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아기오리>는 '우리' 이야기
“배우리. 너 이번 중간고사 공부 제대로 했어? 수학이 30점이 뭐야?”
종례시간.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저번 시험에도 자기 반이 꼴등했는데, 이번에도 꼴등을 면하긴 힘들 것 같다. 교장선생님한테 또 무슨 소리를 들어야 할지…. 3연속 꼴등반이라는 불명예를 안겨준 아이는 바로 ‘우리’였다.
“너 이름은 ‘배우리’면서 공부는 왜 그렇게 못해? 혼자 일하시는 아버님 생각은 조금이라도 해 봤어?”
선생님의 화는 그치지 않는다. 민감한 가정사까지 반 아이들 앞에서 모조리 까버리면서까지….
“예... 죄송합니다.”
개미 숨 쉬는 소리로 간신히 죄송하다는 말을 올렸다. 선생님은 “말만 죄송하면 다야? 어쨌든 아버님 학교로 오시라고 그래.”라고 쌀쌀맞게 말하시며 나가셨다. 밤에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 말을 했다면, 분명히 ‘학생이 공부가 먼저지, 돈 버는 게 먼저야?’라는 천편일률적인 말을 추가로 들어야 했겠지. 변명 하나 하면, 꾸지람 한두 개는 금방 늘어난다. 마치 원플러스원 상품처럼. 아예 안 하는 게 지혜롭다.
아이들 역시 선생님 편이다. 옆의 반은 반 평균점수가 올라 선생님이 반 전체 학생들을 새로 생긴 브런치 카페 데려가 한턱 쏘셨다는데…. 자신들은 항상 그놈의 ‘우리’ 때문에 시험 이후의 냉랭한 분위기를 견뎌야 했으니…. 내가 할 말이 없다. ‘공부 못 하는 내가 죄지.’하며 숨죽일 뿐이었다.
“야. 배우리. 찐따야. 못 생겼으면 공부라도 잘 하든가.”
“미우새(미운 우리 새끼) 깜둥이 새끼야. 평균이라도 하자. 중간도 못 해? 반 점수를 매번 이렇게 깎아 먹냐?”
선생님이 나가시자, 둑을 무너뜨리는 홍수처럼 아이들의 총공격은 시작되었다. “우리야”, “배우리”….
“미안해.”하면서 가방을 챙겨 성급히 교실을 나섰다. 한심스러웠다. 선생님의 꾸중을 들어서가 아니라, 맨날 듣는 친구들의 폭언 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내 처지가 우스웠다. 너털웃음이 났다. 절로 한숨이 났다. 휴...
친구들은 거의 새로 지어진 아파트에 사는데, 난 20년 된 18평 빌라의 월세로 살고 있다. 피부색도 다르다. 아빠가 방글라데시 사람이라 아무리 화장을 해 봐도 내 얼굴은 친구들보다 톤이 어둡다. 학교에선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해서 가르치지만, 친구들의 사전에서 ‘다르다’는 곧 ‘틀리다’와 동의어였다. 단순히 피부색이 다른 게 아니라, 그들이 볼 때 나는 틀린 아이였던 것이다.
그나마 내 편이 되어주었던 엄마도 몇 년 전, 집을 나가셨다. 적자를 계속 적어야 하는 가계부 앞에서는 모성애도 역시 별수 없었나 보다. 화룡점점으로 공부까지 못하다니…. <불행한 것 말하기 대회>라도 있었으면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었을 텐데. 에잇, 또 그런 대회는 인터넷을 모조리 찾아봐도 없다.
집 말고 다른 데 가고 싶었지만, 용돈도 떨어져서 갈 데도 없다. 스마트폰을 훑어 보았지만, 딱히 연락할 친구도 없다. ‘집이나 가야겠다.’ 역시나 아빠는 집에 있다. 일용 노동직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아빠. 며칠 전, 녹슨 못에 다리가 찔려 파상풍에 걸렸단다. 그래서 한 달은 집에서 쉬어야 한다. 아니 논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평소처럼 아빠는 웃통을 벗고, TV를 보고 있다.
“딸. 왔어? 근데 무슨 일 있어? 갠차나?”
“아냐. 아무 일도 없어. 근데 한국어 좀 제대로 말하면 안 돼? 아직도 한국말을 왜 그렇게 못해?”
학교에서의 설움이 고스란히 아빠에게 쏟아진다. 갑작스러운 딸의 투정에 아빠는 어안이 벙벙하다.
“그리고 그딴 걸 왜 봐? 내가 학교에서 별명이 뭔지나 알아?”
재방송 <미운 우리 새끼>를 보고 있던 아빠는 리모컨으로 TV를 황급히 끈다.
“집에 있으니까 한국어 공부 좀 더 할게. 딸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없어!!” 하고,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내겐 꿈이 있다. 바로 가수가 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노래가 좋았다. TV에서 가수가 노래 부르면,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도 가사를 흥얼거렸고, 유치원에서는 장기자랑 시간에 항상 자원해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야! 우리 나중에 가수 되겠네.”하는 칭찬도 곧잘 들었다.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나의 꿈은 지속되지 않았다. 당장 월세 내기도 간당간당하고 쥐꼬리만큼의 용돈만 받는 처지의 나. 보컬학원에서 노래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그 말은 곧 예고나 대학 실용음악과 입시를 전문적으로 준비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혼혈 아닌가.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항상 놀림 받는, 피부색이 다른 혼혈 말이다. 그래도 꿈을 완전히 놓진 않았다. 아빠 몰래 오디션 프로에 지원한 것이다. 오직 목소리 만으로 뽑는다는 <보이스 코리아 시즌5>였다.
드디어 <보이스 코리아> 예선 날이다. 다른 참가자들을 보니, 친구와 가족들까지 찾아와 대대적인 응원을 펼친다. 화려하게 채색된 응원 피켓도 가득하다. 나는 혼자다. 친척집을 간다고 하고, 학교에는 미리 결석계를 냈다. 내가 오디션에 참가한다는 사실을 만약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안다면 그들의 반응은 뻔하다.
“네가 오디션을? 그 시간에 공부나 더 해야 하지 않겠니? 요즘은 다들 오디션을 하니까 개나 소나 다 하는구나.”
아빠에게도 별말 없이 학교 간다고 하고 집을 나섰다.
“오늘의 마지막 참가자입니다. 배우리. 지금 중학교 2학년인데요.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진행자가 나를 소개했다. 무대에 뚜벅뚜벅 걸어가 마이크 앞에 섰다. 침을 꿀꺽 삼키며, 심사위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일주일간 예선 심사를 하느라 지친 모습이 역력하다. 내 지원서를 보고, “또 이 노래야? 이런 노래는 너무 식상한데….”라는 심사위원의 말이 희미하게 들렸다.
드디어 피아노 반주가 나온다.
읊조리듯 노래를 시작했다. 수천 번, 아니 수만 번을 불렀을 <거위의 꿈>. 1명의 진행자와 4명의 심사위원, 수십 명의 스텝들과 다른 참가자들이 있지만, 이 순간만큼은 나 홀로 있는 것 같다.
지금 난 가수이다. 노래를 부르는 한 명의 가수. 관객도 오직 한 명. 바로 나 자신을 향해 노래를 부르는 것만 같다. 노래 부르는 순간만큼은 난 행복하다. 노래를 부를 때면 항상 놀림 받고, 손가락질받는 ‘미운 우리’가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우리’가 된다.
노래가 고조될수록 내 감정도 격양된다. 노래를 부르는 순간만큼은 지루하고 처절한 현실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오로지 성적만으로 나를 평가하는 선생님도 없고, 피부색만으로 나를 바라보는 친구와 이웃도 없다.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외국인 아빠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노래를 부르는 나만 있을 뿐이다.
노래의 하이라이트에 접어들었다. 난 웃고 있다. 웃다니? 이상하다. 웃으며 부를 노래는 아닌데…. 한 번도 이 노래를 부르며 웃은 적은 없었는데, 웃음이라니…. 바로 그때. 심사위원 4명이 나를 향해 의자를 돌렸다. 처음으로 외계인을 발견한 과학자들이 이런 표정을 짓지 않을까. 하나같이 경이로운 표정으로 그들은 나를 쳐다보았다. 세상에 이럴 수가. 합격이다. TV에서 항상 이런 장면을 보고 전율을 느꼈는데…. 이게 나의 이야기라니!
“예. 배우리 씨. ‘올 턴’입니다. 전원 합격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이번 시즌에 특별심사위원으로 선정된 가수 인순이가 마이크를 잡았다.
“배우리 학생. 노래 정말 잘 들었어요. 마치 제가 부르는 것처럼 저도 떨렸어요.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우리씨는 자신의 목소리를 어떻게 생각해요?”
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질문이다. 나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 준 사람은 없었으니까. 나의 피부색과 성적만을 이야기했지, 내 목소리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은 이제껏 만나보지 못했으니까.
“음... 별로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노래하는 게 좋았어요. 노래를 부르면 행복해졌거든요. 이 노래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고요.”
“우리씨는 정말 독특한 목소리를 가졌어요. 정형화된 목소리가 아니에요. 보컬 학원에서 가르치는 그런 똑같은 목소리가 아니에요. 우리씨만의 고민이 들어있고, 우리씨만의 생각이 들어있는 목소리에요.”
“예? 예. 감사.... 합니다.”
갑작스러운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것도 대가수 인순이로부터 그런 극찬을 받다니….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눈물이 핑 맺힌다.
“마지막으로 질문이 하나 더 있어요. 조금 민감한 질문인데, 우리씨는 혼혈이잖아요. 그것 때문에 힘들거나 어려웠던 점도 많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내가 듣기 싫어하는 ‘혼혈’에 대한 질문이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그냥 잘 모르겠다고 둘러댈까? 별로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답할까? 에잇, 그냥 솔직히 말하는 게 낫겠다.
“예.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 때문에 좀 힘들었어요. 친구들도 많이 놀렸고요.”
“우리씨.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남들과 다르다는 거는 축복이에요. 다 똑같아 봐요? 얼굴 생김새도, 목소리도, 성격도 다 똑같다면 얼마나 심심하겠어요. 우리씨는 다른 게 아니라 특별한 거예요. 우리씨의 목소리를 지금 다 들었어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외모라서 우리씨는 수많은 고민과 걱정을 했을 거예요. 그 고민에서 나온 결과가 지금의 우리씨의 목소리를 만들었을 거예요. 우리씨의 목소리는 정말 특별해요. 아니, 목소리뿐 아니라 우리씨 자체가 정말 특별해요. 그래서 그 특별함이 이 노래를 만났을 때 빛이 났던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흑”
간신히 막고 있던 눈물샘이 터져 나왔다. 최근에 이렇게 울어본 게 언제였지?
“우리야 일어나야지. 밥 먹자. 우리 좋아하는 돈까스 했어. 얼른 먹자.”
앗. 꿈이었잖아. 아까 아빠에게 화풀이하고 방에서 잠들었나 보다. 내가 오디션에서 노래를 부른 것도, 합격한 것도, 인순이씨의 극찬을 들은 것도 꿈이었다니…. 조금 더 꿈이 이어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직 부를 노래가 몇 곡은 더 남았는데…. 그놈의 밥이 뭐가 중요하다고. 그런데 꿈이 왜 이렇게 생생했을까? 아까 내가 장맛비같이 화를 퍼부었던 아빠. 그 아빠가 천진난만하게 내 얼굴을 보고 밥 먹자고 말하고 있었다. 괜스레 머쓱했다.
“아빠. 아깐 미안했어. 그냥 학교에서 무슨 일 있어서….”
“응? 너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아빠가 항상 미안하지.”
“칫! 매일 아빠가 미안하대. 아빠가 뭐가 미안해?”
“아니야. 항상 미안해. 얼른 먹자. 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어.”
밥을 먹으려는 순간, 아빠한테 항상 궁금한 점이 생각났다.
“근데, 아빠는 어렸을 때 꿈이 뭐였어?”
“아빠? 말하기 부끄러운데, 아빠는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었어. 먹고 사는 게 바빠서 접었지만.”
“정말? 아빠도 꿈이 가수였어?”
“그래. 지금은 이렇게 하루하루 힘들게 살고 있지만, 아빠도 방글라데시에서 전국노래자랑 같은 거 나가고 그랬어.”
“우와! 그럼 나 아빠 닮아서 노래 좋아하는 거구나.”
“그렇지. 피를 못 속인다고 하나? 이런 말 한국에 있지?”
“응. 피는 못 속인다. 아빠 그런 말도 아네? 그럼 아빠 지금 꿈은 뭐야?”
“지금은 열심히 돈 벌어서 ‘우리’ 노래 학원에 보내는 거야.”
“칫! 그게 무슨 아빠 꿈이야? 아빠 꿈이 있어야지?”
“그게 진짜 아빠 꿈이야. ‘우리’ 노래 가르쳐서 ‘우리’가 가수 되는 거.”
“알았어. 노래는 안 배워도 돼! 난 목소리가 특별하거든.”
“맞아! ‘우리’ 목소리는 어렸을 때부터 특별했어. 뭔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고나 할까.”
“헤헷! 아빠도 그렇게 생각해 주니까 좋다. 아! 맞다. 아빠. 내가 좋은 노래 하나 알려줄까?”
스마트폰 유튜브에서 ‘거위의 꿈’을 검색한다. 여러 버전 중, 인순이씨가 부른 영상을 클릭한다.
“이 노래. 진짜 좋아. 아빠. 혹시 ‘미운 아기오리’ 동화 알아? 그 이야기를 노래로 만든 거야.”
“아? 그래? 아빠도 어렸을 때, 들어봤었어. 아빠도 좋아하는 이야기야. 그러고 보니까 ‘우리’ 이름이 ‘오리’랑 비슷하네?”
“칫. 아빠 내가 이름 때문에 얼마나 놀림 받았는지 모르지?”
“그래? 그랬구나... 미안하다.”
“아냐. 괜찮아. 이젠 내 이름이 좋아. ‘미운 아기오리’가 내 이야기 같잖아. 그래서 좋아. ‘미운 우리 새끼’가 아니라 이젠 ‘미운 오리 새끼’다. 하하하.”
“아냐. 예쁜 오리 새끼야.”
“으이구. 알았어. 예쁜 오리 새끼 할게. 한번 노래 들어봐.”
“그래. 들어보자.”
“아빠. 같이 불러볼까? 아빠도 노래 좋아한다며?”
“쑥스럽게 무슨 노래야? 한번 불러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