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삶은 영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hilip Lee Dec 31. 2020

삶의 또다른 이름, 모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현실에서 상상하다



여기 ‘월터 미티’(Walter Mitty)가 있습니다. 꼬박꼬박 가계부를 쓰는 그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되죠. 40대 미국인 남자가 가계부를 쓰다니... 언뜻 상상이 안 됩니다. 그는 그렇게 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전형적인 소시민이죠.      


성격은 또 어찌나 소심한지 마음에 드는 여직원(셰리)에게 말도 제대로 못 겁니다. 심지어 SNS에서 ‘윙크’ 날리는 것조차 주춤합니다. 으리으리한 빌딩숲에 자리한 유명한 편집팀의 포토 에디터로 일하지만, 노모와 철부지 여동생을 부양하기엔 힘이 부칩니다.      


갑자기 그가 폭파당한 건물로 뛰어들어갑니다. 화염으로 뒤덮인 건물 안으로요. 그리고는 셰리의 애완견을 무사히 구출합니다. 다음날 신문에 대서특필되겠죠? <샐러리맨, 화마에서 애완견 구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언론에선 놓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상상’이었습니다.     

 

모든 장면은 그의 머릿속에서만 일어난 상상일 뿐이었습니다. 대서특필은커녕 찰나의 상상으로 기다리던 지하철까지 놓쳐 버립니다. 그는 바로 ‘상상의 달인’이었습니다.     


자기를 깔보는 상사를 흠씬 때려 주고, 셰리와 사랑에 빠져 로맨틱한 여생을 보냅니다. 이것이 월터의 머릿속에선 가능합니다. 무슨 일이든 그의 머릿속에서는 가능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좋을까요? 장밋빛 상상이 현실에선 전혀 효과가 없는 모양입니다. 오히려 자주 멍때린다고 손가락질 받길 일쑤죠. 그래도 월터는 상상을 멈추지 않습니다. 힘든 현실을 이겨 내는 그만의 방식이었기 때문이죠.     


‘dream machine’ 월터에게 어려움이 닥칩니다. 월터뿐 아니라, 동고동락해 온 편집팀원들에게도요. 정리해고의 광풍이 불기 시작한 겁니다. 그들이 수십 여 년 동안 자부심을 갖고 만들어온 잡지가 온라인 잡지로 변경된 것이 이유였죠. 누가 회사에 남을지 모르는, 흉흉한 공기 속에서 마지막 호를 앞둔 상황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 월터에게는 더 큰 위험이 닥치죠. 표지 사진을 작업하는 그에게 전설의 사진작가가 마지막 표지 사진을 보냅니다. 사진작가가 ‘Quintessence of LIFE’(삶의 정수)라는 최고의 칭찬을 붙인 사진이었죠. 그 사진이 사라진 것입니다!     


상상이 현실 되다


당장 사진을 찾아오지 못할 경우, 월터는 쫓겨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셰릴은 사진가를 찾아 나서라고 외치죠.      

“Why not?” 그는 사진작가를 찾아 떠납니다. 티끌 같은 실마리를 찾아 월터는 그린란드로, 아이슬란드로, 아프가니스탄으로, 히말라야 산맥으로, 지구의 반대편 끝으로 떠납니다. 캐리어가 아닌 서류 가방만 들고요.       



‘위험을 무릅쓰고 어떠한 일을 함. 또는 그 일’이라는 뜻의 모험(冒險). 그 정의를 적극 옹호하듯, 모험은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망망대해에 빠지기도, 상어를 만나기도 합니다. 화산 폭발을 등지고 가까스로 도망치기도 했죠.     


갖가지 모험을 통해서 조금씩 월터는 성장해 갑니다. 그의 마음속 깊이 각인되어 있던 유년의 꿈은 한 장씩 인화되었습니다. 빌딩숲 속에서 박제되어 있던 월터는 생기를 찾기 시작했죠. 거의 쓰인 것이 없었던 월터의 SNS 자기소개란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가 본 곳’에는 환상적인 나라들이, ‘해 본 일’에는 가슴 뛰는 경험이 추가되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나요? 그 평범한 명언이 월터에게 이루어집니다. 그토록 찾던 사진작가를 거짓말처럼 만난 거죠. 그것도 히말라야 중턱에서 말이에요. 한 번의 큰 어려움은 있었지만, 마감 막바지에 표지 사진을 찾고, 가까스로 편집부로 넘깁니다. 그 사진은 최고의 사진이었죠. 삶의 정수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습니다.      


영화의 끝은 어떨까요? 아쉽게도 해피엔딩은 아니군요. 결국 해고당합니다. 아버지의 유품이었던 피아노도 팔아야 했고요. 너무 각박하지 않냐고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이 영화는 더욱 설득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혹시 눈치채셨나요? 영화의 중반부, 그러니까 월터가 사진가를 찾아 해외를 종횡무진 누비는 순간 말이에요. 그때부터 월터의 상상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월터의 상상력이 고갈되었을까요?      


혹시 상상보다 더 상상 같은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났기 때문이 아닐까요? 즉, 더 이상 월터가 상상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은 아닐까요? 굳이 상상을 안 해도 더 멋진, 더 생생한 삶을 살고 있는 현실이 월터의 상상을 멈추어 버린 것이죠.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그가 품어온 상상이 멋진 현실이 되었다고요.


인생의 또 다른 이름


이 영화의 원작은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입니다. 1939년 발표되었다는군요. 좋은 작품의 진가는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음을 새삼 느낍니다. 아니,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더욱 드러나기도 하죠. 제임스 써버는 월터를 통해 소심하고 예민한 중년 남성의 좌절을 그려 냈다는 호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제2의 마크 트웨인’이라던 그의 별명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터무니없는 공상을 하는 사람’, 월터 미티를 검색하면 나오는 뜻입니다. 사전에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 등재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주연을 맡은 벤 스틸러는 주로 ‘Looser’ 역할을 연기했죠. 그런 그의 외모와 연기력은 월터의 역할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게다가 감독까지 맡았으니 월터 미티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그려 내는 데 탁월할 수밖에요.     


아! 한 가지 빠뜨린 사실이 있네요. 주인공 월터가 십수 년 동안 일했던, 그리고 해고당한 편집부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군요. 바로 <Life>지입니다. 참 이상하죠? ‘Life’(삶)를 박차고 나가서야 새로운 삶, 그가 전에 상상만 했던 신나는 삶을 맛보았다는 사실. 참 아이러니합니다.      


삶은 운명처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주어진 삶에 의문을 갖고, 도전하고 모험해야만 전에 미처 맛보지 못한 삶의 정수를 느끼게 되는 건 아닐까요? <Life>지의 모토는 이렇습니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삶은 수많은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를 북돋아 주는 ‘사랑, 희망, 기쁨’이라는 이름도 있고,  ‘절망, 외로움, 낙심’ 등 우리가 견디어내야 할 이름도 있습니다. 


각박함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많은 월터 미티 여러분, 삶에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는 것 알고 있나요? 바로 ‘모험’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이 세상 모든 토니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