에는 분명 나아지는 게 있겠지.

무엇보다 싱가폴에 다시 가야 할 것 같다. 실패의 경험이 가장 많은 곳인 만큼 아직 내가 해보지 못한 무수히 많은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부족했던 나의 여행을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다면 의미 있을 것 같은데.

물론, 이번엔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울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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