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의 좌충우돌 라이프 <영국에서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
이 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 코미디언의 전원생활 분투기? 지독히도 주인을 못살게 구는 동물들이 펼치는 21세기판 <동물농장>? 매화 흥미롭고 재미있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난무하는 시트콤은 어떨까? 독자에 따라 각기 다르게 규정할 것이다. 공통점은 단 한 가지, ‘재미있다’는 것.
정말이냐고? 당장 책을 펼쳐라.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영국에서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이하 영사프나)>. 주인공은 사사건건 주위로부터 공격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안 무어. 우리에겐 약간 낯선 직업인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유행을 좇아 말쑥하게 차려 입은 일명 ‘모드족’이다. 장우산을 들고, 멋진 모자를 쓴 영국 신사를 상상하면 되겠다. 뼛속까지 영국인인 그가 가족과 함께 아내의 고향 프랑스로 이사하며, 파란만장한 스토리는 시작된다.
사람의 진이 빠지도록 일을 저지르는 어린 고양이 세 마리, 성적으로 타락한 스패니얼,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개, 열 살 미만의 남자아이 세 명, 캐스 키드슨과 쿠션에 환장한 여자(163쪽)
이들이 누구냐고? 모드족을 괴롭히고, 흥미진진한 사건을 일으키는 주범들이다. 시간이 갈수록 동물 수는 늘어가기만 한다. 총 25장에서 어느 곳을 펼치더라도 배꼽 빠지는 장면이 넘쳐난다. 글은 또 얼마나 맛깔 나는지... 누가 코미디언 아니랄까 봐.
어느 날 아내는 야생 버섯을 따서 요리한다. 야생 버섯이라니... 만화에 흔히 나오는 노란색 독버섯이 머리에 그려진다. 주인공 역시 겁은 났나 보다. 독을 없애려고 젖은 수건으로 닦는다. 무사히 요리는 완성, 조심스럽게 먹어 본다. 다행히 두 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뒹구는 이는 없다. 독버섯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맛은... 주인공의 표현이 압권이다. 이건 젖은 스펀지를 먹는 느낌(83쪽).
벼룩시장 장면도 놓칠 수 없다. 벼룩시장이라. 누군가가 쓸모없어 버리는 물건이 우리 집엔 안성맞춤이 될 수 있다. 잘 고르면 수 세기 전의 보물을 횡재할지도. 유감스럽게도 벼룩시장의 행운은 이안의 손엔 없었다. 그가 아꼈던 여행용 가방은 헐값에 사라져 버리고, 가족들은 (이안이 보기에) 쓸데없는 물건만 사 온다.
벼룩시장이 끝났을 때 우리에게는 유모차, 보행기, 산더미처럼 쌓인 옷들, 발가벗은 액션맨 인형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잡동사니를 처분하고 계획했던 벼룩시장인데, 전체 양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133쪽)
이외에도 주인공과 가족, 또 동물의 에피소드는 차고 넘친다. 마치 인기 절정의 시트콤을 보는 듯하다. 이 책에는 코믹 장르만 있는 건 아니다. 사회를 풍자하는 듯한 장면도 고명처럼 곁들여 있다. 프랑스의 아름다운 해변 니스를 방문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니스의 그 많은 개들 중에서 혼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개는 없어 보였다. 마치 살아 있는 핸드백 마냥 주인의 팔에 안겨 있었다. 결국 개는 액세서리였다. 살아서 똥을 싸는 액세서리. (89쪽)
피식 쓴웃음이 나왔다.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는 반려 동물. 그렇지만 너무 떠받치고 사는 우리네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른 부분을 또 살펴보자.
프랑스 아이들은 저녁마다 산더미 같은 숙제를 안고 집에 온다. 프랑스 사람들이 파업을 그렇게 많이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 시스템 덕분에 성인이 되면 에너지가 바닥나는 것이다. (155쪽)
촌철살인. 어릴 때부터 숙제와 성적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상황을 웃프게(웃기고 슬프게) 표현했다. 지금 한국의 상황도 그렇진 않을까.
이 책에서 마지막으로 발견한 건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너무 진부해 보이는 두 개의 단어가 결합했다. 가족과 사랑이라니. 요즘 드라마에서도 씨알도 안 먹힌다. 최소한 몇 번의 배신과 음모가 있어야 간신히 시청률을 유지하지 않나.
10장을 펼쳐 보자. 주인공은 일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를 오고 간다. 어느 날, 폭설 때문에 영국에서 머무르게 된다. 공연은 취소됐지만, 집에 갈 수 없다니... 영국에서 주인공은 계속 가족에 대한 걱정뿐이다. 폭설에 집은 괜찮은지, 가족들은 건강한지... 결국 알아볼 수 있는 모든 교통수단을 알아본 후에, 주인공은 집으로 향한다.
이제 한 시간만 있으면 집에 도착한다. 내 아내와 아이들, 개와 고양이, 말들이 여기서부터 한 시간 거리에 있다. 한 시간만 더 가면 폭설에 고립된 우리 집에서 징징대는 아이들과 온갖 시끄러운 소리, 그리고 구슬들이 기다리고 있다. 눈물이 났다. 피곤한 탓도 있었지만, 행복감이 밀려와서이기도 했다. 드디어 집에 간다. 이 이상 더 행복할 수 있을까. (186쪽)
간절히 집을 그리는 주인공의 마음이 느껴졌는가? 무사히 주인공이 집으로 돌아가는 이 장면을 보며, 안도감을 느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코미디언 이안의 팬이 된 것이고, <영사프나>에 중독된 것이다.
몇 번 박장대소하고 수십 번의 소소한 웃음을 준 <영사프나>. 어쩌면 주인공 이안은 우리의 모습 아닐까? 코미디언 이안은 무대에서 웃겨야 했다. 그래야 먹고 살 수 있었다(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무대 밖에서 더 웃겼다). 항상 관객이 바뀌어, ‘오늘은 어떤 관객이 찾아올까’ 궁금했던 이안. 그렇지만, 그의 전원 생활 역시 불확실성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불완전하고 자기 뜻대로 되는 건 별로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그 치열함과 불완전함 속에서 이안처럼 살아보는 건 어떨까? 나쁜 일도, 슬픈 기억도 훌훌 털어 버리고, ‘그런 게 인생이지’라며 ‘허허’ 웃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