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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설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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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ip Lee Nov 09. 2022

온전한 치유로 나아가려면

소설의 말 3. <눈감지 마라>

*** 고용주들도 힘들긴 마찬가지였지만, 아르바이트생들의 고통은 더 분절된 형태로 오는 것 같았다. 고통도 시급으로 왔다. ***     


별 볼 일 없는 지방대를 갓 졸업한 청년 둘이 펼치는 다채로운 알바 활극? 책을 읽기 전에는 이런 내용이 아닐까 추측했다. 그동안 유쾌한 소설을 써 왔던 작가였기에 낄낄대며 웃을 수 있길 기대했다. 요즘 유행하는 짧은 소설이니 깊이는 좀 얕아도 괜찮거니 생각했다. 조금 읽어보니 위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비교적 짧은 분량에 비해 깊이도 깊었다. 내 예상이 틀렸다.     



정용과 진만은 변변치 않은 지방 대학을 갓 졸업했다. 이들은 출장 뷔페와 고속도로 휴게소, 편의점, 식당 등등 할 수 있는 각종 알바를 전전한다. 당연히 알바는 쉽지 않다. 육체적으로 너무 고되고, 받지 못한 임금을 받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기도 한다. 천신만고 끝에 한 회사에 힘겹게 들어갔지만, 원치 않는 영업까지도 해야 하는 실정이다.     


둘은 이렇게 힘든 알바를 해야 생활비를 벌고, 가까스로 집세를 낼 수 있다. 그 방 역시 변변치 않다. 찾고 찾은 보증금 없는 월세 30만 원짜리가 오죽하겠는가. 이 소설은 정용과 진만의 내용으로만 채워지진 않는다. 둘이 처절한 생존기를 몸으로 써 내려가는 동안, 이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      


버틸 때까지 버티다 공장을 접게 되어 미안한 마음에 출장 뷔페를 불러 직원들에게 밥을 사는 사장님. 

자취방에서 혼자 지내며 매일 홀로 술마시는 40대 중반의 기러기 아빠.

설거지 일이 영 서툴러 다른 알바에게 민폐를 끼치는 삼계탕집 아주머니. 

하루종일 영업용 웃음과 멘트를 장착해 판촉 활동을 펼쳐야 하는 직장인. 

언제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아파트 경비원. 

아무 데나 들어가 타월이나 면봉 같은 걸 파는 할머니까지.     


한편으로는 ‘너무 피상적으로 이 사회를 그려내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저 ‘요즘 젊은이들이 힘들게 살아가는구나’를 새삼 깨닫고, 무난한 내용으로 끝나겠거니 했는데, 갑자기 소설은 새드 엔딩으로 흐른다.      


멍했다. 왜 이런 엔딩을? 작가가 약간 야속했다. 그래도 소설인데 좀 더 희망적인 메시지를 줄 수는 없었을까. 속상하기도 했다. 당장이라도 편의점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정용과 진만. 이들이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폭설이 내리는 산 정상에 이들만 내려놓고 나 혼자만 하산한 듯 했다. 계속 마음이 헛헛했다.      


이런 상념 속에서 다시금 책 표지를 보았다. 『눈감지 마라』. 순간 제목이 강렬히 다가온다. 아. 작가는 독자들에게 처음부터 한 가지를 주문하고 있었다. 바로 “눈감지 마라”는 것.     

우리가 현실에서 정용과 진만, 그 외의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가만히 있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일으켜 세울 순 없더라도 최소한 눈이라도 똑바로 떠서 이들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ps.

아직도 온 국민을 아프게 하고 있는 이태원 참사. 솔직히 나 역시 바쁜 일상에 함몰되어 이 사건을 제대로 추모하지 못했다.      


참사에서 사랑하는 자녀를 가슴에 묻은 부모님들.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지 못해 안타깝다며 눈물을 삼킨 구조대원들. 

참혹한 현장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굴렀던 상인들.

그 자리에 있진 않았지만, 내 일처럼 여겨져 한숨을 쉬는 이삼십대 젊은이....     


이들이 있다. 아직 아물지 못한 아픔과 상심을 간직한 이들이 있다. 갖은 핑계를 뒤로 하고, 이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바라볼 때 온전한 추모가, 치유가 시작된다. 이 책의 제목, 작가의 간곡한 당부를 이제는 나의 신념으로 바꾸어 본다.     


“눈감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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