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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ip Lee Apr 04. 2022

<파친코> 신파가 아니라서 좋다

한국인의 한을 담담히 풀다

그동안 일제시대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의 공식이 있다. 일본군을 야비하게 묘사하고, 조선인은 늑대에게 당하는 양처럼 한없이 초라하고 불쌍하게 그린다. 그 장면을 본 시청자들은 억압당하는 조선인에게 감정이입하여 일본인은 나쁘다고 분노한다.



<파친코>는 결이 약간 다르다. 보기 전에는 일본에서 살아가는 재일교포가 성공하는 스토리겠거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화부터 3화까지는 그냥 배우들 연기가 좋고, 역시 대작이라 그런지 영상이 좋다라고만 느껴졌다.


그런데, 4화에선 3화까지 발화되었던 인물들의 스토리와 사건이 한꺼번에 터져버렸다. 근래에 본 작품중 그 당시 설움당했던 한국인의 눈물을 이렇게 잘 묘사했던 게 있었을까.


무엇보다도 신파로 흐르지 않아서 좋았다. 다른곳도 아닌, 일본으로 가서 아들을 키워야 하는 젊은 선자, 수십년동안 그곳에 살면서도 한국 쌀맛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다가 인생 말년에 용기를 내어 한국으로 향한 늙은 선자, 일본서 나름 성공한 비즈니스맨으로 살다가 핏속 깊숙이 숨겨져있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비로소 발견한 선자의 손자. 땅을 팔면 큰 돈을 벌수 있는데, 일본인에게 그 이익을 주길 싫어서 계약 막판에 파기해버린 한국인 할머니.


유명가수이지만 일본인을 위해 가곡이나 오페라를 부르는 것을 거부하고 전통 민요를 부르는 한국인. 뱃속에서 그 노래를 듣고 정처없이 일본으로 향하는 한국인 광부들.


세대와 지역을 초월한 다양한 한국인의 모습이 4화에서 마치 빅뱅처럼 터졌다. 드라마가 어떻게 끝나갈지 모르지만 한류의 모습이 이래야지 않을까. 우리만 좋고 신나고 감동받는 것이 아닌, 세계 어느 나라 시청자들이 보더라도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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