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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ip Lee Dec 26. 2022

<재벌집 막내아들>이 범작으로 끝난 이유

작가의 역량이 아쉬웠던 마지막 화

(마지막회 스포 있습니다)



1.바뀌었다

15회까지 극을 끌고갔던 인물은 누가 뭐라해도 (송중기가 연기한) 진도준. 그런데 1회에 죽은줄 알았던 (역시 송중기가 연기한) 윤현우가 16회에 떡하니 살아 돌아온다.


이게 뭔가.  15회까지 우리는 진도준을 응원하고 감정이입했다. 진도준으로 환생한 윤현우가 자기를 죽인 범인이 누구일까  진도준과 함께 추리해간 것. 이미 역사의 흐름을 알고 있던 그가 순양가에 맞서 꾀를 내는 장면들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막바지. 진도준이 과연 순양을 차지할건지  손꼽아 기다리던 찰나. 시청자에게 잊혀졌던 윤현우는 극적으로 살아나고, 다시 윤현우의 세상으로 돌아온다. (진도준이 죽은 후 20년)  물론 괜찮은 설정일수있다. 반전이랄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동안 우리는 진도준을 응원하고 있었다. 갑툭튀한 윤현우에게 다시 이입하기는 쉽지 않다. 작가는 같은 사람이 연기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을까.


이걸로 끝이 아니다. 주인공이 바뀜으로 주제가 바뀐 것. 어쩌면 이게 더 큰 문제다. 15화까진 비도덕적이고 냄새나는 순양가에 대항해 진도준이 복수하고 결국 순양을 차지하는, 이른바 권선징악이 주제였다. 그런데 주인공이 윤현우로 바뀌면서 주제가 변했다. 이른바 진도준의 공범(어쩔수 없었긴 하지만)이고. 그 죽음의 진실을 덮어야 했던 자신의 참회록이 된 것이다. 물론 윤현우의 폭로로 순양의 패배를 이끌긴 했지만, 김빠진 사이다같이 싱겁게 끝났다.


살인교사를 통해 후계자 계승의 큰 판을 짰던 진영기 회장은 병으로 허망히 죽고, 그의 아들 진성준 부회장은 청문회장에서 지랄하는거로 끝나고, 나머지가족들은 사죄로 끝나버렸다. 극의 시간상 더 자세히 다룰순없었겠지만 최소한 감옥에 간다든지. 천문학적인 돈을 내고 파멸하는 모습이 있어야 시원함이라도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덧붙여서 윤현우는 제대로 된 참회를 했을까. 공소시효가 끝났기에 법적 책임은 물 수 없을지라도 이제 완연히 금수저로 접어든 그의 모습은 약간 씁쓸하다. 그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시작은 처음 진도준의 사건을 어쨋든 덮었기 때문 아닌가(순양맨으로 진입하기 위해).


재미로 보는 드라마에서 도덕적 문제를 다루자는 건 아니다. 참회를 했다면 아예 그런 모습을 보이든지, 아님 순양가 사람들처럼 아예 권력의 유혹에 넘어가든지 확실한 스탠스를 보였다면 어땠을까.


2. 축소되었다.

중반까지 이 드라마에 몰입된 이유는 조연들의 환상적인 연기때문이었다. 할아버지 진양철 회장(이성민)의 연기는 말할것도없이  첫째아들과 그의 아들내외, 둘째아들, 막내딸 내외에다 할머니까지 치열하게 순양을 차지하려는 암중모색이 대단했다. '이 속에서 진도준이 과연 승기를 잡을 수 있을까.' 숨죽이며 시청자들은 지켜보았다.


빌런이 중요하다. 빌런이 대단하면 대단할수록,악랄할수록 그와 대립하는 주인공에게 우리는 좀 더 감정이입하게 된다.

이랬던 조연들이 마지막회에선 모두 숨어버렸다. 윤현우의 핸드폰 녹음하나로 수십년동안 쌓아왔던 순양가의 철옹성이 모두 무너져버렸다. 그 머리 잘쓰고, 심지어 폭력까지 서슴지않았던 그들이 말이다.


끝까지 주인공과 머리싸움하는 모습을 기대했건만... 빌런답지않은 시시한 퇴장으로 드라마 전체가 시시해졌다.

멀리는   <다크나이트>의 빌런 조커, 아니 <빈센조>의 빌런 옥택연 정도만 됐었어도...


3.과했다

드라마가 처음에 호평을 받았던 이유중 하나는 과거의 추억을 잘 소환했기 때문이다. 이미 한 번 생을 살아 모든 걸 알고 있는 주인공이 캐리한 셈. 그렇지만 환생이 아니었음이 밝혀진 마지막회에는 진도준의 그동안의 성공이 정말로 어떻게 가능했을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분당 땅이 오르거나, 월드컵4강에 가는 것은 예측하면서도 자신의 안위는 왜 살피지 못했을까. 트럭이 자신을 덮쳤던 사건도. 그것도 2번씩이나.


뭐 그건 어쩔수 없다 하더라도 이성과의 씬들도 불필요해보였다. 연애는 한드의 필수요소이긴 하지만 이미 현대사를 다루고, 증권가와 주주회사의 단면을 다루는 큰 사이즈의 드라마인데 굳이 로맨스를? 이것도 적재적소에 잘 넣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아니었다.


게다가 서민영 검사(신현빈)의 캐릭터도 애매하다. 초반부에 보면 나름 금수저같지만, 진도준에 비해 계속 알바를 해야 살아갈 수 있는것 처럼 보인다. 또 매번 유리천장에 부딪치는 모습이지만, 별다른 설명없이 후반에는 나름 성과있는, 유능한 검사로 묘사된다.


한편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장겨울과 캐릭터가 겹치는 듯한 모습도 아쉽다. 이건 작가의 역량인지, 배우의 역량인지 구분 안되지만 배우를 만들어가는건 전적으로 작가와 감독의 몫이 더 커보인다. 차라리  <빈센조>의 전여빈이나 <천원짜리 변호사>의 김지은같이 좀 덜렁대지만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낫지 않았을까.


환타지부터 한국근대사, 재벌가의 뒷얘기, 남녀사이의 얘기까지...많은 것을 다 넣으려는 작가의 욕심이 과했다.


** 진양철 회장을 연기한 이성민 배우부터 조연에 이르기까지 연기다운 연기를 보는 맛이 있었다. 이 좋은 반찬들을 가지고 결국 훌륭한 메인디쉬를 만들지 못한 건 작가의 역량이겠다. 진도준이 아닌, 깨어난 윤현우의 이야기를 1~2부 정도 더 보여줬다면 훨씬 개연성 있게 마무리될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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