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 단풍철 풍경
여름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끝임을 알리는 가을의 시작은 늘 울적하곤 했다. 이렇게 이번 해의 남은 날은 절반도 채 남지 않게 되었고 곧 나는 한 살을 더 먹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가을 풍경을 온전히 즐겁게만은 바라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아무런 이벤트 없이 이렇게 해가 저무는 걸 보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는지 단풍여행을 가고 싶었고, 우연히 소셜커머스를 뒤적이다 괜찮아 보이는 국내 단풍여행 당일 패키지를 예약하고 가족들과 다녀왔다. 꼭두새벽에 시청역에서 집합 후 짧은 자유시간 안에 단풍을 즐기고 다시 돌아와야 하는 스케줄이었다. 단풍이 절정일 시기를 나름대로 계산해서 정한 일정이었지만 아직까지는 등산객들의 등산복이 훨씬 화려했고 왕복 10시간이 넘는 버스에서의 이동시간 때문에 발이 부어 널널했던 운동화가 점점 꽉 끼는 신기한 경험을 처음으로 한 여행이었다.
동생은 '절대 다시는 같이 가자는 말을 하지 말라'라고 조용히 으름장을 놓았고, 나는 다음에는 여유를 가지고 오로지 예쁜 단풍들을 보기 위한 제대로 된 단풍여행을 꼭 하고 말리라 마음을 먹었다.
단풍여행에 제격인 많은 명소가 있겠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교토를 떠올릴 수 있었다. 원래도 좋아하는 여행지면서 실제로 단풍으로 유명한 지역이 맞기 때문이다. 해마다 살짝살짝 변하는 단풍시기를 지역별로 표기한 지도가 따로 존재하며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몰리기 때문에 이 시기에만 입장료가 훌쩍 뛰기도 한다. 당황스럽긴 하지만 울긋불긋한 절경을 눈으로 확인하면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처사도 아니다.
에이칸도
에이칸도는 철학의 길~교토 동물원 구간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오며 가며 여러 번 지나쳤지만 단풍철 방문을 기약하며 아껴놓은 곳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픈 시간 전부터 장관을 담기 위한 사람들로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높이 올라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을 감상하니 울긋불긋한 색상으로 가득 찬 이 곳의 풍경이 웅장하게 느껴졌다. 잘 정돈된 널찍한 공원 같았던 에이칸도.
난젠지와 호조 정원
아라시야마
거대한 수풀의 장막이 둘러싸고 있는 듯한 아라시야마는 어느새 가을의 색채를 마음껏 드러내고 있었다. 조금만 더 늦게 찾았다면 더욱 강렬한 색상을 감상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만 길게 늘어진 산책길과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탁 트인 풍경은 어느 계절에 오더라도 시원하게 펼쳐진 장면을 선사한다. 이것이 언제나 관광객들로 가득한 이곳이 번잡스럽다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다.
조잣코지
아라시야마의 외곽으로는 처음 가보는 터라 두리번거리며 도착했다.
축축한 이끼와 그 위로 떨어진 낙엽의 조화가 유난히도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던 곳.
추위를 너무나 심하게 타는 나에게 겨울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혹독한 계절이다. 그래서인지 가을이 선사하는 단풍철 풍경은 시련이 닥치기 전 마지막 축제와도 같아서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짧은 시간이지만 온전히 즐기고 싶은 마음이다. 성수기의 관광객 틈바구니에서 조금은 불편함을 느끼는 것도 인기 여행지를 찾은 이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숙명이지만, 불타는 듯 화려한 교토 단풍을 올해의 마지막 색으로 기억에 남기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은 선택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